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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같은 박스카, 뭐가 있을까?

태권 한 2019. 3. 7. 17:49

장난감 같은 박스카, 뭐가 있을까?

강동희 입력

어렸을 적 큰 종이박스를 자동차 삼아 안에서 운전 흉내 낸 적 있다. 내가 처음으로 접한 박스카다. 그래서일까? 각 제조사에서 내놓은 박스형 차를 보면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종이 박스카 말고 진짜 박스형 차는 무엇이 있을까?          

박스카는 사실 애매한 표현이다. 차 형태에 따라 1박스, 2박스, 3박스로 나누기 때문이다. 각각 승합차, 해치백, 세단을 대표한다. 여기서 말하는 박스카는 2박스의 톨 보이 타입이다. 톨 보이는 가구에서 온 용어로 높이 솟은 옷장을 뜻한다. 그래서 네모반듯하고 높은 차를 톨 보이 타입으로 불렀다.


소형 박스카의 천국 일본          

최초의 박스카를 닛산 큐브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스즈키 왜건 R이 일본 소형 박스카의 시장을 열었다. 1993년 등장해 현대 벨로스터처럼 운전석 쪽 문은 한 개, 반대편은 두 개인 비대칭 도어를 가졌다. 1996년엔 5도어 모델이 등장했다. 이후 세대를 거듭하다 6세대까지 진화한 상태다. 휠베이스는 1세대 2,335㎜에서 시작해 2,460㎜까지 늘었다.          

닛산 큐브는 1997년 10월 도쿄 모터쇼에서 첫 모습을 드러냈다. 트렁크 창문만 여는 플립 업 글라스 기능이 있어 좁은 곳에서도 짐을 싣고 꺼내기 쉬웠다.          

2세대 큐브는 2002년 10월에 등장했다. 좌우 비대칭 디자인의 개성 있는 모습이 많은 인기를 끌었다. 1세대처럼 일본에서만 생산, 판매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수요가 있어 일부 업체가 병행 수입하기도 했다. 2003년엔 휠베이스를 2,430㎜에서 2,600㎜로 늘이고 3열 시트를 넣은 7인승 큐브 큐빅도 나왔다.          

2008년 11월에 나온 3세대 큐브는 직선보다 곡선 위주로 빚었다. 휠베이스는 2,530㎜로 이전 세대보다 넉넉하다. 또한 북미와 유럽 시장에 진출했고, 국내엔 2011년 8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들어왔다. 하지만 2014년부터 수출을 멈추고 일본 내수용으로만 생산, 판매하는 중이다.          

2000년 토요타가 비츠의 플랫폼을 바탕 삼아 만든 bB도 있다. 2세대는 2005년에 나왔고 2016년에 단종을 맞았다. 뒤를 다이하츠 토르가 잇는데, 토요타 루미와 스바루 저스티로도 나왔다. 토르의 휠베이스는 2,490㎜로 2세대 큐브보다 좀 더 넉넉하다.          

한편, 2014년 스즈키가 내놓은 허슬러도 있다. 허슬러는 박스카뿐 아니라 경형 4WD라는 범주에도 들었다. 현재 마쓰다가 OEM 방식으로 ‘플레어 크로스오버’라는 이름으로 파는 중이다.          

그렇다면 왜 일본에 소형 박스카가 많을까? 저층 건물 위주에 좁은 골목길이 많다보니, 자연스레 작은 차 선호현상이 드러났다. 제조사에선 공간을 극대화하기 위해 박스형 차를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도 박스카가 있었다          

우리나라 첫 소형 박스카는 레이가 아닌 현대 아토스다. 아토스는 1997년 9월에 나왔고 같은 해 12월 경차 최초로 전 차종 판매 1위를 기록했다. 1999년 가지치기 모델 기아 비스토도 있었지만 전고가 1,580㎜로 아토스의 1,615㎜보다 낮았다. 대신 휠베이스는 2,380㎜로 같다. 참고로 두 차는 터보가 들어간 최초의 국산 경차다.          

이후 국내 소형 박스카가 나오지 않다가 2011년 기아 레이가 나왔다. 레이의 길이와 너비는 각각 3,595×1,595㎜로 경차 기준 한계치인 3,600×1,600㎜까지 밀어붙였다.          

소형은 아니지만 2001년 현대 라비타가 박스카 타이틀을 잠시 잇기도 했다. 이탈리아 피닌파리나에서 디자인한 라비타는 둥그스름한 외모로 박스형 차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 레이가 장점으로 삼는 실내 거주성이나 많은 수납공간을 보면 라비타도 영락없는 박스카였다. 라비타 카탈로그에 의하면 수납공간이 20군데에 달한다.          

2008년 등장한 기아 쏘울도 박스카 목록에 올랐다. 하지만 오롯이 박스 모양에만 집중하지 않고 개성 있는 안팎 디자인을 뽐냈다. 그 결과 2009년 국산차 최초로 레드닷 디자인상을 받았다. 후발주자지만, 미국에서 닛산 큐브 등 일본 박스카를 제치고 연간 10만 대 이상 판매를 기록하고 있다.


재미로 보는 이상한 박스카          

세상 빛을 못 본 박스카도 있다. 포드 시너스(SYNus)가 주인공이다. 피에스타 플랫폼을 바탕으로 한 시너스는 포드가 미국 소형차 시장 진출 가능성을 보기 위해 만든 콘셉트 카다.

마치 현금수송차를 보는 듯한 외모는 운전자를 보호하는 느낌이다. 실내는 겉과 다르게 부드럽고 안락한 분위기로 꾸몄다. 정차 중 2열 시트를 접고 앞 시트 등받이를 앞으로 밀면 뒤를 보며 앉을 수 있고, 트렁크 도어 안쪽에 45인치 대형 스크린을 넣어 TV, DVD 영화 등을 볼 수 있다. 화면은 백미러 역할도 겸해 뒤쪽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줬다.          

또한, 안전 모드를 켜면 셔터가 내려와 앞, 옆 유리를 가린다. 뒤엔 창문도 없이 금고에서나 볼 법한 손잡이가 달렸다. 2열 유리는 열리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방탄유리였다. 차에 타는 일조차 평범하지 않았다. B필러엔 다이얼 모양 열쇠 구멍이 있어 금고 열듯 돌려야 했다.          

시너스의 길이와 너비는 각각 4,013×1,760㎜. 1세대 기아 쏘울과 덩치가 사뭇 비슷하다. 영국 왕립 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 RCA) 리처드 윈저(Richard Winsor) 운송 디자인학과 교수는 “쏘울을 처음 봤을 때 포드 시너스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큐브뿐 아니라 시너스도 쏘울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조심스레 든다.

시너스보다 더 독특한 박스카도 있었다. 영국 BBC 탑기어 시즌 14 에피소드 2에서 만든 전기차 Geoff로, TVR 키메라 프레임에 우유 배달 트럭의 배터리와 전기 모터를 얹었다. 이후 디젤 발전기를 더해 해머헤드 이글-아이 스러스트(Hammerhead Eagle-i Thrust)로 이름을 바꿨다. 최고속도는 시속 15.4마일(약 24㎞)이었다.

글 강동희 기자

사진 위키피디아, 각 제조사

영상 포드, BBC 탑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