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윤리적 소비자(ethical consumer)

태권 한 2008. 3. 8. 16:28

 

윤리적 소비자(ethical consumer)

 

- 신한FSB리뷰 2008년 2월호에 기고 -

 

소비는 미덕일까, 아닐까? 오랜 세월 논의되어온 명제이다. 다만,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소비가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소비위축은 곧 불황과 투자위축, 실업자양산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적절한 소비는 미덕’이라는 쪽으로 얼추 결론이 난듯하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소비가 미덕이 되려면 그 소비는 환경파괴나 자원고갈을 초래하거나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삶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구 선진국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윤리적 소비자주의(ethical consumerism)의 대두가 바로 그것이다. ‘윤리’를 상품 선택시의 중요한 고려요소로 삼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기업들도 점차 이들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테스코, 나이키, 스타벅스 등 대기업들이 윤리적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상품과 정책을 앞다퉈 도입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환경보호와 생산자보호, 기업과 소비자의 사회적 책임을 상품 선택의 중요한 잣대로 삼는 새로운 트렌드인 ‘윤리적 소비자’에 관해 살펴보기로 한다.

 

윤리적 소비자주의의 대두

  미국 최대 규모의 유기농 식품 유통업체인 홀푸드마켓(Whole Foods Market)은 채식주의자인 존 매키가 1980년 텍사스 오스틴의 한 창고에서 창업한 회사다. 매키 CEO는 대학시절 낙제생이었으며, 동물 권리운동가이기도 했다. 그는 2005년 홀푸드의 전체 매장에서 랍스터나 게 등 갑각류의 판매를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고 발표하였다. 갑각류들에게도 고통을 느끼는 감각이 있으므로 이를 무시하고 수송, 조리하는 것은 냉혹한 처사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런 사람이 만들고 경영하는 회사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오늘날의 소비자 의식변화를 단적으로 시사한다. 상품을 구입할 때 단지 그 상품 하나의 가격이나 품질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내 장바구니 안으로 들어오기까지의 과정, 내가 그 상품을 구매하고 소비함으로써 생태계나 생산자들에게 미치는 영향 등 윤리적인 부분까지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그만큼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쇼핑을 할 때 자신이 내리는 사소한 선택 하나하나가 자원고갈이나 환경파괴로 이어지거나 가난한 개발도상국가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부분까지 고려하면서 상품을 선택하는 이들이 이른바 ‘윤리적 소비자’들이다. 이때의 윤리는 지구환경에 대한 윤리일 수도 있고, 아동이나 여성인권에 대한 윤리일 수도 있으며, 홀푸드의 사례에서와 같이 동물에 대한 윤리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윤리적 소비자들은 친환경적인 기업을 선호하기도 하고,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기업의 상품에 불매운동으로 실력행사를 하기도 하며, 동물을 상대로 비윤리적인 실험을 하거나 불필요한 고통을 주며 잔인하게 도살, 유통하는 기업들에 대해 비난을 가하기도 하는데, 이 모든 소비자운동을 포괄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윤리적 소비자주의(ethical consumerism)다. 

 

경쟁의 새로운 규칙 ‘윤리’

세계적인 컨설팅회사인 맥킨지는 지난해 ‘경쟁의 새로운 규칙 형성’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이 보고서에서는 “제품 구매결정을 내릴 때 적어도 몇 번 정도는 해당 기업의 사회적 평판을 감안하는” 윤리적 소비자층이 크게 증가하고 있으므로 기업들은 이 계층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제 소비자들은 단순히 상품 자체에만 관심을 두지 않는다. 브랜드 뒤에, 제품 뒤에 실제로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어한다. 맥킨지는 이런 현상을 “소비자들이 자신의 지갑을 가지고 기업들을 대상으로 투표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아무리 질 좋은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소비자들에게 환경오염 유발기업, 혹은 스웨트샵(Sweatshop, 노동착취 공장)으로 낙인이 찍히면 경쟁에서 도태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이키의 경우 라이프지에 실린 단 한 장의 사진-12세 파키스탄 소년이 나이키 로고가 선명하게 박힌 축구공을 꿰매고 있는 모습-으로 아동노동 착취 기업으로 지탄 받으면서 브랜드 이미지에 엄청난 타격을 입었으며, 코카콜라는 ‘인도의 수자원을 착취하는 기업’, 로레알은 ‘잔인한 동물실험을 자행하는 기업’, 스타벅스는 ‘가난한 생산자들을 착취하여 헐값에 커피원두를 사들이는 기업’이라는 비윤리적인 측면을 지적당하면서 기업평판 하락 및 소비자 불매운동에 직면한 바 있다.

 

이처럼 제품의 윤리적 측면에 관심을 가지는 새로운 소비자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다국적 기업들도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예컨대 제3세계 아동을 고용해 제품을 생산하던 유명 스포츠용품 업체들은 14세 이하 어린이를 재봉사로 고용하지 않겠다는 협약을 체결했다. 유명 브랜드의 축구공 가격은 15만원에 달하지만 12시간 넘게 축구공을 꿰매는 아동의 일당은 300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소비자들의 공분을 샀기 때문이다. 이처럼 선진국의 축구공 소비가 가난한 나라 어린이의 노동착취로 이어지는 현실을 바꿔보고자 1998년부터 이탈리아 생협은 공정무역 축구공을 도입해 생산자들이 최저생계를 보장 받음으로써 소득증대를 통해 삶의 질을 개선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국내의 경우 한국공정무역연합이 지난해부터 공정무역 축구공을 수입, 판매중).

소비자의 평판에 민감한 소매, 식음료업계도 윤리적 소비자층의 대두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루이비통은 2005년부터 비닐포장 대신 재생용지 포장을 늘리고 가능한 한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비행기보다는) 선박을 이용해 제품을 수송하겠다고 선언했으며, 쁘렝땅백화점, 구치 등을 거느리고 있는 PPR그룹은 그룹 내 모든 소매점에서 공정무역 제품의 취급을 늘리고 있다. 영국의 막스앤스펜서는 모든 T셔츠와 양말에 100% 공정무역 면을 사용하고, 유전자조작 식품이나 첨가제를 넣은 식품, 살충제 등은 일체 판매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물론 자사 매장 내 카페에서는 공정무역 라벨이 붙은 커피만을 제공한다.

한편 스타벅스는 2006년 한해 동안 전체 커피원두의 6%를 공정무역 제품으로 구입했으며, ‘맥카페’라는 브랜드로 새로운 커피소매점 강자로 부상중인 맥도날드도 2005년부터 공정무역 커피를 판매중이다. 최근 다국적 음식료 업체들은 윤리적인 제품을 구매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유기농 주스부터 사회적 인지도를 가진 스낵류에 이르기까지 급성장하는 ‘사회적 기업’ 및 ‘대안’ 브랜드들을 인수하면서 기업 자체가 윤리적인 소비자로 변하는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윤리적 여행이라는 새로운 트렌드

지구환경과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를 중시하는 ‘책임여행’(responsible tourism) 역시 윤리적인 소비의 한 형태다. 책임여행이란 여행자에게도 방문지역의 경제·문화·환경을 존중하고 보호할 책임이 있다는 개념에서 출발한 것으로, 여행지와 현지 주민을 배려한 윤리적, 이타적인 여행이다. 1992년 리우회담을 계기로 지속가능한 관광의 개념이 처음 제시되었으며, 2000년대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윤리적 여행자들은 히말라야 트레킹을 위한 여행사를 수배할 때 ‘가장 싸게 짐꾼을 구할 수 있는 여행사’가 아니라 ‘포터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는 여행사’를 찾는다. 버마를 여행하는 경우 군부독재로 흘러 들어가는 돈을 최소화하고 지역주민들에게 경제적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값싼 국영버스 대신 값비싼 사설버스를 타고, 버마 국영항공 대신 운임이 더 비싼 외국계 항공사를 이용한다. 또 대량의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는 비행기 여행 대신에 ‘프랑스 남부 자전거 투어’, ‘스페인 알리칸테 걷기 여행’ 같은 환경에 영향을 덜 끼치는 상품을 선호한다. 약간의 비용부담과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윤리’를 잣대로 여행지와 여행방식을 선택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국적 체인의 호텔이나 식당 대신 현지인이 운영하는 업소를 이용함으로써 관광의 경제적 이익이 현지인에게 돌아가게 하자는 ‘바이 로컬(buy local)’, 현지에서 문화적으로 금기시하는 행동을 자제하고 현지인의 드레스코드를 존중하는 것(ex. 동남아의 사원을 방문할 때는 짧은 치마, 민소매 옷 입지 않기)도 윤리적 여행의 대표적인 지침이다.

윤리적 여행을 실천하려는 여행자가 늘면서 이를 지원하는 전문 여행업체들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윤리적 여행을 표방한 최초의 여행사인 영국 리스판서블트래블닷컴의 경우 2001년의 설립 이래 2만 5,000명 이상의 여행자가 동사를 이용했으며 매년 매출이 4배씩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밖도 에티컬트래블러, 슬로트래블, 그린글로브 등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한 여행업체들이 윤리적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서구 선진국들의 경우 2008년 전체 여행의 5% 정도가 윤리적 여행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내에는 아직 윤리적 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여행사가 없고 윤리적 여행의 개념조차 생소하지만 가능성만은 열려있다. 예컨대 지난해 2월 아시아태평양지역관광협회(PATA)가 한국·중국·인도·독일 등 10개국 5,000여명을 상대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국인 응답자의 63%가 윤리적 여행을 위해 25% 정도의 추가경비를 부담할 용의가 있다고 응답한 바 있다. 한편 지난해 말 평화운동단체인 이매진피스 등이 주축이 되어 ‘공정여행(Fair Travel) 축제’가 개최되기도 했으며, 최근 들어 윤리적 여행에 관한 언론보도도 증가하는 등 윤리적인 여행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도 확산되는 추세다.

 

윤리적 소비의 빠른 성장세에 주목 필요

가격이나 제품 본래의 효용보다는 윤리적인 가치를 더 우선시하는 윤리적 소비의 트렌드는 소비를 통한 욕구 충족뿐 아니라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함께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그만큼 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아직은 공정무역, 책임여행 등 윤리적 소비와 관련한 시장이 전체 소비규모와 비교할 때 틈새시장에 불과하지만 그 성장속도만은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이다(<그림 2>, <그림 3> 참고). 특히 영국의 경우 공정무역을 통해 상품을 파는 시장이 최근 4년 간 62%나 성장하고 있어, 윤리를 도입한 기업들이 상업적으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모든 개인은 질 좋은 상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소비자’인 동시에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희망하는 ‘시민’이기도 하다. 따라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국가와 계층을 중심으로 지구환경과 인권 등을 고려해 제품을 구매하는 윤리적 소비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특별한 현상이 아닌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수의 선진국 소비자들이 윤리적인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환경단체 활동에 참여하거나 제3세계 구호단체에 기부를 하지 않더라도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안심감을 얻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굳이 윤리적 소비의 트렌드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이제 단순히 품질과 가격만으로 승부하는 기업은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다. 현대의 소비자들은 기업이 생산, 유통과정에서 환경을 오염시키거나 근로자를 부당하게 대우하지는 않았는지 감시하고, 부도덕한 기업에 대해서는 불매운동과 시위도 불사하는 적극적인 소비자로 변해가고 있다. 이처럼 소비자의 사회적 의식이 높아져갈수록 사회문제나 환경문제 등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이미지 자체가 고객에 대한 소구력을 가질 수 있으므로 기업은 윤리적인 이슈들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단지 비용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차별화를 위한 선행투자로 인식하는 전향적인 자세도 필요하다. 소비자의 사회적 의식이 제고되고 윤리적 소비 관련시장이 성장한다는 트렌드 자체는 무시하기 어려운 현실인 만큼 이런 현상을 위기로 인식하고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하기보다는 기업 이미지 제고 및 마케팅 차원의 과제로서 적극 활용함으로써 윤리적 소비자들 속에서 블루오션을 찾는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라 하겠다.

 

출처: 신한FSB리뷰 2008년 2월

윤리적 소비자.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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