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CHALLENGERS

태권 한 2017. 12. 6.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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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차가 펼쳐놓은 프리미엄 브랜드의 격전지, D세그먼트 시장에 뛰어든 세 대의 스포츠 세단. 한국과 영국, 그리고 일본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예리하게 날을 세운 세 개의 창은 철옹성 같은 독일 방패를 꿰뚫을 수 있을까?

​​​이런 차를 비교하는 건 에디터로서 참 즐거운 일이다. 성격이 거기서 거기인 차들을 비교하다 보면 맥이 빠지기 마련인데, 오늘 모인 차들은 자장면과 파스타처럼 같은 세그먼트일지라도 맛과 향이 제각각이다. 치밀한 제네시스와 고상한 재규어, 그리고 날카로운 인피니티. 프리미엄 브랜드 입문자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겨야 할 사명을 띤 만큼 작은 몸집임에도 각 브랜드의 성격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겼다. 물론 독일차에 버금가는 품질도 함께. 아, 오래된 인피니티는 한 세대 전 독일차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 같지만.​

​쌩얼도 아름다운 XE

재규어는 이번 비교 시승이 분명 못 미더울 거다. 한때 독일차보다 인정받던 프리미엄 브랜드가 ‘도전자’들 사이에 끼어 있다니 기분 나쁠 만도 하다. 그래도 어쩌랴. D 세그먼트 시장에서 재규어는 도전자가 맞다. 다만, 자부심에서 비롯된 당당한 스타일만큼은 도전자 레벨이 아니었다. 

재규어는 세 대의 차 중 가장 수수했지만 가장 매력적이었다. 세 명의 기자가 만장일치로 재규어의 스타일을 택했을 정도. “지붕에서 트렁크 끝단까지 우아하게 떨어지는 실루엣이 마음을 사로잡는다”며 이인주 기자는 쿠페에 가까운 우아한 실루엣을 높이 평했고, “단아한 얼굴에 강인한 카리스마가 담겨 있다”고 이수진 편집장은 잘생긴 얼굴을 칭찬했다. 필자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1세대 XF의 스타일이 무르익은 XE는 단지 비율과 볼륨만으로 가장 멋스럽다. 기본이 받쳐주니 화려한 범퍼와 19인치 휠을 두른 경쟁자들 사이에서도 시승단의 마음을 이끌었다. 마치 화려한 아이돌보다 수수한 배우의 모습에 마음이 가는 것처럼.​​비교적 수수한 XE의 앞모습

개구부가 매우 적은 모습에서 재규어가 이 차의 강성에 얼마나 신경썼는지 엿볼 수 있다.

​XE가 우아한 맵시를 뽐냈다면 G70은 역동적인 분위기로 눈길을 끌었다. 엊그제 출시한 신차답게 차체의 튀어나온 곳과 들어간 곳이 명확히 구분돼 빛과 어둠이 뚜렷하게 맺힌다. 여기에 애프터마켓 느낌 물씬 풍기는 19인치 휠과 붉은색 브렘보 브레이크 등이 긴장감을 더한다. 단, 얼굴에 대해선 호불호가 갈렸다. 오늘 모인 세 명의 시승자 중 두 명이 호, 한 명이 불호였다. 잘 달릴 것 같은 강인한 인상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지만 그릴과 헤드램프, 크롬 장식 등이 조화롭지 못해 다소 조잡하다. 게다가 인피니티를 조금 닮은 구석도 있고. 참고로 불호를 던진 사람은 필자다.​​370마력의 성능만큼이나 앞부분을 화려하게 꾸몄다​          

오늘 모인 세 대의 차 중 가장 인상이 뚜렷하다​          

Q50은 두 대의 호빗 사이에서 여유를 뽐낸다. 길쭉한 휠베이스와 차체 덕분에 한 체급 위로 보일 정도. 덕분에 비율이 시원스럽다. 다소 둔해 보일 수 있는 큰 차체를 납작한 보닛과 날렵한 실루엣으로 가벼워 보이게 한 부분도 시승단의 칭찬을 자아냈다. 다만 2014년 선보인 스타일은 최근 부분변경으로 회춘을 노렸음에도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큼직한 19인치 휠과 4피스톤 디스크 브레이크 시스템이 들어간다​          

최근 부분변경으로 테일램프가 세련되게 바뀌었다 ​          

낭만과 이성, 그리고 과시

세 차의 실내를 보고 있으면 ‘자존감이 낮을수록 더 과시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당당한 재규어의 실내는 가장 단아했고, 노쇠한 인피니티는 덤덤했으며, 후발주자 제네시스는 눈이 부시게 화려했다. 하지만 화려하다는 말이 곧 매력적이란 뜻은 아니다. XE는 나머지 두 대에 비하면 미니멀리즘에 가까울 정도로 단순했지만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인주 기자는 “화려하진 않지만 가장 낭만적이야, 게다가 오렌지 색감 실내도 이 차를 더욱 값지게 만들어”라며 XE 실내를 가장 마음에 들어 했다. 특히 재규어 특유의 문짝 위부터 대시보드 뒤쪽으로 이어지는 랩 어라운드 스타일은 이 차가 지루한 고급차가 아니라 고유의 색채를 간직한 특색 있는 고급차라는 걸 대변한다. 회전식 변속레버와 독특한 도어트림도 마찬가지. 제네시스와 인피니티가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정받기 위해 반드시 배워야 할 부분이다.​​​XE는 버튼 하나하나 섬세하게 배치해 스타일의 완성도가 높다​          

좁지만 탈 만한 뒷좌석. 시트가 가운데로 몰린 편이어서 다섯 명이 앉기엔 부담스럽다          

​G70은 후발주자인 만큼 가장 화려하다. 스웨이드 질감의 헤드라이너와 리얼 알루미늄 장식. 퀼팅 패턴 나파가죽 시트 등은 동급에선 찾아보기 힘든 소재. 만듦새나 마감도 다른 제네시스처럼 나무랄 데 없이 치밀하다. G70을 살펴본 이수진 편집장은 “브랜드 밸류에서 밀리는 회사가 흔히 쓰는 전략이긴 하지만, G70이 동급 차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고급스럽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제네시스만의 개성이 부족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때문에 등급을 뛰어넘는 고급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감동은 없었다.​​스웨이드 질감의 헤드라이너와 리얼 메탈 장식, 그리고 퀼팅 패턴 등으로 화려하게 꾸몄다.

​XE처럼 좁지만 앉는 자세는 안락한 편이다​          

Q50 역시 실내에 고급 소재를 듬뿍 썼지만 스타일은 지루했다. 프리미엄 브랜드만의 특색도 없어 한 세대 전 그랜저급 세단을 보는 느낌. 위아래로 나눈 두 개의 모니터는 당시엔 첨단이었겠으나 지금은 1세대 스마트폰을 보는 것만큼이나 어색하다. 그래도 공간만큼은 Q50이 으뜸이다. 길이가 4,810mm에 달해 뒷좌석이 가장 널찍하다. 성인 남성이 앉아도 편안하게 탈 수 있는 공간으로 G70과 XE는 물론 3시리즈와 C클래스 등 모든 D세그먼트의 아킬레스건을 제대로 공략했다. 잘 달리는 세단을 갖고 싶지만, 뒷좌석공간도 포기할 수 없다면 Q50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 터다. 참고로 XE와 G70의 뒷좌석은 거의 도토리 키 재기였다. 키 177cm 기자가 앞좌석에 탔을 때를 가정하면 무릎공간이 한 뼘 하고 조금 남는 수준. Q50을 제외한 두 차는 사이좋게 천장에 머리가 닿는다.​​위아래 두 개의 모니터가 들어간다​          

중형 세단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만큼 넓은 뒷좌석​​​          

스카이라인의 후예 Q50

세 대의 시동을 걸었다. 한쪽은 무음, 한쪽은 나지막한 진동,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덜덜덜……. 세 대의 시승차는 D세그먼트라는 터울로 모였지만, 미안하게도 파워트레인은 제각각이다. 3.3L 가솔린 터보 G70과 2.0L 디젤 XE, 하이브리드 Q50. 사실 380마력의 XE S만 가져왔더라도 좋은 그림이 됐을 텐데, 각 브랜드 사정상 이게 최선이었다. ‘차는 파워트레인이 다가 아니니까!’라고 위안 삼으며 우리는 충남의 시승 코스로 향했다.​​​

먼저 인피니티 Q50에 올랐다. 전기모터가 달린 하이브리드답게 공회전 소음은 없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V6 3.5L 엔진의 잠귀가 워낙 밝아 가속 페달을 조금만 거칠게 다루면 바로 ‘우르릉’거리며 깨어난다. 주행 중 엔진출력이 연결될 때의 충격도 최신 하이브리드에 비하면 다소 거친 편. 하지만 이후의 정숙성은 VQ 엔진답게 고요하다. 묵직하게 충격을 거르는 댐퍼와 흔들림을 여유롭게 상쇄시키는 동급 최대 휠베이스도 저속의 고요함을 방해하지 않는다.

고속도로에 올라 가속 페달을 있는 힘껏 밟았다. 전기모터에 항속을 맡기고 쉬고 있던 V6 엔진이 부리나케 깨어나 힘을 보탠다. 변속기가 기어를 낮추고 엔진이 힘을 더하는 일련의 과정은 제법 일사불란하다. 가속 준비가 끝나면 367마력의 강력한 출력이 1.8톤의 차체를 가뿐하게 밀어낸다. 시속 100km까지 단 5초대 초반에 끊어버리고 시속 200km까지도 거침없이 질주한다. 속 시원한 가속감과 V6 엔진이 들려주는 풍부한 음색을 듣고 있노라면 엔진 뒤에서 열심히 돌고 있을 전기모터의 존재는 잊어버린다. 

하지만 이 차가 닛산 스카이라인의 후예라는 걸 실감한 건 동력성능보다 더 대단한 안정감 때문이다. 다른 두 대의 차가 불안한 기색 없이 달리는 수준이라면, 이 차는 한 단계 더 나아가 바닥에 착 가라앉는다. 체감상 무게중심이 굉장히 낮고, 속도가 빨라질수록 더욱 바닥을 움켜쥐는 느낌이다. 시속 200km에서 요철을 만나도 금세 자세를 추스르고 나아갔다. 닛산의 노하우와 앞 더블위시본 서스펜션, 그리고 직진성 좋은 길쭉한 하체가 이뤄낸 하모니다.

감동적인 안정감의 Q50을 뒤로하고 G70으로 갈아탔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살짝 낮은 의자 높이와 훨씬 고급스러운 실내. 현대-기아차에 물들어버린 기자는 마치 내 차에 앉은 것처럼 마음이 편안하다. 부드러운 회전의 6기통 터보 엔진과 저속에서의 댐퍼 반응은 Q50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굳이 차이를 얘기하자면 서스펜션이 아주 조금 더 무른 정도랄까.

저속 느낌은 비슷하지만, 속도를 높이면 점점 차이가 드러난다. 일단 동력 성능은 Q50을 웃돈다. 3마력 더 높은 370마력의 최고출력과 60kg 가벼운 차체 덕분에 보다 생동감 있게 속도를 높인다. 시속 200km를 넘어서면서 더뎌지는 Q50과 달리 시속 250km까지도 꾸준히 가속한다. 비슷한 출력임에도 두 차의 승패가 갈린 이유는 고속에서 힘이 빠지는 전기모터의 특성 때문일 터. 다만 앞서 얘기했듯 안정감은 Q50이 한 수 위다. G70의 고속 안정감도 훌륭한 편이지만, Q50의 가라앉는 느낌은 없다.

마지막으로 올라탄 XE는 4기통 디젤답게 덜덜 떨린다. ISG 덕분에 정차시 시동이 꺼지면 조용하긴 하지만 엔진이 켜졌을 때의 진동은 디젤임을 감안하더라도 다소 불쾌하다. 그래도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진동이 잦아들며 불쾌감이 가시고, 세 대 중 가장 부드러운 서스펜션으로 우아하게 미끄러진다. Q50과 G70이 허용했던 노면의 작은 진동마저도 XE는 부드럽게 걸러냈다.

다만 부드럽다고 출렁거릴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XE의 하체는 앞 더블위시본 뒤 인테그랄 링크의 가장 진보된 구성. 게다가 D세그먼트에는 과분한 알루미늄제 차체는 높은 강성과 경량화를 동시에 만족시킨다. 탄탄한 차체와 부드러운 서스펜션이 어우러진 감각은 매우 세련됐다. 고속 안정감은 팽팽한 서스펜션의 G70과 비교해도 더 나으면 나았지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고, 승차감은 세 대 중 가장 차분하다. 184마력의 엔진출력으로 경쟁차의 짜릿한 성능을 쫓는 건 무리였지만 말이다.

​​​​예상밖의 반전

세 대의 스포츠 세단이 고갯길 아래 모였다. 본격적으로 ‘스포츠’ 세단의 자격을 검증할 차례. 우리는 당연히 G70과 Q50이 선두에 서고, XE가 한참 뒤처질 것으로 예상했다. XE 디젤은 출력도 낮지만, 서스펜션도 가장 부드러웠으니까. 그렇게 G70, Q50, XE 순으로 주행을 시작했다.

먼저 G70에 앉아 주행 모드를 스포츠로 바꾼 후 출발했다. 역시나 1,300rpm부터 뿜어져 나오는 52.0kg·m의 강력한 성능으로 오르막길을 매섭게 공략한다. 첫 코너 진입 전, 브레이크로 무게중심을 앞으로 옮긴 후 방향을 틀자, 후륜구동답게 가뿐하게 앞이 방향을 틀고 뒤가 쫓아간다. 코너 중간 즈음부턴 다시 3.3L 엔진의 매서운 가속이 이어진다. 무게중심 이동이 정확하고 타이어가 끈끈하게 바닥을 붙드는 날카로운 느낌은 이전 국산차에선 엿볼 수 없던 감각. 내리막 코너가 이어지는 다운힐에선 더욱 성능이 도드라진다. 네바퀴굴림답게 앞뒤가 균일하게 미끄러져 비교적 안정되게 스릴을 만끽할 수 있다. 연이은 코너와 직진 코스에서 룸미러 속 Q50은 자꾸만 작아졌다. 

이어서 Q50에 올라탔다. Q50 역시 56.0kg·m의 성능으로 오르막을 호쾌하게 통과한다. 그렇게 첫 코너에 들어가는 순간 갑자기 앞바퀴가 급브레이크에 미끄러진다. 타이어 그립이 문제가 아니라 제동이 너무 거세게 들어갔던 것. 코너를 돌아나가는 중간엔 뒤를 흘리더니 자세제어장치가 격하게 개입한다. 한 세대 전 차들의 자세제어장치가 켜질 때의 그 감각이다. 이렇게 코너에서 허둥대는 동안 직선에서 멀어졌던 XE가 Q50의 꽁무니에 바짝 붙었다. 아무래도 무거운 하이브리드 장치와 덩치 때문에 바닥을 붙들기 힘들었을 터. 

자만했던 자신을 타이르며 두 번째 코너로 진입했다. 그런데 또 여지없이 앞바퀴가 바닥을 놓친다. 이건 몇 번의 코너를 더 돌아보고 느낀 건데, Q50은 브레이크 반응이 마치 계단식 같다. 브레이크를 밟아보면 중간에 페달이 무거워지는 부분에 닿는 순간 제동력이 급격히 상승한다. 부드럽게 제어해보려고 해봤지만, 이 브레이크 시스템은 격한 주행에서 부드러운 제어가 매우 힘들다. 회생제동이 더해진 하이브리드란 걸 감안하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 코너에서 허둥댈 때마다 XE는 비웃기라도 하듯 바짝 붙었다. 물론 G70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졌다.​​​

우리는 두 번째 주행을 마치고 XE와 Q50의 위치를 바꾸기로 했다. Q50 때문에 XE가 제대로 달릴 수 없었으니까. 367마력의 Q50이 180마력짜리 XE에게 앞자리를 내준 것이다. XE의 주행 모드를 스포츠로 바꾸고 가속 페달을 밟자, 확실히 다른 두 차보다 가속이 느리다. Q50이 자존심을 설욕하려는 듯 바짝 붙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코너. 브레이크를 밟자 부드러운 서스펜션만큼 하중이동이 크다. 제동하는 과정은 Q50에 비하면 정말 부드럽다. 그리고 매끈하게 코너를 돌아나간다. 분명 서스펜션은 가장 무르지만 토크 벡터링과 AWD가 어우러진 코너링 성능만큼은 선두에 선 G70보다 더 낫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 코너 중간 즈음 재가속시에도 8단 변속기가 적극적으로 높은 rpm을 유지해, 43.9kg·m의 토크로 즉각 가속한다. 코너를 돌아나갈 때마다 Q50은 점점 멀어지고, G70은 가까워졌다. G70과 직선 구간에서 벌어진 거리를 만회하기엔 역부족이었지만. 

주행을 마치고 우리는 하나같이 XE를 칭찬하기 바빴다. 이인주 기자는 “XE는 운전자에게 차의 움직임을 충분히 전달해 모든 과정이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덕분에 운전자는 물 찬 제비처럼 다음 코너를 대비할 수 있다”고 느낌을 표현했다. 기자의 감상으로는 운전자가 예상하는 궤적을 그리며 미끄러지는 모습에서 매우 뛰어난 밸런스를 엿볼 수 있었다. 고갯길에서의 승자는 3.3L 터보의 G70도, 하이브리드 Q50도 아닌 180마력 디젤 XE였다. 후발주자 제네시스와 인피니티가 화려한 힘을 뽐냈지만 오랜 역사로 담금질된 재규어의 노하우를 넘어서지는 못한 것이다. 380마력짜리 XE S를 가져오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호사스러운 G70

해가 넘어가고 어둠이 깔린 오후 8시 무렵, 촬영과 시승이 끝났다. 이제 남은 일은 서울로 돌아가는 일뿐. 모두가 원했던 편의사양 가득한 G70은 편집장님 차지였고, 나머지 기자들은 Q50과 XE를 나눠 탔다. 필자의 차지가 된 건 XE. 승차감은 세 대 중 가장 편안하지만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같은 첨단장치는 없다. G70은 짧게나마 거의 반자율주행을 누릴 수 있고, Q50은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로 발을 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첨단 주행보조장치의 완성도는 가장 최신 장비를 얹은 G70이 가장 높았고, Q50은 차선이탈방지장치의 개입이 너무 늦어 이름 그대로 이탈방지만 해주는 수준이었다. XE는 그냥 없었다. 뭐, 운전이 즐거운 스포츠 세단이니까 딱히 흠잡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편집장님은 번거로운 일을 맡아야 했다. 시승하는 동안 게걸스럽게 먹어치운 G70의 연료탱크를 다시 채워야 했던 것. 3.3L 터보 엔진의 폭발적인 가속력의 대가다. G70 3.3T AWD의 공인연비는 리터당 8.6km. 하지만 시원하게 내달리다 보면 평균연비가 리터당 4km대로 떨어지는 것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반면 XE와 Q50은 서울까지 무리 없이 달렸다. 두 차의 공인연비는 각각 리터당 13.8km와 12km. XE야 디젤이니 당연히 좋겠지만 Q50은 G70에 버금갈 정도로 빠른데도 하이브리드 기술 덕분에 연비가 대단하다. 시승 중 G70만큼이나 쏘아붙였음에도 평균연비는 리터당 8km대를 유지했다. 시속 100km 정도의 고속에서 EV 모드로 엔진을 틈틈이 잠재운 결과다. 참고로 G70도 고속에서 가속 페달을 떼면 자동으로 변속기를 중립으로 바꾸는 기능이 있지만 가속할 때 기름을 워낙 많이 태워 효과는 미미했다. XE는 그런 잔기술 없이 디젤 엔진과 8단 변속기만으로 가장 멀리 달렸다.

고성능과 고효율을 아우르는 인피니티 Q50, 수수하지만 완성도 높은 재규어 XE, 화려함으로 무장한 제네시스 G70. 각기 개성 뚜렷한 세 도전자의 순위를 정하는 건 쉽지 않았다. 차를 보는 각도에 따라 평가가 달라졌으니까. 결국 평가는 갈렸고, 승자는 2:1로 어렵사리 정해졌다. 이날의 승자는 재규어 XE다. 헤리티지를 품은 우아한 스타일과 독창적인 실내, 그리고 균형잡힌 주행성능이 우리를 매료시켰다. 특히 고갯길을 전광석화처럼 누비던 재규어의 감각은 아직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재규어가 후배들 앞에서 선배의 위용을 지켜냈다. 나머지 한 표는 제네시스 G70에게 돌아갔다.​


윤지수 기자 사진 최진호, 이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