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 이클립스는 왜 SUV가 되었나?

미쓰비시 이클립스. 1990~2000년대 일본 스포츠카 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자동차다. 1989년에 등장한 1세대를 시작으로 2012년 마지막 4세대까지 22년간 도로를 누볐다. 생산 대수는 총 90만6,876대. 매끈한 2도어 쿠페 골격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자를 유혹했다. 영화 <분노의 질주>에서 로먼 피어스 역의 타이레스가 화끈한 이클립스를 타고 추격전을 하는 모습도 기억난다.
하지만 이클립스는 2012년을 끝으로 자취를 감췄다. 사실상 정해진 수순이었다. 1990년대 후반, 미국 일리노이 주에 자리한 미쓰비시 현지공장 내 여직원 성희롱 사건과 2000년대 초반 일본 내 조직적 리콜 은폐 사건이 드러나 회사가 점점 휘청거렸다. 각종 경주 무대에서 승승장구 하던 옛 영광도 역사 앞에 무너졌다.
계속된 경영 악화와 판매 부진. 이클립스와 랜서 에볼루션 등 마니아 취향의 자동차는 생명력을 잃었다. 설상가상 2012년에 네덜란드 현지공장이 문을 닫았고, 2015년엔 미국 일리노이 공장도 폐쇄. 해외 주요 생산 거점을 잃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지만, 2016년 5월 12일, 닛산이 2,000억 엔에 인수해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식구가 되었다.
이후 미쓰비시는 라인업 재정비에 들어갔다. 화끈한 스포츠카는 모두 실종. 시장의 대세인 SUV로 중심 타선을 꾸렸다. 또한, eX 콘셉트와 e-에볼루션 콘셉트를 연이어 선보이며, 앞으로 미쓰비시의 전동화 전략과 크로스오버 전문 제조사로서의 위치도 가늠할 수 있었다. 아웃랜더 PHEV의 등장도 눈에 띄었다.
그런데 낯익은 이름이 지난 제네바 모터쇼에 등장했다. 바로 이클립스다. 우리가 알던 2도어 스포츠카의 이클립스는 아니었다. 크로스라는 이름을 덧댄 5도어 SUV로 부활했다. 뾰족한 눈매와 과격한 콧날, 가장자리를 훑는 크롬 장식까지. 전 세계적인 SUV 트렌드에 응답한 과감한 변화였다. 심장엔 1.5L 가솔린 터보와 2.2L 디젤 등 두 개의 엔진을 얹고 CVT 또는 8단 자동변속기를 물리며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도 챙겼다.
장막은 3월에 걷었지만 본격적인 판매는 지난해 가을부터. 유럽을 시작으로 올해 3월까지 일본과 북미, 호주 등 순차적으로 시작한다. 최근 미쓰비시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타 모니카로 기자들을 불러 시승 행사를 치렀는데 외신들의 평가가 퍽 흥미롭다. 이클립스의 진화는 올바른 성장이었을까, 어쩔 수 없는 변화였을까.
모터1.com 소속 비벌리 브라가(Beverly Braga) 기자는 “이클립스 크로스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인데, 왜 굳이 이클립스의 이름을 이어 받았을까 궁금했다”며 “얼굴은 자극적이지만 1.5L 가솔린 터보 엔진은 최고출력과 최대토크가 각각 150마력, 24.7㎏‧m로 경쟁 모델(혼다 CR-V 터보 등)보다 뛰어나지도 않다”고 전했다.
또한, “이클립스 크로스의 꽁무니는 토요타 프리우스처럼 테일램프가 스포일러 역할을 맡는다”며 “작은 창문과 두툼한 C 필러 덕분에 사각지대가 크다”고 평가했다. 그는 “스포티니스(Sportiness, 스포츠성)와 재미를 상징하는 이름을 다시 가져왔다는 측면에서 봤을 때, 이클립스 크로스는 실패했다”고 전했다.
카앤드라이버 소속 마이크 더프(Mike Duff) 기자는 “이클립스라는 이름을 빌린 미쓰비씨의 공식적인 변명은, 오롯이 지붕 라인”이라며 “BMW X6처럼 날렵한 쿠페형 스타일을 뽐낸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뒤쪽에서 바라보면 폰티악 아즈텍(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차 1위로 매년 등극하는 비운의 자동차)과 토요타 프리우스가 떠오른다”며 “사각지대가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운동 성능에 대해서도 비슷한 평가를 내놨다. 그는 “가솔린 터보 엔진은 회전 한계가 6,000rpm이지만 실제로 5,500rpm 이상 쓰지 않는다”며 “전자식 스티어링 휠은 노면의 정보를 모두 희석해 불만족스럽다”고 평가했다. 이클립스 쿠페가 품어왔던 고유의 DNA가 사라졌다는 방증이다.
영국 BBC 탑기어에선 어떤 평가를 내렸을까? “이클립스 크로스는 닛산에서 건너온 쿠니모토 추네히로(Kunimoto Tsunehiro) 디자이너가 빚은 첫 번째 작품”이라며 “르노 카자르, 토요타 RAV4, 혼다 CR-V 등과 경쟁하는 크로스 오버”라고 설명했다. 주행 성능 평가는 다른 매체와 같다. “조향 장치의 반응이 뚜렷하지 않아 때때로 당황스럽다”며 “화끈한 디자인에 걸맞지 않게 조용하고 평범하다”고 덧붙였다.
이클립스 크로스. 새롭게 시작하는 미쓰비시가 미국인들에게 친숙한 ‘이클립스’라는 이름을 빌렸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다. 우스갯소리로 “대충 만들어도 성공한다”는 SUV지만, 여러모로 부족한 상품성이 퍽 아쉽다. 과연 로노-닛산 얼라이언스가 미쓰비시를 통해 얻고자 하는 이익은 무엇일까. 또 미쓰비시가 하나의 일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게 있을까.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다.
글 강준기 기자
사진 미쓰비시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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