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대 스케이트장 될 뻔했던 반만년 묵은 습지를 아시나요
최승표 입력
해발 1280m 한국 1호 람사르 습지
하루 250명에게만 허락된 생태 명소
산양·삵·개통발 등 야생동식물 보고


족도리풀꽃 핀 대암산 들머리
용늪 탐방 코스는 모두 3개다. 인제 가아리 코스와 서흥리 코스, 그리고 군부대를 관통하는 양구 코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대암산(1316m)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서흥리 코스(10.4㎞)를 선택했다.

8일 아침, 용늪마을자연생태학교에 도착했다. 같은 시간 탐방을 신청한 산행객, 마을 주민 김종율(71)씨와 함께 탐방 안내소로 이동했다. 용늪 탐방은 어느 코스를 택하든 안내자 겸 감시자 역할을 하는 마을 주민이 동행한다. 용늪은 천연기념물이자 람사르 습지, 산림유전자원 보호림으로 지정돼 있는 데다, 일부 구간은 민간인통제구역에 포함돼 있다. 하여 문화재청·환경부·산림청·국방부가 함께 용늪을 관리한다. 방문 신청부터 탐방까지 깐깐할 수밖에 없다.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출입허가증을 받았다. 대암산 들머리는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내내 따라다녔고 제법 큰 폭포도 보였다. 낙엽송 우거진 숲길에는 햇볕이 설핏설핏 들었다. 김씨는 “노루귀 빼곡한 이 자리는 이른 봄에는 천상의 화원 같다”며 “아쉽게도 그때는 탐방이 금지돼 있다”고 말했다.
대암산 숲길에서 본 족도리풀꽃. 땅바닥에 바짝 붙어서 핀 모습이 이채롭다. 최승표 기자
제주 오름 같은 풍광

김 해설사는 “빙하기 때 만들어진 분지인데 독특한 기후 때문에 이탄(泥炭) 습지가 형성됐다”며 “4500년 이상 식물이 썩지 않고 켜켜이 쌓였다”고 설명했다. 용늪 일대는 한 해 170일 이상 안개가 끼어 습도가 높고, 5개월 이상 평균 기온이 영하에 머문다.

옛사람들이 용이 승천할 것 같은 풍광이라 하여 ‘용늪’으로 부르던 이곳을 정부가 발견한 건 1966년이다. 73년 천연기념물로 지정했고, 람사르 협약은 97년 용늪을 한국 1호 습지로 지정했다. 이후 습지 복원 작업이 본격화했고, 생태 탐방 프로그램도 생겼다. 그리고 지난해 8월, 군부대가 인근 산자락으로 이전했다.

금강산이 눈앞에 아른아른
용늪에는 독특한 식생도 많다. 비로용담ㆍ개통발 같은 식물은 용늪에서만 발견되며, 기생꽃ㆍ닻꽃ㆍ제비동자꽃 같은 멸종위기 식물도 많이 산다. 개화 시기가 아니어서 이런 진귀한 꽃은 못 만났지만, TV에서만 봤던 식충식물 끈끈이주걱 군락은 봤다.
![북방계 고산식물인 비로용담. 한국에서는 용늪에서 유일하게 발견됐다. [중앙포토]](https://t1.daumcdn.net/news/201806/14/joongang/20180614010115143ehte.jpg)
![용늪에는 식충식물인 끈끈이주걱 군락지도 있다. [중앙포토]](https://t1.daumcdn.net/news/201806/14/joongang/20180614010115640iftf.jpg)
용늪을 둘러본 뒤 대암산을 올랐다. 주민 김종율씨가 다시 안내에 나섰다. 진입로는 살벌했다. 새빨간 ‘미확인 지뢰지대’ 표지판이 길 곳곳에 붙어있었다. 김씨는 지뢰도 많지만 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의 격전지가 멀지 않다고 설명했다.
큰용늪에서 대암산 정상 오르는 길에는 미확인 지뢰지대가 있다. 탐방로만 안 벗어나면 안전하다. 장진영 기자
정상까지는 네 차례 설치된 밧줄을 잡고 올라야 했다. 큰 바위를 온몸으로 비비며 겨우 오르니 대암(大巖)이라는 이름이 비로소 와 닿았다. 꼭대기에서는 장쾌한 전망이 펼쳐졌다. 설악산 대청봉과 점봉산이 뚜렷했고, 양구 펀치볼 마을과 그 너머 북한 땅도 보였다. 연무가 짙어 금강산은 희미하게 어른거렸다. 김씨는 “통일이 되면 금강산 가는 최단 거리 육로가 인제군에서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암산 정상부에 오르면 사방으로 전망이 탁 트인다. 양구 펀치볼마을과 북한 땅도 보인다. 시계가 좋은 날은 금강산도 또렷이 보인다. 장진영 기자
약 40분 산길을 달려 용늪 관리소에 도착했다. 날이 맑았는데 큰용늪 안에 들어서니 희뿌연 안개가 자욱했다. 바람의 향방에 따라 안개가 격정적으로 휘몰아쳤다. 옛사람들이 이 풍광을 보고 승천하는 용을 떠올렸다는 게 비로소 이해됐다.

인제=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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