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를 향한 질주, 포르쉐 911GT3 vs. 로터스 에보라 GT430
에보 입력

최고를 이기고 그 자리에 오르기는 쉽지 않다. 20년 가까이 최고로 군림해온 포르쉐 911 GT3을 물리치는 일은 특히 더 어렵다. 로터스 가운데 가능성 높은 도전자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에보라 GT430 선택하겠다. 에보라는 911과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혁신을 거듭했다. 신형이 나올 때마다 더 가볍고 강력해졌다. 한정 생산하는 GT430은 역대 에보라 가운데 무게당 출력비가 가장 높은 모델이다. 차체를 탄소섬유로 만들었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다. 가격은 보기보다 훨씬 비싸다. 그런 차는 흥미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시승기를 읽고 나면 생각이 바뀌리라 장담한다. 웨일스에서 험난한 테스트를 진행하는 동안 evo 편집부 기자들도 놀랐다. 에보라 GT430은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면모를 한껏 드러냈다.
시승 첫째 날, 다행히도 날씨가 화창했다. 덕분에 기온이 조금 올랐지만 고작 영상 7도였다. 두 차에 끼운 미쉐린 컵 타이어가 제 성능을 발휘하기에 충분치 않았다. 노면도 젖어있었다. 미끄러지기라도 할까 봐 촉각을 곤두세운 채 에보라 GT430의 가속페달을 밟았다. 섣부른 걱정이었다. 코너를 몇 개 돌아보니 막대한 트랙션과 강한 접지력이 엄청난 신뢰감을 줬다. 속도는 자연스레 높아졌다. 빠르게 달릴수록 도로는 정신 없이 굽이쳤다. 길이 굽으면 굽을수록 GT430을 타고 달리는 기쁨은 더 커졌다. V6 엔진의 숨소리가 아무리 거칠어져도 뒷타이어가 헛도는 일은 없었다.
놀라웠다. 서늘한 기온과 젖은 노면에 아랑곳하지 않고 완벽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였다. 정신을 가다듬고 나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전자장비의 공이 크다는 확신이 들었다. 흥미롭게도 에보라의 트랙션컨트롤 기능을 끄려면 2개 버튼(TC와 레이스 모드 버튼)을 동시에 눌러야 한다. 한동안 트랙션컨트롤을 끄고 달렸다. 이 정도로 잘 달릴 줄 몰랐다. 로터스가 이토록 안정적일 수 있다니. 일반도로를 달리는 경주차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름처럼 GT 역할도 톡톡히 해낸다. 그동안 로터스를 너무 과소평가했나 보다. GT430은 울퉁불퉁한 노면도 능숙하게 공략했다. 까다로운 노면을 다스리는 동안에도 피치와 롤을 거의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핸들링은 빈틈없었다. 모든 반응이 즉각적이고 분명하다. 이 차는 다양한 기술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결정체다.
잠시 쉬면서 함께 따라온 포르쉐 911 GT3을 바라봤다. GT3도 GT430만큼이나 훌륭한 주행성능을 보일 게 분명했다. 바라보기만 해도 경이로웠다. 어떻게 이런 쇳덩어리가 그토록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줄까? 차체 뒤편에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을 얹고서 어떻게 앞에 앉은 사람과 시소 놀이라도 하듯 기가 막히게 균형을 맞춘다. 911 GT3은 미스터리 그 자체다. 폭이 넓은 뒷타이어가 도로에 딱 붙도록 짓누르는 목적이 아니라면 차체 뒤쪽에 엔진을 얹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PDK는 없다. GT3의 수동변속기는 여러모로 훌륭하다
GT3에 타자마자 강렬한 인상을 남긴 부분은 몸을 포근히 감싸는 버킷시트다. 두 번째는 스티어링휠 조작감이다. 차를 단지 몇m만 움직여도 스티어링휠이 전하는 엄청난 피드백에 놀라게 된다. 앞타이어에서 일어나는 아주 사소한 일까지 전해진다. 엔진을 뒤에 배치한 구조라서 미드십인 GT430보다 앞바퀴 접지력이 약간 떨어지는 점이 다행스러울 정도다.
GT3의 뒷타이어 폭은 305mm로 295mm인 GT430보다 넓다. GT3의 수평대향 6기통 4.0L 엔진은 최대토크 46.9kg·m를 6000rpm에서 내고, GT430의 V6 슈퍼차저 3.5L 엔진은 일찌감치 4500rpm에서 44.8kg·m 최대토크를 쏟아낸다. 몇km 달려보니 GT3의 뒤쪽 접지력은 GT430보다 떨어지지만 앞쪽 움직임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믿음직스러웠다. 흰소리 조금 보태서 앞타이어가 닿지 않아도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감지할 수 있을 정도다. 차가 어떤 상태에 놓였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든 정보를 충실하게 전한다.엔진이 너무 뒤쪽에 자리 잡았지만 막상 주행하면 뒷바퀴보다 뒤쪽에 놓였다는 사실을 체감하기 어렵다
나란히 주차하고 보니 서로 다른 하드코어 스포츠카는 생김새부터 상당히 차이가 난다. 황금비율을 좇아 분명한 콘셉트로 빚었다. 새하얀 차체에 센터록 휠과 훤히 드러나는 롤케이지를 갖춘 GT3은 마치 시즌 첫 서킷테스트를 앞두고 스폰서의 데칼을 기다리는 호몰로게이션 경주차 같다. 탄소섬유를 바깥에 두른 미드십 스포츠카 GT430은 미니어처 슈퍼카처럼 생겼다. 최근 GT 경주차들이 목숨 걸고 매달리는 공기역학 부품으로 무장한 점이 눈에 띈다. 앞바퀴로 흘러든 공기가 잘 빠져나가도록 윙톱 슬랫을 달았고 뒷바퀴를 위한 덕트도 마련했다. 눈에 확 띄는 고정형 리어윙도 챙겼다. 기본형 에보라의 옆모습을 두고는 어정쩡하다는 의견과 늘씬하다는 평가가 분분했지만, 뒤쪽 측면 유리를 지우고 뒤쪽에 더 큰 휠을 끼운 GT430은 화살촉처럼 공격적인 자세를 완성했다.
에보라 GT430은 60대 한정생산 모델이다. evo가 시승한 진회색 GT430은 그 가운데 1호차다. 편의장비 하나 제대로 갖추지 않은 깡통 차 가격이 11만2500파운드(1억6670만원)인데도, 나머지 59대는 순식간에 다 팔렸다. 로터스 역사상 가장 비싼 차이자, 최고출력(430마력)과 최고시속(315km)이 가장 앞서는 양산 로터스라는 부분이 어필한 듯하다.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사실 이보다 더 빠르고 강력한 로터스도 있다. 역대 최강 로터스는 지난 2012년 겨우 25대 한정으로 만든 에보라 GTE다. GTE 클래스 호몰로게이션 경주차로 제작했는데 최고출력이 438마력에 달했다. 최고시속이 가장 빠른 로터스는 315km로 달릴 수 있는 GT430 스포츠다. GT430과 달리 거대한 리어 스포일러의 도움 없이도 항력을 줄이도록 설계한 부분이 특징이다. 기본형 GT430의 최고시속은 스포츠 모델보다 낮은 305km이지만 리어 스포일러 덕택에 다운포스는 더 강하다. GT430 스포츠가 최고속도에서 100kg에 이르는 다운포스를 내는데, 기본형의 다운포스는 250kg이다. 헤델 서킷 랩타임 기록이 1분 25초 8에 불과한 GT430은 3-일레븐의 뒤를 바짝 쫓는다.
GT430 스포츠는 최고속도가 가장 빠를 뿐만 아니라 무게도 일반 GT430보다 10kg 가볍다. 끝판왕은 역시 10만 파운드(1억4820원)가 훌쩍 넘는 GT430이다. 스포츠 모델과 다른 점은, 먼저 옵션인 메탈릭 그레이 페인트 덕분에 멀리서도 이 차에 얼마나 많은 탄소섬유가 쓰였는지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페인트에 덮여서 거의 티가 나지 않지만 앞뒤 범퍼 에이프런도 탄소섬유다. 보닛·루프·엔진커버는 탄소섬유 패턴이 그대로 보이도록 처리했다. 특히 루프를 가로지르는 센터라인에는 아름다운 헤링본 무늬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GT430에 쓰인 패널 중 일부는 에보라 라인업에서 가장 가벼운 모델이던 스포츠 410에서 가져왔다. 스포츠 410보다 GT430이 26kg 더 가벼운 이유는 많은 부위에 탄소섬유를 사용하고(4.7kg 감소), 티타늄 배기 시스템 사용하고(10kg 감소), 가변식 아이박·올린즈 스프링과 댐퍼 사용(10kg 감소), 그 외에 구석구석 감량(10.3kg 감소)한 덕분이다. 이렇게 35kg이나 줄였지만 리어 스포일러와 광폭 타이어 때문에 무게가 9kg 늘었다.
GT430은 로터스 경량 철학의 정수다. 1299kg에 불과한 가벼운 무게와 폭발적인 퍼포먼스가 한데 어우러졌다. 이와 달리 포르쉐는 GT3에 경량소재를 사용하는 데 집착하지 않았다. 고강성 스틸과 알루미늄을 섞어 차체를 만들고 GT430과 마찬가지로 뒷시트는 아예 떼어냈다. GT3의 무게는 1413kg이다. 그리 무거운 편은 아니지만 GT430과 비교하면 114kg이나 더 나간다.
인테리어 대결에서는 GT430의 패배가 확실하다. 인상적인 요소가 거의 없다. 2009년 에보라 첫 출시 이후 인테리어에 변화가 거의 없었으니 말 다 했다. 그나마 GT430에는 알칸타라와 부드러운 가죽에 밝은색 스티치를 더해 멋을 냈다. 검정 바탕에 흰색 숫자, 빨간 바늘로 이루어진 계기판도 이전보다 시인성이 좋아졌다. 스파르코 시트는 작고 단조로워 보인다. 탄소섬유로 만든 시트에 덧댄 패드는 겨우 엉덩이가 아프지 않을 정도의 쿠션만 제공한다. 등받이 각도 조절도 안 되는데 각도가 너무 곧추서서 불편하다. 운전자세를 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적다.에보라 GT430은 앞바퀴에 370mm V디스크 브레이크를 달고 미쉐린 컵 타이어를 둘렀다
시동을 걸면 V6 엔진만의 독특한 그르렁거림이 울려 퍼진다. 변속감이 더없이 단단하고 체결감도 확실하다. 기어를 1단에 넣자마자 변속기를 개선했다는 점을 체감할 정도다. 기어비는 여전히 길지만 2단으로 시속 110km까지 달릴 수 있어서 국도에서 추월을 위해서 굳이 변속할 필요가 없다. 가벼운 차를 넘치는 토크로 밀어붙이는 재미가 그만이다. 관성이 적은 싱글 매스 플라이휠을 적용한 토요타의 V6 엔진은 4단에서도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을 낸다. 엔진은 2000rpm부터 맹렬하게 달아오르고 뒤범퍼 중앙에 자리 잡은 커다란 배기구로 엄청난 포효가 쏟아져 나온다.탄소섬유로 차체를 두른 GT430과 비교해서 GT3은 조금 더 전통적인 소재를 사용했다
배기음이 매우 크지만 이전에 탔던 모델처럼 귀를 찢을 듯이 시끄럽지는 않다. 시승차에 500파운드(75만원)짜리 사운드 인슐레이션 팩 옵션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메탈릭 페인트, 프리미엄 인포테인먼트 헤드 유닛과 서브우퍼 및 앰프, 에어컨, 검은색 단조 휠 옵션을 추가한 시승차의 가격은 11만9000파운드(1억7630만원)에 이른다. 당연히 무게도 몇kg 늘었다. 911 GT3에도 몇 가지 옵션을 추가했다. LED 헤드램프, 프런트 액슬 리프트, 카본세라믹 브레이크, 가죽 인테리어와 버킷시트를 선택한 덕분에 몸값이 기본가격 11만2000파운드(1억6590만원)에서 13만 파운드(1억9260만원)로 훌쩍 뛰었다. GT430과 마찬가지로 등받이가 고정식이지만 높이와 거리를 전동식으로 조정하면 어렵지 않게 체형에 맞는 운전자세를 찾을 수 있다. 시트포지션을 가장 낮게 조정하면 마치 바닥에 앉은 듯하지만 시야가 워낙 좋아서 운전이 쉽다. 반면, 에보라의 후방시야는 최악이다. 빨래판처럼 쪼개진 엔진 커버와 막혀버린 뒤쪽 옆창 탓에 경사진 교차로에서 코너를 돌 때는 눈감고 운전하는 기분이다.
무게당 마력비를 보고 두 모델의 속도가 거의 비슷하리라 예상했다. GT430이 더 가볍지만 336마력으로 1t을, GT3은 355마력으로 1t을 끈다. 둘 다 비슷하게 빨라 보이지만 실제 양상은 다르다. GT430은 파워를 조금 더 낮은 회전수에서 강력하게 뿜어내지만 전체적으로는 부드러운 감각이다. 4000rpm을 넘는 순간 V6 슈퍼차저 엔진은 본격적으로 폭발하기 시작하다가, 7000rpm을 넘으면 갑자기 툭 끊기듯 파워가 줄어든다. GT3은 상대적으로 여리게 시작해서 출력이 4000rpm까지 매끈하게 상승한다. 흥미로운 부분은 6000rpm을 넘으면 마치 봇물 터지듯이 또 한 차례 힘이 솟아난다. 출력이 한참 잘 나오다가 갑자기 끊어지는 GT430의 엔진과 달리, GT3의 엔진 회전감은 점점 더 짜릿해진다. GT3은 막대한 출력에 우렁찬 사운드까지 더해서 특유의 주행감을 완성한다. 8000rpm이 넘어서도 엔진음이 고조되는 점이 좋아서 변속을 자제하고 단마다 9000rpm까지 엔진을 돌려가면서 달렸다.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데, 그 희열이 어찌나 강렬한지 목덜미에는 소름이 다 돋았다.
그동안 시승했던 991.2 GT3은 대부분 변속기가 PDK였다. 이번 시승차는 6단 수동변속기다. 조작감이 훨씬 좋았다. 기계를 완전히 지배하는 느낌이랄까? PDK는 급가속할 때 기어를 두 단정도 떨어뜨린 뒤 태코미터 바늘을 레드존까지 인정사정없이 돌린다. 반면 수동변속기는 레드라인 직전에 변속하면 엔진 토크를 좀 더 부드럽게 이용할 수 있다. PDK는 7000rpm대를 빈번히 오르내려서 불쾌한 공명음을 자꾸만 만들어냈는데, 수동변속기 모델은 그럴 염려가 적다.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시프트레버 손잡이의 쥐는 감각도 좋다. 정확하고 절도 있는 GT430의 변속기도 충분히 만족스럽지만 GT3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다. GT3의 수동변속기는 단단하면서도 매끄럽다. 클러치 무게는 다른 부품의 기계적인 움직임과 조화를 이룬다.GT430은 차분하고 균형 잡힌 승차감과 환상적인 접지력을 보여준다. 노면이 젖어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다. 어떤 차를 타더라도 스티어링휠을 잡고 운전하다 보면 점점 익숙해진다. 그런데 더 나은 핸들링과 반응성을 보이는 차를 몰아보면 단번에 그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GT430을 몰아본 뒤에 GT3를 탔을 때가 딱 그런 경우다. GT430은 만족스러운 리듬을 보여줬다. 운전자는 그저 받아들이고 즐기면 그만이었다. 인위적으로 연출한 억지 기교가 아니었다. 작은 단점들이 눈에 띄지만 안정적인 주행감과 환상적인 접지력, 훌륭한 차체 균형과 성능을 끌어올려 주는 첨단소재가 주는 만족도가 정말 크다. 물론 911 GT3도 완벽한 차는 아니지만 몰아보면 그냥 모든 점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로터스만큼 스티어링이 날카롭지는 않지만, 도로와 직접 연결한 듯 풍부한 정보를 전달한다. 지금 이 순간 차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GT3에 달린 전동식 파워스티어링이 로터스에 적용한 유압식 스티어링과 비교해 운전감각이 별로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런 평가는 991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포르쉐는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스티어링 감각을 날카롭게 다듬고 뒷바퀴조향 시스템도 넣었다. 결국 991.2에 달린 전자식 스티어링은 유압식 스티어링 이상으로 정교한 피드백을 전한다.에보라의 실내를 보기 좋게 다듬었다
시승 둘째 날 아침, 서리가 내렸다.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 전에 GT430을 살펴본다. 확실히 지금까지 타본 에보라 가운데 가장 고급스럽다. 소재도 좋고 품질도 뛰어나서 GT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그게 전부다. 중간중간 살얼음이 깔린 A5 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섬뜩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스티어링의 무게와 부드러운 정도, 명쾌한 연결성은 훌륭하지만 운전자에게 확신을 주는 피드백이 부족하다. 미끄러운 노면에서 가속해보니 뒤로 하중이 쏠리면서 뒤쪽 차체가 불규칙하게 흔들렸다. GT3을 몰아본 뒤, GT430이 얼마나 예민한지 확실하게 알았다. GT3의 스티어링은 조금 더 자연스럽다. 조향하는 만큼만 자로 잰 듯 정확히 움직였다. 무엇보다 전체적인 균형에서 큰 차이가 생겼다. GT3은 바닥에 낮게 가라앉아 달리는 감각이다. 엔진이 뒷바퀴보다 뒤에 달렸지만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네 바퀴를 모서리 끝에 달아서 방향전환을 할 때마다 차의 무게를 네 바퀴 안쪽에 품은 듯하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성능을 개선한 토요타의 V6
굽은 길에서 미끄러지는 사진을 찍기 위해 장소를 옮겼다. 그곳에서 두 차의 차이점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흠뻑 젖은 노면 위에서 GT3을 타고 달렸다. 우선 모든 자세제어장치를 켠 채로 탔다. 그런 다음 자세제어장치와 트랙션컨트롤을 끄고서 같은 길을 다시 한번 달렸다. 앞머리가 정점을 지날 때 스티어링휠을 조금 더 감으면 뒤에 힘이 몰리면서 미끄러지기 시작한다.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곧바로 미끄러지는 정도가 줄고 다시 접지력을 되찾았다. 같은 과정을 반복하면서 이번에는 가속페달을 조금 더 오래 밟아봤다. 놀랍게도 불안하지 않았다. 미끄러지는 정도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미끄러지는 와중에 이토록 안정적이라니. GT3은 운전자가 주행의 모든 부분을 다스리도록 허락한다.
GT430은 GT3보다는 덜 만족스럽다. 앞바퀴는 도로를 제대로 움켜쥐려는 의지가 약하지만, 뒷바퀴는 움켜쥔 노면을 도통 놔주려고 하지 않는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조금 더 인내심을 갖고 테스트했다. 앞바퀴에 접지력이 생길 때까지 기다렸다가 스로틀을 열어서 뒷바퀴에 힘을 실었다. GT3과 마찬가지로 앞머리가 정점을 지나는 순간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미끄러지는 과정이 너무 갑작스럽다. 워낙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이라 손 쓸 틈이 없다. 스로틀을 닫으면 갑자기 뒤쪽에 접지력이 생긴다. 꼬리가 S라인을 그리듯 휘청거리면서 다급히 접지력을 되찾는다. 매끄럽지도, 차분하지도 않다. 운전자는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이보다 더 큰 미드십 슈퍼카를 탈 때나 경험할 법한 움직임이다. 6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 트랙션컨트롤로 뒷타이어의 슬립 정도를 1~12%까지 조절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GT430은 한계 이상으로 몰아붙이는 일 자체가 어렵다. GT430은 로터스 엠블럼을 달았지만 포르쉐 911보다 더 911스럽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스티어링 직관성이 떨어지고 피드백도 불충분하다. 끝내주는 조향감은 기본형 에보라의 강력한 무기 가운데 하나였다. 반면, GT430은 칼 같은 조향이 왜 중요한지 확실히 증명했다. 조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앞바퀴 접지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길이 없고, 가속페달을 더 세게 밟으면 뒤가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할 수도 없다. 자연히 차체 균형이 무너진다. 개가 꼬리 치는 게 아니라 꼬리 때문에 개가 흔들리는 듯 불안한 상황이 벌어진다. 치명적인 약점이다.
성능과는 전혀 상관없지만 두고두고 눈에 밟히는 요소가 있다. 도어와 차체 유격이 심하다. GT3의 차체 패널과 패널이 만나는 부분은 고급 만년필로 그은 가는 선 같은데, GT430은 크레용으로 그은 듯 간격이 멀다. 차 키와 스티어링 칼럼은 1980년대 차처럼 구닥다리다. 그렇지만 GT430은 여러모로 기억에 남을 만한 차다. 일단, 탄소섬유 차체의 완성도가 매우 높다. 재질도 훌륭하고 맞물리는 부분도 정교하다. 엔진과 변속기는 성격과 목적이 분명하다. 여느 로터스와 마찬가지로 경주차만큼 성능이 뛰어나다.
에보라 GT430을 이 대결의 승자로 삼기에 아쉬운 부분이 많다. 결국 911 GT3이 또 한 번 타이틀 방어전에 성공했다. 포르쉐의 권위를 뛰어넘기 위해 도전했던 다른 수많은 도전자처럼 GT430도 끝내 그 아성을 넘어서지 못했다. 911 GT3은 911 라인업의 최고봉도 아니고 특별히 희소성 있는 재료로 만들지도 않았다. 굳이 특별한 차라는 티를 내지 않는데도 인기가 많아서 구하기 쉽지 않고, 이미 웃돈이 붙어서 거래된다.
911 GT3이 매우 정교하게 제작한, 진정한 운전의 재미를 주는 차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스티어링 감각은 이보다 더 정확할 수 없을 정도로 명료하다. 특히 추월을 위해 급가속하거나 엔진을 팽팽 돌리며 빠르게 달릴 때 쾌감은 어떤 차와도 비교하기 어렵다. 접지 한계를 넘어서면 또 다른 수준의 드라이빙이 시작된다. 균형감은 오히려 더 좋아진다. 덕분에 GT430보다 더 극단적으로 몰아붙일 수 있다. GT3의 수동변속기는 척척 맞물리는 조작감 자체가 훌륭하다. 그저 미치광이처럼 빠르게 타는 차라기보다는 차원이 다른 탈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굳이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을 9000rpm까지 몰아붙이지 않더라도 어떤 속도 영역 어디에서나 즐거움이 넘친다. 포르쉐 911 GT3은 여전히 하드코어 스포츠카의 기준이다.
PORSCHE 911 GT3(991.2)
엔진 F6, 3996cc
최고출력 500마력/8250rpm
최대토크 46.9kg·m/6000rpm
변속기 6단 수동, RWD, LSD
타이어 앞/뒤 245/35ZR20, 305/30ZR20
무게 1413kg
무게당 출력 355마력/톤
0→시속 100km 3.9초
최고시속 318km
기본가격 11만1802파운드(1억6570만원)
LOTUS EVORA GT430
엔진 V6, 3456cc, 슈퍼차저
최고출력 430마력/7000rpm
최대토크 44.9kg·m/4500rpm
변속기 6단 수동, RWD, LSD
타이어 앞/뒤 245/35R19, 295/30R20
무게 1299kg
무게당 출력 336마력/톤
0→시속 100km 3.8초
최고시속 305km
기본가격 11만2500파운드(1억6670만원)
글 · 존 바커(JOHN BARKER)
사진 · 스티븐 할(STEPHEN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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