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세컨드가 필요 해

태권 한 2018. 9. 5. 10:26

모터 트렌드 입력                 

여러분은 어떤 세컨드카를 원하는가? 어떤 세컨드카를 들이고 싶은가? 여덟 명의 자동차 칼럼니스트와 기자, PD가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해지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세컨드카를 이야기한다.

달리기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차를 원해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소위 ‘드림카’라는 것이 늘 들어 있다. 다다익선이라고, 많으면 많았지, 드림카가 꼭 하나일 리도 없다. 나도 그렇다. 늘 두서너 대, 일고여덟 대의 드림카가 의식 속으로 들어왔다 빠져나가곤 한다. 꿈꾸는 것은 자유라고 하는데, 심지어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고려해 드림카를 접근 가능한 가격대로 묶어놓으며 자유롭지 않게 상상해도 그 정도다. 소심한 성격 탓이기도 하지만 상상을 짓누를 정도로 현실의 무게는 만만치 않다.

차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해 자동차 글 쓰는 일을 하며 살고 있지만 지금 와서 보면 차와 글에 대한 열정은 식어버리고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해 일만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글이야 늘 쓴다고 쳐도 일이 많아질수록 정작 글쓰기의 뿌리가 되는 자동차와 부대낄 일은 점점 줄어든다. 나아가 마니아다운 열정을 펼치거나 순수하게 차와 씨름하며 즐길 일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순수하고 뜨거운 차 그리고 그런 차를 즐기고 싶은 갈망이 심해진다.

서론이 길었다. 갖고 싶은 세컨드카로 대뜸 케이터햄 세븐을 꼽은 배경이 그렇다. 이미 일상용으로 굴리고 있는 차가 있고 그럭저럭 만족하며 타고 있는 이상, 세컨드카를 갖는다면 뭔가 비현실적인 차일수록 좋다. 그러면서도 마니아로서 차의 본질인 달리기를 온전히 즐길 수 있고, 글쟁이로서 차에 담긴 이야기와 경험하고 즐기며 끌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은 차면 좋다. 그런 차 중 하나(앞서 이야기한 두서너 대, 일고여덟 대 중 하나)가 바로 케이터햄 세븐이라는 얘기다.

세븐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이미 마니아들은 잘 알고 있다. 20세기 모터스포츠 역사에서 굵은 획을 그은 비운의 천재 콜린 채프먼의 철학이 담겨 있고, 현대적인 순수 스포츠카의 원형이면서 계속되는 변화 속에서도 처음 태어났을 때의 개념을 이어받고 있는 몇 안 되는 차 중 하나다. 내가 아는 한 세븐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차 가운데 가장 솔직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달리기와 관련된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로터스 엘리스나 에리얼 아톰 같은 차도 꼽을 수 있겠지만 그런 차들의 원형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것만 남겨놓은 것이 세븐이다. 

뼈대, 섀시, 동력계와 구동계, 운전대와 기어 레버, 페달과 최소한의 계기, 휠과 타이어,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자리, 그런 것들을 간신히 가릴 정도만 갖춘 껍데기. 그게 전부다. 세븐도 여러 모델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기본형 중의 기본형인 160이면 족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단순화하고 가벼움을 더하라’는 채프먼의 철학이 가장 잘 구현된 모델이 세븐 160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빠른 것과 재미있는 것은 다르다. 세븐은 후자임이 틀림없다.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음으로써 온전히 달리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는 만큼, 일상 속에서 곧잘 잊는 자동차의 본질을 되새길 수 있는 자극제와 활력소 역할을 제대로 할 것이다.

국내에서도 세븐을 새 차로 살 수는 있다. 다만 법규 때문에 번호판을 달 수가 없다. 차고에 모셔뒀다가 캐리어에 실어 서킷으로 가져가 타거나, 전문 업체의 보관 서비스를 이용해야 한다. 내 차로 만들지 않더라도 빌려서 탈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어떤 방식이 되건 조금만 ‘노오오오오력’하면 원래 목적대로 직접 경험하고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세븐은 나에게 사그라지던 마니아로서의 열정을 불사를 수 있는, 비현실과 현실 사이를 이어줄 수 있는 세컨드카로 꿈꿀 만한 차다.

류청희(자동차 평론가)

 

산과 들에서 함께할 동반자여!

유라시아를 횡단하고 나서부터였을 거다. 자연이 좋아졌다. 이름 모를 풀, 세월 두른 나무, 눈을 간질이는 꽃 같은 걸 즐기게 됐다는 뜻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광야가 좋아졌다. 문명사회와 동떨어진 환경에서 도리어 숨통이 트였다. 광야는 풍경까지 단순하니 더 자유로웠다. 닦아놓은 길 따위는 장식일 뿐인 광야를 달리고픈 마음이 돌아와서도 가슴 한쪽에 가득했다. 좁은 한반도에 광야는 없겠지만 자연은 있다. 잠시 숨 돌릴 공간은 내어준다. 조금 더 자연 속으로 들어가려면 마땅한 자동차가 필요하다. 내가 지금 타는 미니 쿠퍼로는 어쩔 수 없이 활동 범위가 좁을 수밖에 없다. 해서 지프 레니게이드를 고려한다. 랭글러를 사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맞지만 태생적으로 큰 차가 부담스럽다. 짧은 휠베이스가 주는 발랄함과 가벼움을 사랑한다. 그런 점에서 레니게이드만 한 자동차가 없다우선 탄력 좋은 서스펜션이 울퉁불퉁한 험로를 즐기게 한다. 지프가 갈고닦은 네바퀴굴림은 물론, 로 기어도 쓸 수 있다. 조금씩 용기 내서 자연에 한 발자국 다가가려면 변수가 생긴다. 그때 로 기어는 든든한 뒷배가 된다. 도구가 있지만 안 쓰는 것과 아예 없어 못 쓰는 건 다른 얘기다. 설사 쓸 일이 없는 곳으로만 다닌다고 해도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그럴 수 있는 자동차를 탄다는 기분만으로도 용기가 생기기도 한다. 사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헤드램프가 동그랗기 때문이다. 그동안 헤드램프가 동그란 자동차만 타왔다. 1세대 마티즈도, 티뷰론 터뷸런스도, 미니 쿠퍼도 다 그랬다. 내게 동그란 헤드램프는 빈티지를 상징한다. 또한 친근함을 배가한다. 즉, 취향을 자극하는 셈이다. 자동차는 이동 수단이지만 여정의 동반자다. 단지 쓸모만으로 선택하기에 담기는 애정이 남다르다. 차문을 열기 전, 다가갈 때부터 흐뭇한 감흥을 자아내야 한다. 

지프 레니게이드의 해외 오너들 사진을 보면 다채롭다. 저마다 레니게이드를 레저에 맞게 치장하며 삶을 즐긴다. 그만큼 자동차와 통하는 구석이 많다는 뜻이다. 레니게이드에는 합당한 도구로서 능력과 여정의 동반자로서 매력이 혼재한다. 그 조건에 부합하는 거의 유일한 소형 SUV다. 레니게이드를 타고 한적한 임도를 달리는 상상을 한다. 그러다가 트렁크에서 장비를 꺼내 작은 쉼터를 만든다. 레니게이드는 그 옆에서 하나의 소품 역할도 할 테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동반자랄까? 함께할 날을 고대하며 중고 사이트를 매번 들여다본다. 디젤 론지튜드 모델이 2000만원 중반쯤으로 형성돼 있다. 가솔린 2.4 모델은 네바퀴굴림이 아니기에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다. 지붕을 뗄 수 있는 리미티드 모델이 탐스럽지만 몇백만 원 더 얹어야 한다. 언제나 절충은 필요한 법이다. 론지튜드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정리한다). 아마 레니게이드는 세컨드카라기보다 다음 자동차로 소유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세컨드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도심을 랠리처럼 짜릿하게 바꿔주는 미니 쿠퍼와 여정을 모험으로 고조시키는 레니게이드의 조합이라니. 오우!

김종훈(자동차 칼럼니스트) 

 

아빠의 캠퍼밴앓이큰 차를 좋아하지 않는다. 짐을 많이 싣기 위해 넓은 공간이 필요하거나 오프로드를 달리지 않는 한 몸집이 큰 차는 과유불급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운전하고 다닐 일이 많은 이에겐 중형 세단도 크다. 차의 본질은 운전과 이동에 있다. 그러기에 작아도 충분하다. 그런데 요즘 이 가치관을 뒤흔드는 차가 나타났다. 현대 그랜드 스타렉스 캠핑카다.

최근 뉴질랜드로 여행을 다녀왔다. 캠퍼밴을 끌고 보름 동안 뉴질랜드 북섬을 돌아다녔다. 든든한 쉼터와 이동 수단이 돼준 녀석은 메르세데스 벤츠 비토를 개조한 캠퍼밴이었다. 루프 텐트와 냉장고, 싱크대 등 기본적인 장비를 갖췄지만 개조 품질이 어설프고 화장실과 샤워실이 없었다. 하룻밤을 위생적이고 편안하게 보내려면 캠핑장을 이용해야 한다는 제약이 따랐다. 하지만 모터홈 급의 대형 캠핑카를 선택했더라도 안전을 이유로 어차피 캠핑장을 이용하려 했으니 이 작은(?) 캠퍼밴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게 한참 캠퍼밴의 매력에 푹 빠져 뉴질랜드 북섬을 헤집고 다니던 중 한국에서 반가운 뉴스가 들렸다. 현대차에서 더 뉴 그랜드 스타렉스 캠핑카를 출시했다는 소식이다. 그 보도자료를 로토루아 호수에서 바삭한 빵을 씹으며 읽어 내려갔다. 지금 타고 있는 캠퍼밴과 비교하면서 현대가 야심차게 출시한 스타렉스의 실내 사진을 들여다봤다. ‘와, 훌륭한데!’

평소에 오토캠핑을 하면서 ‘아, 차에 이런 게 있으면 참 좋을 텐데…’라고 생각했던 거의 모든 시설이 담겨 있다. 무시동 히터와 냉장고, 램프, 루프 텐트 등의 작동을 하나의 통합 컨트롤러로 편하게 할 수 있다. 50리터 물통과 간이 샤워기를 달아 밖에서 간단한 샤워도 할 수 있다. 2열과 3열은 평평하게 펴서 침대로 활용하고, 루프 텐트는 유압으로 편다. 사다리를 타고 옆구리가 결리도록 루프 텐트를 펴고 접었던 지난 며칠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인덕션 레인지를 들어 올리면 싱크대가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두 장비가 동시에 쓰이지 않음을 간파한 것이다.

루프 텐트를 올리면 드러나는 50인치 평면을 스크린으로 활용해 실내에서 빔프로젝터로 영화도 볼 수 있다. 캠핑장에서 영화를 감상해본 이들은 알 것이다. 빔프로젝터와 스크린을 가져간다고 한들 밖에선 벌레와 온도, 소음 때문에 현실적으로 영화를 보기가 쉽지 않다. 이 캠핑카에는 슬라이딩 도어 안쪽에 모기장이 있어 한여름 밤의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이 차를 개발한 사람은 실제로 오토캠핑을 즐기는 이가 분명하다. 공간 구성과 디자인이 마치 풀옵션 원룸처럼 완벽하다. 안을 들여다볼수록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뉴질랜드로 수출해도 잘 팔리겠다. 한순간에 비토 캠퍼밴을 오징어로 만들어버리는 높은 퀄리티에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캠퍼밴앓이’는 현재 진행 중이다. 귀국 후에도 여러 사이트를 뒤적거리며 후기를 보고 견적도 내보고 행복한 상상을 펼친다. 기본 가격 5100만원에 네바퀴굴림 시스템과 전자동 팝업 장치, 각종 패키지 옵션을 넣으니 차값이 6000만원을 훌쩍 넘는다. 하지만 일반 그랜드 스타렉스를 사서 따로 개조하는 비용을 생각해보면 비싸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차는 분명 아내와 일곱 살배기 딸도 좋아할 것이다(라고 굳게 믿는다).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지금 타고 있는 작은 해치백과 전기차와는 다른 경험, 추억을 선물할 것이다. 지금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입맛을 다시고 있다.

 

조두현(프리랜서 PD)

 

예쁘고 착실한 7인승 SUV면 좋겠어

주방에 놓을 음식물 쓰레기통 하나도 예쁜 것을 찾느라 몇 시간이고 인터넷 쇼핑몰을 뒤적이는 나인데 정작 차는 못생긴 중형 세단을 타고 있다. SUV를 싫어하는 남편의 취향과 3000만원이라는 가격 한계선을 고려하면 내 선택은 꽤 합리적이었다(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7년 전에는 3000만원 언저리로 살 수 있는 차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첫 차 역시 내 마음에 쏙 드는 차는 아니었다. 1000만원 언저리의 중고차를 알아보던 난 선배들의 충고와 협박(?)을 받아들여 밋밋하기 짝이 없는 국산 소형 세단을 샀다. 그래서 난 예전이나 지금이나 차에 대한 애정이 없다. 아마도 내 마음에 쏙 드는 차를 사지 못해서일 거다. 범퍼가 긁혀도, 옆구리에 상처가 나도 그냥 옷소매로 쓱 문지르고 말 뿐이다. 마음이 아프거나 속이 상하지 않느냐고? 글쎄. 

솔직히 나도 예쁜 차를 타고 싶다. 볼 때마다 마음이 흐뭇해지는 차를 타고 싶다. 하지만 나 혼자 타는 차가 아니니 가족(남편뿐이긴 하지만)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요즘 내 마음에 쏙 드는 세컨드를 들이는 상상을 한다. 세컨드이니 일단 예뻐야 한다. 운전석에 앉았을 때 마음이 편안해질 만큼 실내도 푸근했으면 좋겠다. 세단은 이미 한 대 있으니 중형이건 대형이건 세단은 사양한다. 두루 쓰기에 작고 예쁜 차가 좋겠지만 가끔 부모님과 조카들 태울 일을 생각하면 7인승 SUV(미니밴은 세컨드보다 퍼스트에 가까워 보인다)가 적당할 듯하다. 그래서 지금 내 마음속에 들어온 차는 볼보 XC90다. 

많고 많은 7인승 SUV 가운데 XC90를 콕 짚은 이유는 3열 시트의 승차감 때문이다. 지난해인가 랜드로버 디스커버리와 아우디 Q7, XC90의 3열 승차감을 비교해봤는데 XC90가 예상외로 훌륭했다. 디스커버리는 달릴 때 출렁이는 느낌이 커 불편했고 Q7은 어른이 제대로 앉기 어려울 만큼 비좁았다. 하지만 XC90는 공간도 적당했고, 무엇보다 달릴 때 승차감이 괜찮았다. 이런 자리라면 부모님을 태우기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실 3열에까지 누군가를 태울 일은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다. 하지만 남편을 설득하려면 이런 구실이라도 있어야 한다.중형 세단에서는 누릴 수 없는 넉넉한 트렁크 공간과 눈 덮인 도로도 거뜬히 달려줄 것 같은 듬직함을 강조한다면 남편도 고개를 끄덕이려나?

서인수

 

세컨드카는 가장 이기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수없이 많은 자동차를 경험하고 좋아하지만 내 마음속 세컨드카는 항상 한 종류였다. 뒷바퀴굴림 경량 2인승 로드스터. 그것도 수동기어라면 최고의 선택이 된다. 물론 로드스터는 비현실적이다. 눈 내리는 겨울과 장마철, 뜨거운 햇볕이 쏟아지는 여름까지 4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도로 환경에서 실제로 지붕을 열고 달릴 수 있는 날은 얼마 없다. 더욱이 가족이 있는 가장이라는 사회적 위치에서 두 명만 타는 데다 짐 싣는 공간도 좁은 로드스터는 가장 비현실적이자,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차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 대의 차로는 내가 가진 자동차에 대한 욕구를 모두 만족시킬 수 없다. 트랙 달리기를 포함한 스포츠카와 시내에서 혼자 타기 위한 소형차, 가족들과 함께 탈 SUV를 하나의 차에 담을 순 없으니까. 여기에 주차 공간 등의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석 대를 가질 수는 없었지만 꽤 오랜 기간 동안 내 차고를 차지한 자동차는 최소한 두 대였다. 일상용으로 쓰는 퍼스트카와 특별한 상황을 위한 세컨드카. 가장 평범했던 조합은 자동변속기와 디젤 엔진을 얹은 세단과 SUV였다. 세단은 출퇴근용이었고 SUV는 아이들과 함께 짐을 잔뜩 싣고 캠핑을 다니기 위한 차였다. 그나마 차를 함께 쓰는 이들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그래서 세컨드카로 로드스터를 꿈꾸는 것은 지극히 이기적이다. 물론 현재 가지고 있는 티코와 제네시스 쿠페는 이런 이기심이 어느 정도 반영된 상태인 것은 분명하다. 두 차 모두 승차감은 말할 필요도 없고 고등학생인 아이들이 타기에 넓은 공간이 아니다. 심지어 제네시스 쿠페를 타려면 누군가는 뒷좌석에 오르기 위해 시트를 접고 몸을 구부리는 수고가 필요하고, 틴팅이 되어 있지 않은 티코는 주변의 시선을 견뎌야 한다. 물론 티코보다 넓고 편안한 제네시스 쿠페, 제네시스 쿠페보다 타고 내리기와 승차감이 좋은 티코라고 억지를 부려 같이 다니고는 있지만, 어쩌다 평범한 세단이나 SUV를 탈 때 느긋해지는 아이들의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미안해지는 상황임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난 오늘도 위와 같은 조건의 로드스터를 생각한다. 새 차라면 아직 수동변속기 주문이 가능하다는 포르쉐 박스터나 재규어 F 타입을 꿈꾸고, 병행 수입으로 가져온 마쓰다 MX-5나 뼈대는 같지만 좀 더 레트로가 더해진 피아트 124 스파이더를 찾는다. 물론 감당하기 힘든 차값에 요즘은 다시 중고차 판매 사이트로 방향을 돌려 이미 즐겨찾기로 등록해 놓은 BMW Z3 매물 검색 버튼을 계속 눌러보는 일만 하고 있다. 조만간 아이들이 독립할 때까지 괜찮은 차가 살아남아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 아래 나 혼자만 존귀하다는 이 말이 로드스터 구입의 논리가 되고 있다. 원래 이런 용도로 쓰일 말은 아니지만 이기적인 선택에 무얼 바라겠는가! 어차피 인생은 한 번뿐이고, 내가 탈 수 있는 차는 제한돼 있지 않던가. 의미까지 부여하고 나니 로드스터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깊어진다.

 

이동희(자동차 칼럼니스트) 

 

취향저격 모터홈에 빠지다

내가 원하는 차는 멋진 세단도, 고성능 스포츠카도 아닌 캠핑카다. 이름부터 ‘쿨’내 진동하는 하이머 밴이다. 독일의 RV 전문기업 하이머에서 만든, 캠핑을 위한 엑기스만을 담은 모터홈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심 아파트에 사는 처지에다 작고 빠른 걸 좋아하는 내 취향과 모터홈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기아 봉고나 현대 포터의 섀시에 거주 공간을 올린 국내 모터홈이 합리적인 모델일 게다. 하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차가 아니니 무효다. 트레일러 캠핑카는 이미 한 대 갖고 있으니 의미가 없다. 아직까지 하이머 밴 이상의 ‘취향저격’ 캠핑카를 만나보지 못했다. 

길이가 6미터를 채 넘지 않아 ‘울트라 콤팩트’로 분류되지만 이 차는 침실과 거실, 욕실, 주방을 모두 갖춘 완벽한 집이다. 난 길이가 5.45미터(밴 374는 5.99미터다)에 불과한 하이머 밴 314를 세컨드로 들이고 싶다. 밴 374와 다른 점은 침대 스타일인데, 폭 80센티미터 싱글 침대 두 개를 갖춘 밴 374보다 독립된 침실(더블 침대)을 갖춘 밴 314가 더 마음에 든다. 둘 다 폭이 2.22미터에 불과해 대형 모터홈에 비해 운전이 한결 쉽다. 

고급스러운 실내를 둘러보면 개발자 역시 캠퍼임이 분명하다. 작은 공간을 알차게 쓰는 아이디어가 가득하다. 샤워 공간은 무척 넓은데 세면대는 쓰지 않을 때 접어서 올릴 수 있다. 거실 시트 아래 수납함이 자리했고, 운전석과 조수석을 뒤로 돌려 테이블과 마주하면 소박한 4인 거실이 완성된다. 침대 힌지 아래에는 옷장이 숨었다. 옵션으로 테일게이트에도 달 수 있다. 앞자리에는 어린이용 간이침대도 설치가 가능하다. 주방은 아주 작지만 한식을 조리할 때는 대부분 바깥에서 준비하는 터라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저 악천후에도 모터홈 안에서 간단한 음식을 준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뿐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바로 욕실이다. 채광창에 접이식 세면대, 수전, 거울, 변기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버릴 게 없다. 완벽하다. 차급에 비해 이런 욕실을 가진 모터홈은 단언컨대 하이머 밴이 유일하다. 히터는 기본이며 인테리어 조명은 모두 LED 램프를 썼고 알루미늄 프레임 창문은 멋스럽다. 

베이스가 된 모델은 피아트 듀카토다. 130마력 멀티젯 엔진에 6단 변속기를 물렸다. 캠핑에 필요한 온갖 액세서리를 오리지널 부품으로 공급하는 하이머가 대단하다. 이름에서 언뜻 중국 냄새가 풍기지만 하이머(Hymer)는 레드닷 어워드, 독일 디자인 어워드 등 많은 수상 이력과 반세기 역사를 지닌 독일의 캠핑카 제조사다. 현재 에어스트림을 수입하는 블루버드 엔터프라이즈에서 미국산 하이머 악티브 모델은 수입하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유럽산 하이머 밴은 국내에서 만날 수 없다. 그래서 세컨드카가 필요한 마음을 꾹 누른 채 오늘도 루프톱 텐트로 버티는 중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최민관(자동차 칼럼니스트)

 

완벽히 나만의 공간이 돼주오

아내는 여섯 살짜리 남자를 품에 안고 잠들어 있었다. 나와 농밀하게 온기를 나누던 침대 위에서였다. 조용히 안방 문을 열고 나와 둘러본 집 안. 옷방은 말할 것도 없고 거실이며 서재까지 유모차와 카시트, 유아용 장난감 등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장난감 더미를 발로 쓱쓱 밀어내 만든 자리에 눕자 불현듯 콧속으로 눅눅한 공기가 밀려들어왔다. 그때부터였다. 세컨드카를 갖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된 건. 딱히 외롭거나 쓸쓸해서는 아니었다. 그저 집 안에서 챙기기 어려운 ‘나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고, 그러기에 한 평 남짓도 되지 않는 자동차는 더할 나위 없어 보였다. 

문제는 명분이었다(모든 ‘지름’의 과제는 당위가 아니라 그럴싸한 명분을 갖다 붙일 수 있느냐에 있다). 가족이 함께 쓰는 수입차는 불행히도(?) 멀쩡했다. 나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해 선택한 차라 운전하는 재미는 떨어졌지만 그 밖에는 딱히 흠잡을 게 없었다. 객실과 적재공간 모두 세 식구가 쓰기에 부족함이 없고, 연비는 필요 이상(!)으로 좋은 데다 잔고장 때문에 말썽 부리는 일도 없는, 마치 아내처럼 현모양처 같은 자동차였다. 다만 아내의 연이은 접촉사고로 보험료가 껑충 뛰었다는 점이 걱정이었다. 수년째 몰았는데도 여전히 난생처음 타본 렌터카처럼 낯설어하는 아내도 문제였다. 그거면 충분했다! 

작전에 들어갔다. 아내를 설득하는 게 먼저였다. 스포츠카 수준까지 크게 치솟은 보험료가 가계에 적잖은 부담임을 힘주어 말했다. 접촉사고가 잦은 건 네 운전 실력이 미숙해서가 아니라 차의 운전 환경이 부적절해서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보험료 할증이 끝날 때까지만 운전하기 쉽고 보편적인 국산 세단으로 갈아타보자 아내에게 제안했다. 편의사양과 안전보조 장비도 잘 갖춰져 있어 기대 이상 만족도가 클 거라는 추임새도 보탰다. 지은 죄(?)가 있는 아내가 망설이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자! 

다음 단계는 내가 염원하는 ‘두 번째 차’를 물색해 아내에게 들이대는 일이었다. 현실적인 꿍꿍이가 있었다. 국산 세단 구입비용은 보유한 수입차 매매비용으로 갈음한다. 수입에서 국산으로 갈아타면 보험료는 절반가량 줄어들 터. 차 두 대를 운용하면 주행거리 특약으로 보험료 환급도 기대할 수 있다. 새로 장만할 가족용 차와 내가 갖고 싶은 차의 배기량을 1600cc 미만으로 억제하면 자동차세 부담도 최소화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원하는 차를 고르는 일인데, 그건 어렵지 않았다. 나 혼자만 ‘독점’할 수 있는 차가 우선이었다. 나만의 취향보다는 나 혼자 타는 게 적절한 크기의 문제였다. 그리고 두 번째 차가 아니라 ‘두 번째 연인’ 같은 차였으면 싶었다. 너무 현실적이기보다 약간은 낭만적이고, 완벽하게 갖춰져 있지 않아 내가 채울 여지가 있는 차라면 더욱 끌릴 터였다. 말하자면 일탈하는 기분을 안겨줄 수 있는 작은 구식 차였는데 떠오르는 차는 딱 하나. 현대적이지만 아날로그 감성이 가득하며 지붕도 열 수 있는 피아트 500C였다. 중고 매물이라면 국산 준중형 세단 기본 트림 값으로도 장만할 수 있었다. 

마침내 용기 내 아내에게 허락을 구했다. “왜 세컨드카가 필요한데?” 예상대로의 질문. 그간 치밀하게 설계한 답변을 찬찬히 내놓을 차례였다. “그건 이러쿵저러쿵하고 블라블라해서인데…, 이제 내 공간 하나쯤 갖고 싶기도 하고….” 마지막 문장에 그녀가 순간 낯빛을 바꾸며 말했다. “당신만의 공간이 왜 필요한데? 이 집에 나만을 위한 공간은 있고? 그리고 세컨드 같은 차라니. 이제 나로는 만족을 못하는 거야?” 변명조차 떠오르지 않는 완벽한 반박이었다. 일장춘몽만도 못한 내 망상도 딱 거기까지였고.

김형준(자동차 칼럼니스트) 

 

낭만이 넘쳐흐르는 모건 3휠러

세컨드카는 나를 꿈꾸게 한다. 어떤 차를 고르냐에 따라 나의 삶이 달라질 거다. 실용적인 기아 레이를 만족스럽게 타는 나에게 세컨드카는 오로지 재미있는 차를 뜻한다. 먼저 생각한 것이 포르쉐 박스터, 쉐보레 콜벳 같은 2인승 스포츠카였다. 공항 갈 때 여행용 트렁크를 실을 곳도 마땅치 않은 차들이지만 운전 재미가 넘쳐난다. 하지만 값이 만만치 않고, 무엇보다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그 상쾌함이 모터사이클만 못하다는 생각에 패스했다. 요즘 난 모터사이클에 푹 빠져 있다.

현대 스타렉스는 어떨까 생각도 했다. 손주들 태우고 놀러 다니는 건 물론 모터사이클도 실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픽업트럭도 재미난 차가 될 수 있다. 르노 트위지도 재미있을 것 같고, 현대 벨로스터 N으로 가속페달을 깊게 밟아보는 것도 좋을 거다.   

르노 4나 시트로엥 2CV 같은 클래식카는 또 어떻고. 피아트 124 같은 차도 괜찮아 보인다. 점잖지 못하게 앵앵거리던 작은 엔진은 매력이 넘쳤다. 그렇게 나의 기억은 1970년대에 머문다. 작은 차가 좋은 건 경제적인 부담이 덜한 데다 정비 문제도 간단하지 않을까 해서다. 하지만 상태가 좋은 클래식카를 찾아야 한다.

이렇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옛날 차 모양을 한 요즘 차가 떠올랐다. 영국의 모건 3휠러는 앞바퀴 두 개, 뒷바퀴 하나로 1930년대의 모건 세 바퀴 차를 재현한 것이다. 앞바퀴 사이로 미국 S&S의 82마력짜리 공랭식 V2 모터사이클 엔진을 얹고, 6초 만에 제로백을 해치운다. 마쓰다 미아타의 5단 기어를 써서 하나뿐인 뒷바퀴를 굴린다. 세 바퀴 차를 알게 되자 그 매력에 점점 빠져든다.

비좁은 운전석은 팔을 밖으로 내놓고 타야 할 지경이다. 조수석에는 나와 몸을 꼭 붙이고 앉아야 한다. 트렁크도 없어 짐이 있다면 차 밖으로 매달아야 한다. 지붕도 없어 비가 오면 우산을 펼쳐야 한다. 하지만 미국산 모터사이클 엔진 소리가 그렇듯 ‘투둑투둑’거리며 바람을 가로지르는 순간 낭만이 넘쳐흐른다. 운전자는 가죽으로 된 모자와 고글을 쓰는 것이 좋은데, 그래야 최고속도를 좀 더 올릴 수 있어서다. 

유튜브에서 이 차를 보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영국 출장 때 일부러 모건을 찾아가 시승도 했다. 영국의 시골길을 달리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국내엔 수입될 것 같지 않아 꿈에나 그리는 차였는데 누군가에게 서울 거리에서 3휠러를 봤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도 용기를 내야겠다고 다짐한다.   

박규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