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벤츠 에이플러스 세단

태권 한 2018. 11. 2. 09:54

벤츠 에이플러스 세단

2018. 11. 2.

벤츠의 명확한 성격 구분과 빈틈 공략은 이번에도 성공적으로 보인다. 

언제부터였는지도 가물가물하다. 메르세데스 벤츠가 라인업 확장에 몰두하기 시작한 게. 이제는 크기와 보디 형태가 다른 모델이 서른 가지나 넘는다. 승용 모델만 따져도 그렇다. 당연히 더 이상의 차종 추가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이러다 차 이름에 사용할 알파벳마저 모자랄 판이니까. 그런데 여기에 A클래스 세단을 또 추가했다. 앞바퀴 굴림 기반의 소형차만 여섯 가지로 늘어난 것이다. 

판매 볼륨을 늘리기 위한 고급차 브랜드의 차종 늘리기 전략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벤츠의 이번 결정은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그들에게 A클래스에 정말 세단이 필요할까? 쿠페와 세단의 특징을 섞은 CLA라는 차가 이미 있는데 말이다. CLA는 그간 입문용 벤츠로서 브랜드 저변을 넓히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워왔다. 이 상황에서 A클래스 세단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기자는 이런 궁금증을 안고 글로벌 시승 행사가 열린 시애틀로 날아갔다.

실용적인 소형차에서 스포티한 해치백으로

시애틀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큰 폭으로 성장하는 도시다. 평균소득, 인구, 부동산 가격 등 해마다 급등하는 경제지표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동아시아, 캐나다, 알래스카 등 다양한 문화가 교류하는 지리적 이점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 코스트코, 보잉, 아마존 등 내로라하는 기업들의 본사가 위치한 덕분이다. 작년 가을에는 메르세데스 벤츠도 이곳에 미국 내 여섯 번째 R&D센터를 개소했다. 

시애틀 R&D센터에선 소프트웨어 전문가를 필두로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과 커넥티드 카 기술 개발을 맡는다. 아울러 양산차 최초의 인공지능 인포테인먼트 MBUX에서 구동하는 일부 프로그램도 연구 중이다. A클래스는 MBUX를 처음으로 도입한 모델. 이 차의 글로벌 시승회를 시애틀에서 진행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젊고 똑똑한 인재가 모이는 핫플레이스와 첨단 기술을 품은 프리미엄 콤팩트 세단의 만남은 퍽 어울리는 조합이니까.

참고로 A클래스가 이렇게 화려해진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세대와 2세대는 톨보이 스타일의 보디로, 높직한 승차 위치와 시야를 자랑하는 유럽형 MPV였다. 운전이 편할 여러 특징을 두루 갖춘 덕분에 고급 브랜드를 선호하지만, 주머니 사정은 가벼운 노년층에게 인기가 많았다. 이는 A클래스가 장차 C클래스, E클래스를 구입케 만드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따라서 3세대 모델은 고객평균 연령을 낮출 필요가 있었다. 젊은 고객을 사로잡을 확실한 방법은 주행성능을 강조한 낮고 넓은 해치백 스타일. 그들의 소형차 전략이 공격적으로 달라진 시점도 이 무렵부터다. 벤츠는 크로스오버 GLA, 4도어 쿠페 CLA 등 플랫폼을 공유하는 다른 소형차를 추가해 폭넓은 고객층을 공략했고, 꽤 의미 있는 효과도 거두었다. A와 B클래스만 있던 2012년 벤츠의 소형차 판매는 약 23만 1,000대였지만 라인업을 늘린 이후인 2014년에는 46만 3,000대였다. 불과 2년 사이 두 배 넘게 증가한 셈이다. 

이번 4세대 A클래스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중국과 미국 그리고 아시아 시장에서 입지를 굳히려 한다. 이 지역은 고급차 브랜드로선 절대 놓칠 수 없는 큰 시장이자 전통적으로 해치백을 선호하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A클래스에 정통 세단을, 그리고 중국을 위해 롱 휠베이스 세단을 추가한 배경이다. 

프리미엄 콤팩트카 기준을 끌어올린 A클래스

A클래스 세단은 해치백과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 겉모습도 마찬가지다. 앞쪽부터 앞문까지는 해치백과 판박이다. 휠베이스도 같고 리어 오버행만 130mm 늘었다. 엉덩이는 다소 앙증맞다. 하지만 모양새는 영락없는 벤츠다. 짧은 차체가 주는 시각적 단점은 낮고 긴 보닛과 날렵한 헤드램프, 그리고 측면 캐릭터 라인으로 상쇄했다. 공기가 맑고 햇볕이 강렬한 미국 서부에서 감상하니 철판 성형이 또렷한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디자인 특징도 더 살아난다. 

개발을 이끈 콤팩트카 개발 담당 요르그 바텔스는 우리에게 A클래스 세단을 만들며 겪은 어려움을 이렇게 전했다. “3박스 세단으로서 좋은 비율을 유지하는 동시에 스포티한 분위기와 넉넉한 뒷좌석 공간을 만드는 게 어려웠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측면을 다시 살폈다. A필러에서 C필러 꼭짓점까지 거의 일직선으로 뻗은 지붕선과 옆 창문의 윗변이 눈에 들어왔다. 뒷좌석 헤드룸을 키우기 위한 나름의 방법인 셈이다. 차체 뒤쪽으로 갈수록 완만하게 떨어지는 CLA 지붕선과 확실히 다른 형태다. 

뒷좌석은 동급에서 가장 넓고 편하다. 어깨를 비롯한 상체공간이 충분하고 헤드룸도 여유 있다.방석 길이가 충분하고 등받이 각도가 알맞게 설계됐다

실내 분위기는 기대 이상으로 고급스럽다. 문짝 여닫는 느낌이 상위 모델처럼 견고하며, 대시보드와 도어트림에 바느질 장식도 넣었다. 단번에 눈을 사로잡은 디스플레이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E와 S클래스가 그랬던 것처럼 10.25인치 LCD 두 개로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합쳤다. 그런데 A클래스는 윗부분 덮개까지 제거했다. 덕분에 대시보드 높이가 낮아져 시야가 좋아졌을 뿐 아니라 미래에서 온 듯한 시각적 효과도 거둔다. 외부 빛에 의한 난반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LCD에 특수한 포일(Foil)을 더했기 때문이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에 꼼꼼한 품질을 더했다.특징적인 와이드 디스플레이 스크린은 10.25인치 LCD 두 개로 이루어진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다

한편, 동급에서 보기 드문 시트 통풍 기능까지 있는 걸 보니 시작 트림과 최상위 트림 간의 가격 차이가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실내 부위도 정성스럽게 매만졌다. 멀티 펑션 스위치와 기어 레버, 시트 조절과 윈도우 버튼 등 어느 하나 허투루 만든 게 없다. 뭐, ‘잘 만들어 나눠쓰자’는 전략이니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신형 A클래스를 통해 선보인 이 실내는 앞으로 등장할 다른 소형 모델들과 공유될 예정이다. 

새 실내에 익숙해질 즈음, 쌀쌀한 시애틀의 아침 공기를 가르며 시승에 나섰다. 코스는 예상외로 길다. 시애틀 도심에서 출발해 마운트 레이니어 국립공원을 지나 소도시 야키마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여정이다. 시내와 고속도로, 국도가 골고루 포함돼 있으며 왕복 거리는 약 500km다.

S클래스급 반자율주행 품은 꼬마 벤츠

출발지인 호텔에서 벗어나 첫 번째 교차로에 들어섰을 때, 내비게이션 화면이 전방 영상에 3D 화살표를 띄웠다. 운전자가 정확한 길안내를 받을 수 있도록 실시간 전방 영상과 가상 그래픽 이정표를 합성하는 증강현실 기술이다. 교차로가 가깝게 연달아 있으면, 어디로 가야 할지 헷갈릴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 특히 유용하다. 

고속도로에 올라 제한속도 시속 60마일에 맞춰 반자율주행을 시작했다. A클래스의 반자율주행 시스템은 S클래스에 탑재된 대부분 기능을 포함한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시스템은 폭넓은 기능을 제공하지만, 국내에선 관련법 문제로 일부 기능을 막아둔 상태. 미국에선 이를 전부 사용해볼 수 있었다. GPS와 내비게이션 정보로 코너, 나들목, 로터리를 파악하고 미리 속도를 줄이거나, 반자율주행 상태에서 방향지시등을 켜면 스스로 차선을 변경하는 기능이 대표적이다. 단, 차선 변경은 편도 4차로 이상 도로에서 주변에 차가 15초 이상 지나가지 않을 때만 작동한다. 조건이 까다롭고 시승 당시 교통량이 적잖았던 탓에 좀처럼 사용할 기회가 없었다.운전자가 정확한 길안내를 받을 수있도록 실시간 전방 영상과 가상 그래픽 이정표를 합성하는 증강현실 내비게이션

직선이 펼쳐진 국도에 들어서 잠시나마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아본다. 시승차는 2.0L 터보 엔진에 상시 네바퀴굴림 시스템을 맞물린 A220 4매틱. 188마력의 최고출력은 A클래스를 경쾌하게 이끈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7초 만에 가속한다.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는 부드럽고 재빠르게 기어를 바꾼다. 스포티한 감성을 쫓는 CLA와 다른 성격을 강조하기 위함일까? 정확한 조향감과 절도 있지만 편안한 승차감도 여느 벤츠 세단과 다름없다. 단 시승차는 19인치 휠을 장착한 탓에 노면에서 오는 큰 충격을 솔직하고 여과 없이 전달하는 모습을 종종 보였다.

4매틱을 탑재한 시승차의 서스펜션 구성은 앞 맥퍼슨 스트럿, 뒤 독립식 4링크다. 기본형인 앞바퀴 굴림 모델의 뒤쪽 서스펜션은 토션빔 액슬이다. 콤팩트카 개발 담당 요르그 바텔스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토션빔 액슬은 그동안 승차감이 만족스럽지 않아 사용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젠 목표 성능을 충분히 만족하죠. 핸들링 테스트를 비롯해 시속 220km로 달려도 안정적인 거동과 조종안정성을 확보했습니다. 하지만 앞바퀴 굴림이라도 가변형 댐퍼와 큰 휠, 고출력 엔진을 얹은 모델에는 뒤쪽에 독립식 4링크를 사용합니다.” 기본형 모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독립식 4링크 리어 서스펜션이라는 얘기다.

인공지능 인포테인먼트 MBUX

국립공원 산 정상에서 차를 잠시 세우고 커피 타임을 가졌다. 낯선 도로 환경에서 긴장했던 몸도 풀겸 MBUX를 사용해봤다. 예전부터 자동차의 음성인식 기술은 존재해왔지만, 정해진 문장과 단어만 알아듣는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MBUX는 대화형식 구어체 문장을 알아듣는 인공지능 인포테인먼트다. 애플이 만든 ‘시리(Siri)’와 비슷하다. 

“헤이 메르세데스”라는 말로 MBUX를 부르자 “무엇을 도와드릴까요?”하고 응답한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대화나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음성으로 실내 조명색, 공조기 온도, 시트 열선을 비롯한 차의 기능을 제어하거나 원하는 목적지를 검색할 수 있다. 예컨대 “실내 온도를 1도 올려줘”라며 직접적인 명령은 물론, “나 추워” 같이 그 뜻을 돌려 전달해도 알아듣는다. 뿐만 아니다. “오후에 문 여는 별점 4개짜리 이탈리안 식당을 찾아줘, 단 피자가게 빼고”와 같이 복잡한 대화를 인식하고, 스포츠경기 결과를 묻거나 “너의 아빠는 누구야?” 같은 짧은 대화도 가능하다. 

벤츠는 운전상황에 따라 가장 편하고 안전한 방법으로 차의 기능을 컨트롤 할 수 있도록 음성 인식(MBUX), 터치패드, 스티어링 휠의 터치컨트롤, 터치스크린 네 가지 방법을 마련했다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한 원리는 대화음성을 분석하는 시스템에 있다. MBUX에 입력된 사용자 음성은 차에 탑재된 컴퓨터와 인터넷 서버로 연결된 클라우드 시스템이 함께 분석한다. 클라우드 시스템 기반으로 새로운 유행어를 학습하며 알아듣고 검색 결과에 따라 질문에 대한 답도 달라진다. MBUX를 개발한 캐시디 슈바르체 수석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비영어권 국가의 사람들 발음까지 인식하고 학습하도록 만들었다고 전한다. 실제로 기자가 시험 삼아 건넨 “턴 온 사지라이또 라지오(Turn On Satellite Radio)”라는 일본식 영어 발음을 알아듣고 위성라디오를 작동시켰다. 내년에 만날 MBUX 한국어 버전에 대한 기대감이 커져만 가는 순간이다. 

야키마에서 식사를 마치고 다시 돌아오는 길. 이번에는 뒷좌석에 앉아 승객 입장이 돼보았다. A클래스는 동급 세단 중 실내 좌우 폭과 머리공간이 가장 넓다. 물론 차급의 한계가 분명하기에 넉넉하다거나 넓다고 말할 만큼은 아니다. 그래도 생각보다 착좌감은 편하다. 방석 길이가 충분하고 등받이 각도와 힙 포지션을 알맞게 설계한 덕분이다. 또한 타고 내리기도 수월하다. 이러한 뒷좌석은 A클래스 세단과 CLA를 구분 짓는 명확한 특징 중 하나다. 

A클래스 세단과 ‘대중성’ 부담을 덜어낸 CLA

A클래스 세단을 경험하고 나니, 이젠 ‘CLA가 굳이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CLA는 젊고 새로운 고객을 이끌던 이상적인 소형차였다. 덕분에 평균 연령이 크게 낮았고, 고객 절반 이상이 이전까지 벤츠를 소유해본 적 없던 이들이었다. 벤츠가 그토록 원하던 결과였다. 그러나 4도어 쿠페의 한계는 분명했다. 승차감이 딱딱했고 스타일을 중시한 나머지 공간과 편의성이 부족했다. 따라서 보다 폭넓은 고객을 포용할 스텐다드한 세단이 필요했다.

신형 A클래스 세단은 이 모든 것을 해낸다. 작지만 당당한 세단으로서 제대로 된 뒷좌석과 편안함을 갖췄다. 또한 최첨단 장비와 스타일마저도 매력적이다. A클래스 세단이 데뷔하고 나면 아마 CLA의 존재감은 다소 약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즐거운 일이다. 승용 모델의 역할이 확고하다면 가지치기 모델은 더 또렷한 개성과 목소리를 낼 테니까. 대중성이라는 짐을 덜어낸 CLA는 앞으로 4도어 쿠페의 성격을 더욱 강조할 수 있게 되었다. 

명확한 성격 구분과 빈틈 공략. 벤츠가 라인업을 끊임없이 확장할 수 있는 저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전략도 성공적으로 보인다. 

          

 

 

글 이인주 / 사진 메르세데스 벤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