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36년간 7000명 구한 북한산 지킴이, 이젠 下山합니다

태권 한 2019. 1. 10. 09:15

36년간 7000명 구한 북한산 지킴이, 이젠 下山합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특수구조팀이 맡을 예정)                           

이달말 해산되는 경찰 산악구조대
전 대장과 함께 북한산을 지키고 있는 한창호(왼쪽)·김만수 대장. /장련성 객원기자전 대장과 함께 북한산을 지키고 있는 한창호(왼쪽)·김만수 대장. /장련성 객원기자

지난해 10월 길진균(58)씨는 후배와 서울 북한산 인수봉에 올랐다. 정오쯤 암벽등반을 시작했다. 오후 4시 체력이 바닥났다. 내려오려 했지만 로프가 엉켜 움직일 수 없었다. 날은 어두워지고 찬 바람이 옷을 파고들었다. '이대로 있으면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6시 30분 휴대전화로 북한산 경찰 산악구조대에 구조를 요청했다.

혼자 당직을 서던 전성권(52·경위) 산악구조대장은 25㎏짜리 장비 가방을 챙겨 인수봉에 도착했다. 암벽 아래로 내려가기 위해 로프를 던졌지만 거센 바람에 줄은 절벽 위로 다시 올라왔다. 전 대장은 로프를 몸에 묶고 달빛과 헤드 랜턴에 의지해 길씨와 후배 등 2명을 절벽 위로 끌어올렸다.

길씨는 얼마 뒤 민갑룡 경찰청장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 '등산인들에게는 경찰 산악구조대 존재 자체가 보험이고 믿음입니다. 폐지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재검토해주십시오.'

36년간 북한산과 도봉산에서 등산객을 구조한 경찰 산악구조대가 이달 말 문을 닫는다. 경찰관인 구조대장 3명과 의무경찰 6~8명을 한 조(組)로 구조대를 운영해 왔는데, 의무경찰 단계적 폐지 방침에 따라 인력 충원이 어려워지자 최근 해산이 결정됐다. 경찰 산악구조대 업무는 2월 신설되는 국립공원관리공단 특수구조팀이 맡을 예정이다.

9일 북한산 해발 550m 북한산 경찰 산악구조대 사무소. 전 대장과 한창호(51·경위), 김만수(48·경위) 대장은 함께 구조용 로프를 정리하고 있었다. 전 대장은 "이달 문을 닫으니 서류와 책은 틈틈이 정리하고 있지만 구조 장비는 언제나 대기 상태"라고 했다.

지난해 1월 눈이 쌓인 서울 북한산 영봉에서 전성권(가운데) 경찰 산악구조대장과 의무경찰 대원들이 로프를 잡고 암벽 등반 훈련을 하고 있다. 산악구조대 해체 방침에 따라 의경들은 제대하고 현재는 구조대장(경위)들만 근무하고 있다. /경찰청지난해 1월 눈이 쌓인 서울 북한산 영봉에서 전성권(가운데) 경찰 산악구조대장과 의무경찰 대원들이 로프를 잡고 암벽 등반 훈련을 하고 있다. 산악구조대 해체 방침에 따라 의경들은 제대하고 현재는 구조대장(경위)들만 근무하고 있다. /경찰청


경찰 산악구조대는 1983년 5월 창설됐다. 그해 4월 인수봉에서 암벽을 오르던 대학생 7명이 조난당해 사망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암벽등반객이 많은 북한산, 도봉산에 산중(山中) 파출소가 세워졌다. 경찰관들은 순번을 정해 24시간 산에 머문다.

경찰 산악구조대는 36년 동안 7000여 등산객을 구조했다. 등반객이 암벽을 오르다 떨어지면 들것에 실어 소방 헬기에 태울 수 있는 산 정상까지 이송한다. 암벽등반을 시도하다 오도 가도 못하는 사람들을 구조하는 것도 임무다.

산악구조대 해산 소식에 등산객들은 아쉬워했다. 북한산 백운대 아래서 백운산장을 운영하는 김금자(78)씨는 "주민은 물론, 산악인들도 경찰 덕분에 마음 놓고 지낼 수 있었는데 너무 아쉽다"고 했다.

동료가 잡아주는 로프를 믿고 구조 활동을 벌이다 보니 구조대원들의 관계는 끈끈하다고 한다. 2016년 김영란법 시행 전까지는 전역한 의무경찰과 산악구조대 출신 동료 50~60명이 모여 구조대원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시산제(始山祭)를 지냈다. 2001년 낙뢰로 불이 나 사무실을 보수할 때도, 전역한 사람들이 자재를 짊어지고 산에 올라 함께 일을 했다.

24시간 산을 지켰던 경찰 산악구조대장들은 이달 말 인사 발령이 나면 산 아래 경찰서, 파출소로 내려가게 된다. 구조대는 인터뷰 말미 "꼭 이 말을 신문에 써 달라"고 했다. "꼭 물·음식·옷 3가지는 갖추고 안전하게 산을 오르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