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와 왕릉으로 대표되던 신라의 경주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경주 사람들도 모르는 경주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하려 한다.
2010년 11월, KTX의 새로운 구간 개통으로 수학여행지의 메카, 경주가 뜨거워졌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울에서 새마을호를 타고 4시간 20분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었던 번거로운 도시. 어린아이나 어르신을 동행한 가족여행이었다면 차라리 자가용이 나았던 곳. 허나 이제 2시간이면 이 값진 천년고도의 도시를 만날 수 있게 됐다.
‘천년을 살아온 경주는 분명 새로운 즐거움이 있을 것’이라는 명제로부터 출발한 경주 여행은, 경주 토박이인 해설사를 만나자마자 사실로 증명됐다. “경주는 신라 문화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지만, 조선의 문화, 근대 문화도 동시에 존재합니다. 경주의 문화와 역사는 항상 현재진행형이지요.” 우스갯소리로 “절대로 집 지을 때 땅 파지 마라, 혹여라도 무언가 나오면 그대로 덮어버려라”고 할 정도로 땅만 파면 나온다는 미처 발굴되지 않은 신라 유적과 아직도 남아 있는 기와집들이 마을을 이루어 혼재하는 곳. 아파트보다 문화재 찾기가 쉬운 경주는 곧 ‘한옥마을’을 정비해 또 하나의 역사를 보여주려 하고 있었다.
“첨성대 주위로는 원래 울타리 나무가 심어져 있었지요. 그런데 첨성대를 가린다고 다 정리해버렸습니다. 이제 굳이 입장료를 내지 않고도 모두가 첨성대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된 셈이죠. 하지만 꼭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가까이에서 보시길 바랍니다. 비록 예전처럼 첨성대 안까지 들어가볼 순 없지만, 가까이서 직접 돌에 새겨진 시간과 과학을 체험하는 것은 또 다른 추억거리니까요.”
드라마 「선덕여왕」의 촬영지인 반월성터로 걸어가며 박주연 해설사는 말을 이었다. “지금은 휑~하죠. 왜 복원을 안 하는 줄 아십니까? 이대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여기기 때문입니다. 비용이나 불충분한 역사적 사료, 모두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모든 문화재가 복원만이 옳은 것은 아니에요. 옛것에 자꾸 새것을 입히려드는 건 현대인의 욕심일 수 있지요.”
여기에는 전국에서 가장 온전하게 존재하는 석빙고가 있다. 조선시대의 것이다. 현존하는 석빙고는 모두 조선 이후의 것이라 보면 되는데, 그 이전에는 돌이 아닌 나무로 만들어 쉽게 썩어버리거나 불타 없어졌다. “우리는 돌을 쌓을 때 큰 돌 위에 작은 돌을 올려야 튼튼하다고 생각하지요? 여기 돌을 잘 보시면, 작은 돌 위에 점점 큰 돌이 올라가서 쌓입니다. 이 방식이 더 튼튼하다고 합니다.” 교과서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은 조상의 지혜로운 한 수를 배우고 돌아간다.
1 노블리주 오블리제의 대명사 최부자 집의 육훈(六訓).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재산은 만 석 이상 지니지 마라/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마라/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2 최씨 고택의 이웃집 격인 교동법주 양조장.
3 향교와 서원, 석가탑과 다보탑만큼이나 헷갈리는 두 곳. 향교는 중국의 성령과 우리나라 성령을 함께 모시고 서원은 우리 조상만을 모시는 곳으로 성격을 나누면 되겠다.
4 성동시장은 솥단지에 끓고 있는 팥죽, 호박죽이 맛있다. 해설자가 어릴 적부터 친구들과 사 먹었다는 유성찹쌀순대(054·772-7606)를 추천했다.
Tip 한옥마을에 가면 요석궁을 꼭 가보라. 전국적으로 유명한 요정이었으나 지금은 한정식 집이 되었다. 경주 최부자 집 전통 가정식. 예약 필수(054·772-3347). 가격은 3만원부터. 트레킹이 목적이라면 계림으로 돌아나오는 골목에 위치한 김밥집을 찾을 것. 손맛이 대단한 집이다.
반월성터의 송림을 지나면 곧장 나타나는 골목 동네. 경주향교, 최씨 고택 등 굵직굵직한 조선시대 한옥들이 잘 보존된 지역이자, 바로 한옥마을이 들어설 자리다. 전국에 많은 한옥마을이 있지만, 이곳 경주만의 한옥마을이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제일 처음 만나게 되는 경주향교에서 그 답을 찾았다.
사실 얼핏 보면 그냥 한옥들과 무엇이 다르냐 싶겠지만, 신라와 조선의 컬래버레이션 미학이 이곳에 있다. 힌트는 최씨 고택과 그 일대가 요석궁 터였다는 것. 태종무열왕의 딸 요석 공주, 원효 대사와 결혼한 그녀의 보금자리였으니 오죽 아름다웠을까.
“대부분의 일반 가정, 이런 한옥집들의 경우 주춧돌은 모두 신라시대 때 주춧돌입니다. 그때는 석자재를 구하기 힘들었죠. 그래서 가까이서 보면 기둥은 둥근데, 볼록하게 솟은 주춧돌들은 네모나거나 서로 부정교합을 이뤄요.” 한옥의 지붕과 문짝만 볼 줄 알았지 바닥에 코를 박고 돌을 보게 될 줄이야! 향교를 지을 때도 안압지의 돌을 가져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지금 보면 문화재 훼손이지만 당시로서는 100% 재활용이었던 셈.
“특히 이 주변 집들은 집 안에 신라시대 석조 유물들을 꽤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집을 지을 때 장식용으로 주변에 있던 것을 들여온 것들이지요.” 실제로 한 석조탑은 바닥과 중간 제일 꼭대기가 각각 다른 곳에서 떼어온 것마냥 달랐다. 그래서일까. 신라풍 한옥이 없다는 해설사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경주의 한옥들은 유난히 화려해 보인다.
경주역에서 길을 건너면 오른편에 난전이 펼쳐진다. 몇 곳 남지 않은 재래시장이자, 먹자골목으로 유명하다. 할머니들이 보도블럭을 따라 과일 조금, 나물 조금을 만물상회처럼 판매 중이다. 본격적인 시장의 시작, 칸막이도 없는 식당과 분식점들이 복작복작하게 마주하고 있다. 손수 만든 음식들이 뜨끈뜨끈한 김을 뿜고 있는데, 생물을 먹는 것만큼이나 생기가 돈다. 여고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분식집 순대와 떡볶이를 먹고 있는 풍경도, 고추장 묻은 앞치마와 트레이드마크인 뽀글이파마 아줌마도, 이곳 재래시장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음식맛이 유난히 맛있다거나 특별한 메뉴가 있는 것은 아니나, 시장의 풍경을 씹고 뜯고 즐길 수 있는 재미가 있달까. 큰 다라이에 수북하게 담긴 밑반찬을 무한대로 가져다 먹을 수 있는 노천 뷔페, 나물, 멸치, 그리고 쌈까지 없는 것 없이 다 차려진 밥집 골목은 이제 성동시장의 명물이 됐다. “이 반찬 싸 오면 금세 인기인이 되곤 했는데요.” 추억의 옛날 소시지 몇 개에 도시락 싸던 그 시절 추억담이 한 상 차려진다.
먹는 이야기에 맛집이 빠질 수 없다. 얼마 전 경주여행을 다녀온 지인이 경주에는 묵밥 골목이 유명하다 했다고 하니, 해설사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의외의 메뉴였다. “한우하면 어디가 생각나세요? 묵밥보다 요즘 트렌드는 한우죠. 경주는 우리나라에서 한우를 가장 많이 기르는 곳이니까요. 그래서 인근에 불고기 단지가 많습니다. 가격도 쌉니다. 최상급 등심을 1인당 2만원이면 먹을 수 있으니까요.”
이게 끝이 아니다. “경주는 버섯 농사도 많이 지어요. 양송이도 유명하고요.” 그리고 송이가 제철인 가을에는 남산에 올라가보란 말도 잊지 않았다. “예전에는 허가제로 채취되었던 자연산 송이를 이제는 누구나 채집할 수 있도록 바뀌었어요.” 또 한 번 경주를 방문할 즐거운 핑곗거리가 생겼다.
Editor’s Road
첨성대/반월성터/석빙고/한옥마을의 경주향교/최부자 집/바로 옆 교동법주/이름 모를 민가/가을의 전설 계림/신라문화원/곧 역사로 사라질 경주역/성동시장/경주읍성(동문 쪽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거의 허물어져 터만 남았다)/서학서원/감포 문무대왕 수중릉/벽화마을.
Start
기본 교통수단 KTX 서울~신경주
비용 주중 4만2천6백원, 주말 4만5천6백원
운행 시간 첫차(하행) 오전 5시 30분, 막차(상행) 오후 9시 59분
KTX Package
예상 비용 어른 9만9천원, 어린이 9만5천원(KTX 왕복 티켓, 투어 버스, 입장료, 문화해설사, 교재, 체험료, 여행자 보험료 포함, 식사 불포함)신라 문화 체험
신라 문화 체험
아이와 함께 경주에 간다면, 흔한 놀이공원 대신 체험장에서 다양한 신라 문화를 느껴봐도 좋을 듯. 십이지신을 먹으로 탁본해보기, 신라 금관 만들기, 연 만들어 날려보기 활동은 인기 프로그램. 체험 비용은 각각 3천~8천원선.
여행 일정 오전 8시 서울역 출발~오후 9시 4분 서울역 도착
여행 루트 대릉원(천마총)-재래시장(중식)-양동마을-첨성대-계림- 신라문화 체험-석식-월지(안압지 야경)
문의 054·774-1950
Tip 경주의 노천 박물관으로 불리는 남산 탐방 패키지도 있다. 산이 높지 않아 트레킹 코스로 추천하고 싶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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