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재규어 F-타입, 포르쉐 911 오너의 마음을 훔쳤다?

태권 한 2018. 6. 2. 11:04

재규어 F-타입, 포르쉐 911 오너의 마음을 훔쳤다?

에보 입력 

                

후발주자가 이미 자리 잡은 경쟁자와 대등한 경쟁을 펼치기는 쉽지 않다. 가장 확실하게 경쟁차를 뛰어넘는 비결은 경쟁차 오너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이다. 재규어 F-타입이 포르쉐 911을 겨냥한다          

경쟁에도 품격이 있다. 치고박고 싸워서 상대를 무너뜨리는 방법은 원시적이다. 자기가 잘났다고 입으로만 떠드는 일 역시 그렇다. 가만히 있으면서 상대방이 자신 앞에 무릎 꿇게 하거나,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주변 상황을 만들면 품격 있게 물리칠 수 있다. 자동차 세계도 수많은 경쟁이 일어난다. 여러 가지 형태로 승부를 향한 혈투가 벌어진다. 가장 고상하고 품격 있게 상대를 누르는 방법은, 경쟁차를 추종하는 무리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된다.          

2012년 F-타입이 세상에 나왔을 때 재규어는 경쟁차로 포르쉐 911을 꼽았다. 오랜 명성과 두터운 마니아층을 거느린 911을 상대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사람들은 F-타입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911 구매 예정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F-타입을 비교 대상에 올리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F-타입은 911과 경쟁하기에 충분한 모델이에요.” 911 오너 나경민 씨가 자기 생각을 말했다. 나경민 씨는 2011년식 포르쉐 911(997) 카레라 4S 오너다. 지금 손에는 포르쉐 키가 들려 있지만 F-타입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많다. “911을 타고 있어서 그런지 아무래도 F-타입은 관심이 많이 가요. 파워트레인과 편의 및 안전장비, 소재까지 일일이 비교 분석해 본 적도 있죠. 기회가 닿는 대로 F-타입도 몰아봤어요. 부분변경 모델은 처음이에요. 어디가 바뀌었죠?”운전자 중심 센터페시아는 스포츠 주행과 관련된 기능이 부족하다          

부분변경 모델은 바뀐 부분을 알아차리기가 숨은그림찾기 수준으로 어렵다. 앞모습은 구성을 바꾼 풀 LED 헤드램프와 범퍼 양쪽 공기 흡입구 크기를 키웠다. 뒤에는 테일램프에 살짝 음영을 넣어 입체적인 감각을 표현했다. 시승차는 R 다이내믹 트림으로 20인치 전용 휠과 앞쪽 스플리터를 추가로 달았다. “생김새만 놓고 본다면 F-타입이 나아요. 전통적인 911 디자인도 마음에 들지만 F-타입의 풍성하면서도 매혹적인 뒤태도 매력적이죠. 긴 보닛과 짧은 트렁크 리드 비율도 훌륭하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캐릭터 라인도 마음에 들어요. 911과 경쟁하려면 기본적으로 이 정도 수준은 돼야 하겠죠. 이언 칼럼은 정말 대단해요.”

도어를 열고 운전석에 앉으니 칭찬 일색이던 외관 평가 때와 달리 표정이 만족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큰 변화 없는 구성보다는 즐길 거리가 늘지 않은 점이 불만이다. “새로워진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좋지만 스포츠 주행과 관련된 기능이 많이 부족해요. 주행모드나 가변 배기 및 스포일러 개폐 버튼 등은 911도 기본이에요. 심지어 크로노그래프나 G포스 값 표시 기능도 있죠. F-타입은 구성이 너무 심심해요.” 시원하게 뚫린 글라스 루프와 은은한 무드등, 대시보드 위로 스르륵 올라오는 송풍구는 감성을 자극하는 요소로 훌륭하다고 덧붙였다.버튼을 누르면 숨어 있던 도어 손잡이가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센스와 재치가 담겨있다          

시동버튼을 누르자 계기판 바늘이 힘차게 왕복운동을 하면서 우렁찬 소리를 토해낸다. 주행 중에도 들리는 거친 숨소리는 여전하다. 2000rpm이 넘어가면서부터 울리는 엔진음과 변속 과정에서 들리는 펑펑 터지는 배기음은 운전 재미를 더하는 요소다. “소리는 언제 들어도 일품이에요. 강한 성능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소리가 매우 중요한데 재규어는 이 부분에서 911을 멀찌감치 따돌리죠. 가변 배기 플립을 열면 소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점도 마음에 들어요. V6에서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소리가 아닌가 싶어요.”

P380 R-다이내믹은 V6 3.0L 슈퍼차저 엔진을 얹는다. 최고출력은 380마력, 최대토크는 46.9kg·m, 0→시속 100km 가속 4.9초 최고시속은 275km다. 엔진은 흠잡을 곳이 없다. 힘들이지 않고도 아주 빠르게 속도를 높이고 차는 눈 깜짝할 사이에 최고속도를 향해 달려나간다.          

F-타입의 8단 자동변속기는 포르쉐 PDK만큼 빠르지 않다. “예전 F-타입을 몰았을 때도 아쉬움 좀 남았는데 부분변경 모델도 크게 바뀌지 않았어요. 킥다운 할 때 변속이 민첩하지 않아요. 반응이 더디고 변속기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결국 운전자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는 않죠.” 굽이치는 코너에서는 F-타입의 성격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이상적인 무게 배분과 우수한 균형감으로 코너를 빠르게 돌아나간다. 이런 모습은 어디까지나 적당한 속도에서 즐겁게 운전할 때 일이다. 강한 성능과 우렁찬 소리에 심취해 욕심을 부리다가는 뒷일을 보장하지 못한다. “트랙션컨트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만 911처럼 똑 부러지게 차를 잡아주지는 않아요. 제 차가 네바퀴굴림이고 오랜만에 뒷바퀴굴림을 타서 차이가 더 크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어요. 주변 F-타입 오너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확실히 포르쉐보다 다루기 까다로운 차라고 말해요. 운전자가 조련하는 맛이 있어서 순수 스포츠카의 본질을 잘 살린 차라고 평가하기도 하고요.”변속기 아래 쪽에 차를 냉정하고 무섭게 다룰 수 있는 버튼을 배치했다          

F-타입에서 내린 나경민 씨는 911에 올라타 시동을 켜고 예열을 시작했다. “911과 F-타입은 전교 1등과 2등을 보는 듯해요. 911은 칭찬받을 일만 골라 해서 모든 사람의 사랑을 독차지한다고 할까요? 하지만 너무 정직해서 때로는 싱겁기도 하죠. 최신 모델로 갈수록 이런 경향이 더 커져요. F-타입은 소싯적 좀 놀아본 경험이 있는 똑똑한 모범생 같아요. 호불호가 나뉘지만 한번 친해지면 정말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몇 안 되는 친구죠. 성격 차이가 명확해서 둘 중에 어느 차가 더 뛰어난지 우열을 가리는 일은 의미가 없다고 봐요. 저는 911이 좋아요. 감수성 풍부한 영국 친구보다는 이성적인 독일 친구가 제게는 더 잘 맞아요.”          

F-타입은 911을 겨냥한 후발주자로 등장했다. 재규어만의 특별한 개성으로 911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포르쉐가 쌓아 올린 내공 못지않게 도전자의 당찬 패기를 지녔다. 911 오너의 마음까지도 훔치려고 한다. F-타입에 홀딱 빠져서 당장 대이동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는 꾸준한 작업이 필요하다. 일단 관심을 끌게 한 것만으로도 성과는 크다. 재규어의 도전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JAGUAR F-TYPE P380

엔진 V6, 2995cc, 슈퍼차저

최고출력 380마력/6500rpm

최대토크 46.9kg·m/3500~5000rpm

변속기 8단 자동 RWD

서스펜션 앞/뒤 더블위시본

브레이크 앞/뒤 V디스크

타이어 앞/뒤 255/35ZR20, 295/30ZR20

무게 1730kg

무게당 출력 219마력/톤

0→시속 100km 4.9초

최고시속 275km

기본가격 1억2980만원

· 김성환 기자 / 사진 · 임근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