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안중근 의사가 뤼순감옥에서 작사 작곡한 '옥중가'

태권 한 2019. 3. 4. 11:50

안중근 의사가 뤼순감옥에서 작사 작곡한 '옥중가'

김수현 기자 입력

안 의사의 슬픔도 기개도 담겼다

적막한 가을강산 야월삼경에
슬피 울며 날아가는 저 기러기야
북방의 소식을 네가 아느냐
여기서 저기까지 몇 리 되는지
아차차 가슴 답답 이 내 신세야

만주땅 시베리아 넓은 들판에
동에 갔다 서에 번쩍 이 내 신세야
해외에 널려있는 백두산하에
나의 일가 동포 형제 저곳 있건만
나는 소식 몰라서 답답하구나

만주땅 시베리아 넓은 들판에
동에 갔다 서에 번쩍 이내 신세야
교대 잠이 편안하여 누가 자며
콩 든 밥이 맛이 있어 누가 먹겠나
때려라 부숴라 왜놈들 죽여라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후 뤼순 감옥에 갇힌 안중근 의사가 직접 곡조와 가사를 지어 부른 노래입니다. '안중근 옥중가'로 알려진 이 노래는 민요풍 선율에 3절로 이뤄져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감옥에서 순국하기 전까지 이 노래를 불렀는데, 일제는 안 의사의 노래를 저지했고, 감옥 밖으로 퍼져나가자 금지곡으로 지정해 통제했습니다. 하지만 이 노래는 안 의사의 사촌동생 안익근, 육촌동생 곽희종 씨를 통해 구전됐고, 중국 현지에서는 채보까지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음악학자 고 노동은 씨가 지난 2015년 중국에서 발굴해 국내에 처음으로 알렸고, 2017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항일음악 330곡집에 실었습니다.

저는 이 곡을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삼일절 역사 콘서트'의 프로그램에서 발견하고 취재하기로 마음먹었고, 3월 2일 8뉴스에 보도했습니다.

안중근 옥중가의 악보는 이미 공개되었지만 그동안 이게 실제로 어떤 노래인지 들을 기회는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2017년 주최한 항일음악회에서 독립지사 오희옥 선생이 이 노래 가사를 시처럼 낭독했고

[SBS 뉴스 사이트에서 해당 동영상 보기]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159987&plink=YOUTUBE&cooper=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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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30초 이후)

지난해 10월 26일 육군이 안중근 의사의 거사일을 맞아 '육군이 부르는 안중근 옥중가'라는 제목으로 올린 유튜브 영상이 있습니다만

[SBS 뉴스 사이트에서 해당 동영상 보기]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159987&plink=YOUTUBE&cooper=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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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 자체가 널리 소개된 적은 없었습니다.

사실 제가 이 곡의 악보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감정은 슬픔이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긴 했지만, 조국은 여전히 억압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자신은 감옥에 갇혀 있고, 그리운 고향에 다시 갈 수 있을지, 답답한 심정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1절을 보면 안 의사는 가을 기러기에 빗대어, '아차차'라는 의성어까지 써가며, 슬프고 답답한 심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죠. 2절에서도 고국을 떠나 투쟁하느라 일가 동포 형제 소식도 모르는 자신의 처지를 노래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절인 3절은 느낌이 조금 다릅니다. 교대 잠 자고 콩밥 먹는 감옥 생활의 어려움도 토로하지만, 계속 애상과 울분에 젖어있지는 않습니다. 마지막 '때려라 부숴라 왜놈들 죽여라' 부분에는 마음을 다잡고 항일 투쟁 의지를 다시 확인하는 안 의사의 결기가 담겼습니다. 가사를 다시 1절부터 3절까지 쭉 읽어보니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망국의 한, 수감생활의 고통 속에서도 절망에 빠지지 않고 힘을 내려는 안 의사의 인간적인 면모가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콘서트에서 바리톤 김재일 씨가 부른 '안중근 옥중가'는 직접 들으니 슬픔보다는 기개가 느껴집니다. 작곡가 성용원 씨가 관현악 7중주 반주로 새롭게 편곡한 버전입니다. 피아니스트 조은아 씨가 예술감독으로 있는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클래식 공연단이 함께 연주했습니다. 3.1 운동 100주년 기념 음악회였던 만큼, 이 버전은 독립에 대한 의지를 좀 더 강조해, 독립군가와 교차 연주하면서 힘차게 부르도록 편곡됐습니다. 특히 3절의 마지막 부분은 일제에 대해 적개심을 드러내는 군가의 느낌이 강해서, 행진곡풍으로 템포를 약간 더 빠르게 연주하는 것 같았습니다.

김재일 씨는 안 의사가 순국한 뤼순 감옥을 지난해 다녀왔습니다. 조국을 그리워했던 안 의사의 유해를 찾지 못해 아직도 모셔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고도 했습니다. 그는 이 노래는 슬프기도 하지만 동시에 안 의사의 굳은 의지도 느껴져서, 마지막 부분은 용맹하게 부르게 된다고 합니다. "안 의사가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라서 의미가 깊어요. 30대였던 안 의사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만약 나 같았으면 어땠을까, 노래하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돼요."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을 인터뷰했는데, 모두 이전에는 '안중근 옥중가'의 존재조차 몰랐지만, 직접 듣고 보니 가슴이 뭉클하다고 했습니다. 중국인 관객 슈징징 씨를 인터뷰한 것도 재미있는 우연이었습니다. 처음엔 한국인인 줄 알고 한국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가, 나중에야 중국인인 걸 알고 중국어 인터뷰를 다시 요청한 것입니다. 그는 항일투쟁 당시 한국과 중국의 역사는 깊이 관련되어 있어서 중국인도 안중근 의사를 많이 알고 있다며, 안중근의 옥중가를 처음 들으며 한국 역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정말 의미 있는 자리였다는 소감을 들려줬습니다.

TV 뉴스에서는 시간적 제약 때문에 노래의 일부분을 소개하는 데 그쳤지만, 이 기사를 계기로 안중근의 옥중가가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안중근 옥중가는 곡조는 단순하지만 가사에 담긴 감정만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노래입니다. 이번에 소개한 것은 군가를 연상하게 하는 3절까지 포함한 씩씩한 버전이지만, 앞에서도 언급한 '육군이 부르는 안중근 옥중가'는 피아노 반주에 맞춰 1절만 부르는 서정적인 버전입니다. 노래에는 힘이 있습니다. 아마 그래서 일제가 이 노래를 금지하려 했을 겁니다. 직접 불러보면서 노래로 망국의 한과 설움을 달래고 절망을 이겨냈던 안 의사의 그 마음을 느껴보셔도 좋겠습니다.     

김수현 기자shkim@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