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우 입력 2022. 08. 03.
C : "그 양반이 올라가서 뛰어 내렸습니다. 1차적으로."
B : "XX 조용히 해! 뛰어내려? 우리 아빠가 뛰어내려?"
C : "내가 뛰어내렸다고 장담하는 이유는 뭐냐면…"
B : "시끄러워요! 뛰어내려?"
- 5월 20일 군산시청 유가족 방문 녹취록 중
사고가 발생한 초보자용 벽 하단. 암장 측은 안전고리 미체결을 인지했다면 벽에 붙은 퀵드로를 잡고 클라이밍다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군산 모 인공암벽장에서 등반하던 60대 남성 A씨가 추락사한 사고를 둘러싸고 유가족과 암장 운영주체 간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유가족 측은 "사고 책임이 분명히 있는데 운영 측에서 A씨가 '사실상 자살'했다는 식으로 말한다"고 주장했으며, 이에 운영주체 측은 "개인 과실이 있다는 걸 말하려고 했을 뿐이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군산경찰서에 따르면 사고는 지난 5월 17일 오후 1시 45분에 발생했다. A씨는 2차례 초급자 코스에서 하네스를 착용하고 톱로핑(암벽 위에 걸린 로프로 안전을 확보하고 등반하는 방식)으로 등반했다. 그리고 14분의 휴식을 가진 뒤 똑같은 코스로 세 번째 등반에 나섰다. 하지만 여기서 치명적인 실수가 발생한다. A씨가 안전고리를 하네스에 체결하지 않았고, 현장에 배치된 안전관리요원은 이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 이 사실을 모른 채 등반한 A씨는 벽 12~15m 상단까지 오른 후 그대로 지면으로 추락,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군산경찰서는 안전관리요원을 불구속 입건해 업무상과실치사혐의가 있는지 조사 중이다. 또한 군산시는 해당 인공암장에 무기한 운영 중지 명령을 내린 상태다. 이로써 해당 암장은 지난 2003년 문을 연 이후 처음으로 문을 닫게 됐다.
A씨의 유가족 B씨는 사고 이후 "사고 당시 안전관리요원이 안전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CCTV를 확인한 결과 안전관리요원이 안전고리(카라비너) 체결 유무를 확인해 줘야 하는데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A씨가 13m쯤 올라갔을 땐 아예 현장을 떠났다"며 "사고 이후 인공암장 운영주체 측에서는 일절 사과도 하지 않고, 오히려 고인이 자살을 했다는 식으로 몰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한 "이같은 사고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며 "암장 측은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 대책을 내놔야 한다. 실외 암벽장에 매트 설치, 심장제세동기 구비, 자격 있는 안전관리요원 배치 세 가지가 꼭 이뤄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5월 20일 유가족 군산시청 방문 당시 녹취록 중 일부."2차례 똑같은 등반 마쳤는데…아이러니"
반면 해당 인공암장을 위탁받아 운영한 산악단체의 단체장 C씨는 "자살로 몰고 간 것도, 고인을 모욕하려고 한 것도 아니라 단순히 등반 과정을 설명한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단순히 판매자-소비자 관계가 아니라 우리도 고인과 같이 운동하던 동지들이었어요. 그런데 왜 우리가 고인을 모욕합니까?
지금 '뛰어내렸다'고 제가 표현한 것 때문에 자살로 몰고 있다고 하는데 이건 등반을 설명하느라 한 말이에요. 홀드에서 미끄러졌거나 한 것이 아니라 등반을 마친 후 로프에 의존해 하강하려고 뛰어내렸다는 말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고인이 등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안전고리가 체결된 상태라고 인지하고 있었다는 의미죠. 만약 등반 도중 안전고리가 빠진 걸 인지했다면 벽에 붙어 있는 퀵드로(암벽 등반 장비)라도 잡고 클라이밍 다운하면 됐거든요. 벽도 난이도가 낮은 편인 초보자 코스였어요.
이게 저희로서도 아이러니한 게 고인이 서울 소재 유명 등산학교에서 심화반 과정까지 수료하신 분입니다. 사고가 나기 전에 이미 2차례 똑같은 등반도 무사히 마친 상태였어요. 그런데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니 참 이해가 가지 않아요.
물론 책임을 통감하고 있고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가족 측에 사과하는 자리를 만들려고 했지만 상황도 그렇고 일정도 꼬여 지지부진해졌습니다. 참 유감스럽습니다."
지난해 6월 개정된 체육시설업법에서 강화된 인공암장 안전수칙.유가족, 암장 모두 법정다툼 예고
양측 모두 향후 어떤 민형사상 조치든 감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암장 측은 A씨가 자신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에 대한 면책동의서에 서명했고, 스포츠사고의 법적책임에 관한 가이드라인에서도 스스로 안전을 지킬 의무가 있다는 점이 명시돼 있어 개인의 과실이 있다는 점이 분명하다는 논지다.
반면 유가족 측은 지난해 6월 개정된 체육시설업법 조항 중 인공암벽장업의 안전·위생 기준 3번 조항인 '안전관리요원 또는 체육지도자는 이용자가 등반하기 전에 안전벨트, 고리(카라비너), 확보기구, 암벽화 등 안전장비를 착용하도록 지도해야 한다'를 들어 암장 측의 업무 과실을 지적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번 사고에 대한 시시비비는 법정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한편 이번 사고가 지난해 인공암장 안전 관련 규정이 대폭 강화된 이후 공론화된 첫 사망사고인 만큼 향후 체육시설업법이 재손질될 것인지 여부에 대해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이번 사고의 가장 큰 쟁점인 안전관리요원이 숙련 등반가의 안전을 어느 수준까지 명시적으로 관리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인천지역 실내암장의 한 안전관리요원은 "절대 다수의 암장들이 일일 체험객의 경우에는 당연히 하네스 착용부터 안전고리 체결까지 직접 해주고 있지만, 숙련 등반가는 스스로 하게 두는 편"이라며 "조심스럽지만 안전고리 체결 같은 기본적인 등반 수칙은 클라이밍이라는 종목 특성상 숙련 등반가라면 스스로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본다"고 전했다.
반면 수도권 동부 실내암장의 한 안전관리요원은 "이번 사고는 상당히 예외적"이라면서도 "유사 등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안전관리 매뉴얼을 한 번 점검해 볼 필요는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월간산 2022년 8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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