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진짜 스포츠카에 빠지다. 로터스 엘리스 R

태권 한 2008. 3. 16. 16:49

 

진짜 스포츠카에 빠지다. 로터스 엘리스 R



도로위로 뛰쳐나온 카트나 다름없는 로터스 엘리스 R은 알루미늄 합금 섀시에 FRP 보디를 얹어 차체 중량이 860kg에 불과하다. 미드십에 얹은 토요타제 1.8리터 VVTL-i 엔진은 190마력을 뿜어내면서 초경량의 스포츠카를 5.2초 만에 시속 100km까지 쏘아 보낸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로터스 엔지니어링이 다듬은 하체는 그 한계가 어디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뛰어난 접지력과 정교한 코너링을 제공한다. 클러치는 사용하기 편하고 정교한 기어는 운전재미를 배가시킨다. 한여름 뜨거운 태양 때문이 아니라 엘리스 R 때문에 열병에 걸리고 말았다.

(메가오토


거의 매 주 1~2 대의 신차를 시승하고 있지만 매 번 새로운 데이트 상대를 만나는 일은 즐겁고 긴장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지다 보니 조금은 덤덤해진 면도 없지 않지만, 가끔은 밤잠을 설칠 만큼 기다려지고 흥분하게 만드는 상대도 있다. 그런 상대는 거의 대부분 gorgeous 한 미녀들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오늘 만나는 gorgeous 미녀는 작은 체구에 극도로 육감적인 몸매와 끝내주게 화끈한 성격을 가졌다. 헐리우드에서 찾는다면 아마 셀마 헤이액 정도가 되지 않을까? 그러면 자동차의 셀마 헤이액은 과연 어떤 모델일까? 로터스의 엘리스다. 그 중에서도 엘리스 R이 오늘 데이트의 상대다.

데이트에서 호구조사는 상당히 진부하지만 어쩔 수 없이 조금만 하고 넘어가자. 로터스는 1952년 영국에서 천재적인 엔지니어 콜린 채프먼이 설립한 회사다. 그의 뛰어난 엔지니어링 기술은 대부분 경량화라는 방법을 통해서 실현되었으며, F1을 포함한 수 많은 자동차 경주에서 로터스는 뛰어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초기에는 오스틴의 모델을 개조한 차량을 선보이다가 52년 로터스 엔지니어링 창립 이후 로터스 6를 개발해 선보였다. 6는 57년 7으로 진화했는데, 바로 그 유명한 로터스 7이다. 로터스 7은 오랫동안 사랑을 받다가 73년 캐이트햄으로 넘어갔다. 7과 함께 등장했던 경량 스포츠 쿠페 엘리트는 이후 로터스의 간판모델이 되었다.

국내 팬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로터스의 대표적인 모델로는 영화에도 자주 등장했었던, 기함이라 할 수 있는 에스프리와, 기아에서 생산했었던 엘란 등을 들 수 있다. 엘리트의 뒤를 이어 등장한 엘란은 경량 2인승 로드스터로 큰 인기를 얻었다. 엘리스는 95년에 처음 등장했는데, 엘란이 FF 구동계를 사용한 것과는 달리 MR 구동계를 채택한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2000년에는 엘리스를 기본으로 구페형인 엑시지가 탄생됐으며, 2002년에는 엘리스가 현재의 모습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현재 생산되고 있는 또 하나의 모델 유로파는 66년 첫 선을 보였던 로터스 최초의 미드십 모델 유로파의 명성을 잇고 있지만, 역시 엘리스를 기본으로 GT의 성격을 가미해 개발되었다. 이들 로드카 외에도 2-일레븐과 같은 트랙용 머신이 생산되고 있으며,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 두었던 기함 에스프리는 곧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할 예정이다. 그리고 지난번 한국 시장 런칭 행사장에서 로터스 관계자는 현재 로터스가 약 5 종의 새로운 모델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머지 않아 다양한 로터스가 등장할 예정이다. 재미있는 것은 로터스의 모델들은 엘리트 이후 모두 이니셜이 E로 시작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에는 엘리스 S, 엘리스 R, 엑시지 S, 유로파 S가 선을 보였다. 그 중 가장 먼저 시승하게 된 모델은 엘리스 R이다.


우선 엘리스 R은 초경량 소형 스포츠카다. 차체의 전장×전폭×전고가 3,785×1,850×1,117mm이며 휠 베이스는 2,300mm다. 미니의 전장×전폭×전고가 3,714×1,683×1,407mm,
휠 베이스가 2,467mm이니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미니보다 약간 길고 조금 넓지만 지붕은 약 30cm나 낮다. 말 그대로 땅바닥에 붙은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최저 지상고는 130mm로 낮은 편이 아닌데다, 앞 뒤 오버행이 거의 없어 과속 방지턱이나 지하 주차장에 드나드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차체는 알루미늄 합금으로 된 박스형태의 프레임에 엔진과 변속기, 서스펜션 등 파워 트레인을 장착하고 그 위에 FRP로 만든 차체를 얹어서 완성된다. 이러한 경량화 설계는 로터스 엔지니어링의 핵심이며, 창업자 콜린 채프먼의 철학이다. 이렇게 완성된 차체는 중량이 불과 860kg이다. 그나마 차체를 보강하고 편의 장비를 더하면서 이전 모델에 비해 몸무게가 많이 늘어난 거다.

FRP로 제작하는 만큼 과감한 곡선이 도입된 차체 스타일은 예쁜 모습과 괴기스러운 모습이 공존하는 분위기다. 약간 위에서 보면 길쭉한 타원형 램프와 과격한 펜더, 초승달 모양의 공기 출구가 아기 자기한 모습이지만 시선을 낮추어 정면을 바라보면 거대한 입을 벌리고 눈을 부라린 짐승 같기도 하다. 차체 앞 부분에는 라디에이터가 위치해 있다. 차체 뒷부분에 위치한 엔진에서 더워진 냉각수가 운전석 왼쪽 프레임을 지나 라디에이터로 가서 냉각된 후 다시 엔진으로 돌아간다. 냉각 효율은 좋겠지만 운전석에 앉으면 왼쪽이 따뜻함을 느낄 수 있고, 창문 바로 앞으로 빠져 나오는 더운 공기는 오픈 주행 시 실내로 넘어오기도 한다.

날카로워 보이는 가로핀을 가진 라디에이터 그릴의 이미지는 미드십에 장착된 엔진에 공기를 불어 넣어주는 뒤 펜더 앞쪽의 공기 흡입구로 이어진다. 엘리스는 미드십으로 불리긴 하지만 가로 배치된 엔진과 변속기가 거의 뒷바퀴 축에 근접해 있어 사실은 리어엔진에 가깝다.

미드십 스포츠카답게 루프에서 떨어지는 C필러가 없고 시트 뒤쪽의 프레임과 유리벽 너머는 평평한 엔진 후드가 위치한다. 엘리스에는 탈착식 소프트탑이 기본으로 제공되는데, 마치 타르가톱처럼 소프트탑을 뜯어낸 후 트렁크에 보관하는 방식이다. 탑을 열 땐 좌우 프레임 안쪽에 있는 버튼 두 개를 가운데로 밀면서 프레임을 먼저 분리시키고 양쪽에서 돌돌 말아 주면 된다. 그리고 천의 가운데 부분을 받쳐주는 플라스틱 지지대 2개도 뽑아서 함께 트렁크에 보관하면 된다. 트렁크는 엔진 후드를 열면 엔진룸 뒤쪽에 마련되어 있는데, 공간이 협소할 뿐더러 엔진의 열기가 그대로 전달되어 물건을 싣는데 제약이 많이 따른다. 엘리스에도 하드탑을 장착할 수 있는데, 별도로 구매해야 하며, 손쉽게 탈착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고 볼트를 이용해서 고정해 주는 방식이다.

차체 뒷 부분은 살짝 치켜 올라가면서 스포일러의 역할을 담당하고, 뒷 면에는 좌우에 두 개씩의 원형 램프가 위치한다. 바닥으로는 두 개의 대형 디퓨저가 공기의 흐름을 유도하고 그 가운데 두 개의 배기 파이프가 돌출되어 있다.

열쇠구멍 부분을 눌러서 도어를 열면 엘리스의 독특한 실내가 드러나는데, 평평한 바닥 위에 시트를 비롯한 각종 내장품이 배치되어 있다. 가장 특이한 것은 시트 바깥쪽으로 아주 넓고도 높은 터널이 마련되어 있는 점이다. 앞쪽으로 갈수록 더 넓어져 실내를 마치 보트 모양으로 모아 준다. 평평한 바닥에 시트가 붙어 있는 구조는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등 스포츠카에서 자주 보게 되는 방식이지만 이처럼 넓고도 높은 터널을 가진 경우는 드물다. 문턱은 넓고 높으며 지붕은 터무니없이 낮다 보니, 엘리스의 시트에 앉는 동작은 그 어떤 스포츠카에 앉는 것보다 더 어렵고 힘들다. 우아하게 의자에 착석한다기 보다는 조종석에 기어 들어가서 자세를 잡는다고 보는 편이 더 어울린다. 터널과 스티어링 휠 등을 양손으로 모두 지지하면서 앉아야 그나마 좀 쉽고 우아하게(?) 앉을 수 있다.


실내는 아주 간결하다. 알루미늄 프레임이 그대로 노출된 평평한 바닥에 시트가 붙어(?) 있고, 가운데에는 기어 레버가 박혀 있다. 데시보드는 스웨이드로 덮었고 아래부분에는 알루미늄이 노출되어 있다. 직경이 극도로 작은 스티어링 휠도 가죽과 스웨이드로 감쌌고 계기판은 두개의 원형 게이지 아래 경고등과 트립미터가 심플하게 배치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회전계의 눈금이 3천 rpm까지는 촘촘하게 배치되어 있고 그 이상은 넓게 배치된 점이다. 8천 rpm까지 사용하는 스포츠카다운 발상이다. 이처럼 실내는 두말할 것도 없이 스포츠카의 모습 그 자체다.

하지만 데시보드의 알루미늄 부분에는 역시 알루미늄으로 된 에어컨 장치와 그 옆으로 알파인 MP3겸 CDP 오디오가 위치하고 있다. 레이싱 머신과도 같은 엘리스에도 에어컨과 오디오는 물론 전동 윈도우와 중앙 집중식 도어락도 모두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다(하지만 옛날 911 터보처럼 컵홀더는 아직 없다). 이와 같은 편의장비들은 경량화를 위해 고객이 원할 경우 제거할 수 있다. (단, 가격이 낮아지지는 않는다.)

헤드레스트 일체형의 프로백스 시트는 알루미늄 뼈대에 가죽을 얇게 덧대고 등받이 각도도 고정이지만, 앉아보면 보기보다 상당히 편안하다. 기자의 체형으로는 옆구리에 약간의 여유가 있지만 몸은 잘 잡아주는 편이다. 운전석은 수동으로 슬라이딩을 조절할 수 있으며, 동반자석은 전혀 움직일 수 없도록 고정되어 있다. 시트 가죽 재질은 스웨이드와 카본룩으로 된 것을 별도 비용 없이 선택할 수도 있다.

미드십에 장착된 엔진은 토요타제 1.8리터 VVTL-i 로 가변 밸브 타이밍과 가변 밸브 리프트가 모두 채택된 2ZZ 엔진이다. 최고출력 192마력/7,200rpm과 최대토크 18.5kg.m/6,800rpm을 뿜어낸다. 가변밸브 리프트가 작동하는 시점은 6,200rpm 부근으로 이 회전수를 넘어서면서 마치 터보차저가 도는 것처럼 토크가 증가하는 것을 소리와 함께 느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비교적 낮은 회전수에서 작용하는 과급기나 혼다 S2000의 V-TEC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토크가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인 6,200rpm에서부터 리프트량을 늘려서 다시 한번 토크를 끌어 올려 주므로 8,000rpm까지 매력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키를 돌려 시동을 걸면 시트 뒤쪽에서 진동과 엔진음이 전해온다. 토요타에서 공급한 4기통 엔진이니만큼 페라리나 포르쉐, 람보르기니의 시동을 걸었을 때 들려오는 정도의 우렁찬 사운드는 아니다. 다만 바로 등뒤에 엔진룸이 있으며, 그 엔진룸이 밀폐되어 있지 않고 또한 실내도 밀폐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일반 승용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엔진음은 엘리스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배기음도 그리 강하게 다듬어져 있지는 않다. 뒷 모습에서 거대한 디퓨저 사이로 조그만 두개의 배기구가 자리하고 있는 모습에서도 다소 안쓰러움이 묻어나긴 한다. 만약 더욱 우렁찬 배기음을 원한다면 옵션으로 제공되는 레벨 1 스포츠 머플러를 장착할 수가 있다. 더 폭발적인 레벨 2 스포츠 머플러도 있긴 하지만 그것은 레이스 트랙 전용이라고 한다.

아이들링 상태와는 달리 주행을 시작하면 엔진 사운드는 수직으로 상승한다. 앞서도 설명했듯이 엔진룸의 사운드가 별 여과 없이 실내로 전해지는 만큼 평범한 시내 주행에서도 실내의 소음은 상당한 수준이다. 엔진과 변속기를 고려해서 시내 주행을 해 보면 대체로 3천에서 4천 rpm 전후의 회전수로 주행할 경우 가장 무난한 주행을 할 수 있다. 물론 3천 rpm 이하로도 부족함은 크게 없지만 3천 ~ 4천 rpm에서도 반응이 너무나 부드럽고, 회전 한계가 높은 만큼 그 정도를 유지할 때가 가장 느낌이 좋다. 또한 그렇게 주행할 경우에는 굳이 기어 변속 없이도 즉각적으로 가속이 가능하다는 점도 엘리스 R과 잘 어울리는 대목이다. 이렇게 3천 ~4천 rpm으로 주행하면 시내 주행 중에도 상당한 소음 속에서 주행하게 된다. 이때 오디오를 켜 보면 소음의 상당부분이 상쇄되어 비교적 여유가 생긴다. 알파인 오디오는 음질이 뛰어나진 않지만 이런 때 상당히 유용해, 왜 엘리스에 오디오를 달았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기왕이면 비트가 강한 음악을 주로 듣는 것이 잘 어울릴 것 같다.

이 정도의 고성능을 발휘하는 스포츠카라면 엄청 예민한 클러치가 장착되어 있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싱겁게도 엘리스 R에 장착된 클러치는 비록 무겁긴 하지만 유격이 길지 않고, 미트 레인지가 넓어 사용하기 편하다. 당연히 반클러치의 사용은 자제해야 하지만 반클러치에 익숙한 운전자들에게도 까탈스럽게 굴지 않는다.

하지만 로터스 엘리스를 마음에 품고 있다면 운전기술을 연마해야 하는 건 당연한 도리다. 특히 엘리스 R의 엔진은 회전이 빠르고 매끄럽게 상승할 뿐만 아니라 떨어질 때도 순식간에 떨어진다. 따라서 클러치를 끊을 땐 절도 있고 신속하게 끊어주고 미트 시킬 때는 정교하게 회전수를 맞춰서 신속하게 미트시켜야 한다. 이런 동작들에만 신경 써서 달려도 그 자체가 엄청난 즐거움을 제공한다. 평상시와 똑 같은 시내를 주행하면서도 차와 하나가 되기 위해 정교하게 계산하면서 손과 발을 움직이는 동작이 그 자체로 스포츠다.

로터스를 위해 개발해준 토요타제 수동 6단 변속기는 기어비가 좁은 가속형이다. 차가운 알루미늄 공이 달린 기어 레버를 작동하는 것은 엘리스 R을 타는 즐거움 중에서도 최상위에 해당한다. 기어를 빼거나 넣을 때 차그락하는 기계음이 너무 멋지다. 아직 운전은 못해보고 그냥 앉아만 봤었던 애스턴 마틴 V8 밴티지의 기어에서 들려 주었던 고도로 정교한 기계음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V8 밴티지를 제외하곤 작동 느낌에서 엘리스 R을 능가하는 차량은 흔치 않다. 페라리나 람보르기니의 수동 변속기와 비슷한 느낌이라면 비교가 될까? 물론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디아블로(무르시엘라고는 제외)는 엄청 무겁고 까탈스러운 클러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기어를 유도하는 알루미늄 게이트 패널이 부착되어 있어 기어를 움직일 때 기어 자체의 소리와 함께 패널을 스치는 금속성이 더해진다는 점 등이 더 매력적이지만 적어도 변속기 조작 느낌에서는 비슷하다.


엘리스 R은 1단에서부터 풀가속을 해도 휠스핀이 쉽게 일어나진 않는다. 차체가 가볍고 무게 중심이 뒤에 있는데다 뒷바퀴를 굴리는 타이어의 접지력이 우수한 때문이다. 회전계에는 레드존 표시가 없이 1만 rpm까지 기록되어 있지만 8,200rpm 정도에 이르면 회전계 중앙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그러면 변속을 해 주는 것이 좋다. 회전수를 계속 올리면 8,500rpm 정도에서 연료 차단이 된다고 하는데, 기자는 직접 경험해 보지는 못했다.
빨간 불이 들어오는 8,200rpm에서 변속할 경우 60, 100, 145, 180km/h에서 각각 변속을 하게 된다. 5단 6,700rpm 정도에서 200km/h를 넘어서면 가속은 현저히 줄어들어 서서히 속도를 올리는데 230km/h를 넘기면서 6단으로 변속하게 된다.

탑을 벗긴 상태에서 200km/h로 주행하면 소음은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공기를 가르는 소음이 상당히 특이한데, 마치 검술의 절대 고수가 휘두르는 예리한 칼날이 공기를 가르는 것과 같은 소리 수십 만개가 한꺼번에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다. 포르쉐 911 카브리올레나 메르세데스 벤츠 SL 클래스로 250km/h로 주행할 때보다 더 강렬하다.

초기 가속은 말 그대로 수퍼카급이다. 0~100km/h 가속에 5.2가 걸린다. 포르쉐 911 카레라 S의 5.3초보다 빠른 실력이다. 136마력의 엘리스 S로도 5.8초가 걸리고 수퍼차저를 장착한 엑시지 S로 올라가면 가속은 4.3초로 떨어진다. 이처럼 엘리스 R은 중속 이하에서의 뛰어난 가속력과 핸들링을 즐기는 스포츠카이지 200km/h를 넘어서는 고속영역에서 즐기는 차는 아니다. 오히려 그런 면이 보다 현실적인 스포츠카에 더 가깝다. 국내의 경우 스포츠카로써 보험료의 부담은 커지지만 배기량으로 따지는 세금에서는 대단한 경쟁력이 있는 셈이다.

가벼운 차체에도 불구하고 고속에서의 안정감은 탁월하다. 쉽게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것은 모두 다운포스를 발생시키는 에어로 다이나믹 차체가 만들어 내는 결과다. 차체 바닥만 보더라도 바닥 전체가 평평한 알루미늄 패널로 덮여 있다. 어디 하나 튀어나온 것이 없다. 엔진 아래쯤에서는 3개의 공기 구멍이 보이는데 바닥을 지나는 공기 중 일부가 그 구멍 속으로 들어가 엔진룸과 브레이크를 식힌 후 뒤쪽으로 빠져 나온다. 물론 다운포스를 발생시면서 말이다. 엘리스는 160km/h 정도의 속도에서 약 60kg 정도의 다운포스를 발생하고, 180km/h 이상의 속도면 약 80kg이 발생한다고 한다. 860kg의 차체가 200km/h로 달리는데도 바닥에 착 달라붙는 이유가 거기 있었던 것이다.

트랙이나 산길 와인딩에 들어서면 이제서야 엘리스 R은 물 만난 고기가 된다. 파워스티어링이 없는 스티어링 휠은 상당히 예리하고 스티어링 휠의 직경이 작아 그 응답성은 매우 빠르지만 의외로 약간의 유격이 있다. 차의 앞머리는 운전자가 의도하는 대로 돌아간다. 앞 타이어가 195/55R17이지만 기대 이상의 접지력을 발휘한다. 역시 경량화의 결과물이다. 뒤 타이어는 225/45R17이며 모두 접지력이 좋은 요코하마 어드반 네오바 타이어를 신었다.

코너를 돌아나갈 때는 거의 뉴트럴에 가깝다. 가속 5.2초 대의 폭발력을 모두 쏟으면서 가속해도 쉽게 뒤가 흐르지 않는다. 오히려 상황에 따라서 약간 언더스티어 기분이 들기도 한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로터스 엔지니어링의 기술력을 실감하게 되는 대목이다. 아무리 과격하게 집어 던져도 엘리스는 제 갈길을 간다. 이런 엘리스에도 LSD와 TCS, 그리고 ABS가 기본으로 장착된다. ESP가 없다고 투덜댈 필요가 없다. 웬만해서는 TCS나 ABS가 작동되는 것을 경험하기 힘들 만큼 기술적인 완성도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엘리스 S와 R에 기본으로 장착되는 TCS는 끌 수 없도록 되어 있다. TCS를 임의로 끄기 위해서는 별도 옵션으로 TCS 버튼을 달아야 한다. TCS 버튼은 변속기 레버 하우징 왼쪽에 부착되는데, 시승차에는 달려 있지 않았다.

차체가 가벼운 만큼 엘리스의 브레이크도 놀라운 수준이다. 200km/h에서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100km/h로 끌어 내린다. 안정감도 뛰어나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는 몇몇 스포츠카의 브레이크 성능과 비슷하거나 혹은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다. 반면 100km/h 전후에서 이루어지는 코너링 중에 브레이킹을 할 경우에는 차체 뒤가 심하게 흐를 수 있다. 따라서 슬로우 인, 패스트 아웃의 정석에 맞게 주행해야 한다.

서스펜션이 워낙 단단한 만큼 코너링에서 뛰어난 접지력과 롤 억제력을 가지긴 하지만 우리나라 산길 혹은 일반 도로에서의 주행에 에로사항이 있다. 바로 고르지 못한 노면이다. 어쩌다 아스팔트가 파이거나 덧댄 곳을 지나면 차가 안쓰러울 정도로 차에 충격이 가해진다. 또한 산길 내리막에서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해 아스팔트에 덧댄 일명 빨래판을 지날 때도 차체에 전해지는 진동은 상당히 불쾌하게 전해진다. 일반 승용차라면 최고의 안락함을 누릴 수 있는 새로 닦은 고속화 도로의 아주 미세한 요철 조차도 엘리스는 실내로 모두 전달할 정도다. 최고의 쾌감을 선사하는 스포츠카인 만큼 도로 선택에도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대목이다. 잘 닦여진 도로나 트랙에서 즐기는 것이 좋겠다.



엘리스 R은 정말 독특하다. 속된 말로 생긴 건 기생 오라비처럼 곱게 생겼는데, 힘은 장사에다 성깔은 거칠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엘리스 R을 몰고 시내를 지나가면 너무나 예쁜 외모 때문에 온몸 가득 시선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스포츠카는 당연히 예뻐야 한다지만 엘리스 R의 경우에는 너무 예쁜 것이 약간은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차라리 좀 수수하게 생겨서 시선 받지 않으면서 고성능을 즐기고 싶다는 억지 섞인 생각도 들긴 한다. 그 만큼 성능에서의 완성도가 뛰어나기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예쁜 게 더 나은 건 어쩔 수 없는 심리 아니겠는가?

너무나 아름다워 눈조차 마주치기 힘들었던 그녀와 이제는 많이 친숙해졌다. 다음 단계는 어떻게 하면 그녀와 매일 아침 함께 눈을 뜰 수 있는가 하는 거다.

로터스 엘리스 R 주요 제원

크기
전장×전폭×전고 : 3,785×1,850×1,117mm
휠베이스 : 2,300mm
트레드 (앞/뒤) : 1,457mm/1,506mm
공차중량 : 860kg

엔진
형식 : 직렬 4기통 DOHC VVTL-i
배기량 : 1,796cc
보어×스트로크 : 82.0×85.0mm
최고출력 : 192마력/7,800rpm
최대토크 : 18.5kg.m/6,800rpm
압축비 : 11.5:1
구동방식 : MR

트랜스미션
수동 6단
기어비 1/2/3/4/5/6//R : 3.116/2.050/1.481/1.166/0.916/0.815//3.250
최종감속비 : 4.529

섀시
서스펜션 (앞/뒤) : 더블 위시본
브레이크 : V-디스크, ABS
스티어링 : 랙 & 피니언
타이어 앞 : 175/55 R16, 뒤 : 225/45 R17

성능
0-100km/h : 5.2초
최고속도 : 241km/h
연료탱크 : 45리터
연비 : 11.4km/리터

가격
6,970만원 (부가세 포함)
7,530만원 : 코리안 팩 (메탈릭 페인트, 트랙션 컨트롤 스위치, 하드탑) 적용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