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자전거로 암을 날려버리고 싶어요”

태권 한 2009. 3. 22. 11:15

“자전거로 암을 날려버리고 싶어요”

 

희귀 암 20대 젊은이 ‘뜨루 드 프랑스’ 도전


모든 사이클 선수들의 꿈의 무대이자 가장 잔혹한 사이클 경기라는 ‘뚜르 드 프랑스’. 그 지옥 같은 경기에서 7연패라는 대기록을 세운 랜스 암스트롱이 많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 것은 암이라는 병마를 극복하고 이뤄낸 기적 같은 연승이기 때문이다.

랜스 암스트롱과 같이 암에 걸렸지만 굴하지 않고 ‘뚜르 드 프랑스’ 코스에 도전장을 낸 젊은이가 있다. 전세계에서 200명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희귀암을 선고 받고 항암치료 중에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는 이윤혁(25)씨. 자전거에 실은 그의 꿈과 희망을 들어봤다.


이윤혁씨의 최근 라이딩 모습
이윤혁씨의 최근 라이딩 모습


군 입대 중 희귀병 진단 받아

인하대학교에서 체육교육학 전공한 그는 재학 시절 보디빌딩 선수를 할 정도로 건장한 청년이었다. 2006년 대학졸업 후 7월 학사장교로 군 입대해 그해 10월 소위로 임관했다. 군 생활 중 몸에 무언가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휘귀병 진단을 받았다. 결체조직작은원형세포암(desmoplastic small round cell tumor).

전세계에서 200명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희귀암이다. 이미 간과 복막 전체에 전이돼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은 그는 강력한 항암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4차에 걸친 항암치료를 견딘 후에야 비로소 “종양이 줄어든다”는 CT소견을 받아볼 수 있었다. 2007년 2월 1차 개복수술을 했다. 완치 목적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암세포을 제거하는 수술이었다. 그 후 2008년 10월까지 21번의 항암치료를 받았다. 항암치료를 25번 받은 것이다. 머리카락이 없고 얼굴이 퉁퉁 부어있는 거울 속의 모습과 항상 싸워야 했다. 2009년 2월 3일 2차 개복수술을 했다. 비장, 쓸개, 오른쪽 횡경막을 제거하는 대수술이었다. 담당의사는 “눈에 보이는 암세포를 모두 제거했다”고 말한다.

남은 건 그의 의지뿐. 신앙인인 그는 지금의 몸이 더 이상 재발이 없는 완전한 상태라고 믿는다. 체중이 10kg 이상 빠져 초장거리 구간인 ‘뚜르 드 프랑스’에 도전하기 좋은 조건이 된 것. 현재는 기력을 되찾기 위해 가볍게 라이딩하고 있다.


미시령 정상에 선 이윤혁씨
미시령 정상에 선 이윤혁씨


암 치료하며 자전거 타기 시작

암환자들 대부분은 암에 대한 서적을 많이 본다고 한다. 그 역시 ‘암세포가 어떤 놈인가’부터 ‘처절한 투병기’까지 다양한 서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렌스 암스트롱이 쓴 ‘1%의 희망’과 ‘이것은 자전거 이야기가 아닙니다’라는 책을 만났다.

충격이었다. 암스트롱이 암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은 그가 투병하고 있는 것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기적과 같이 경기에 복귀하고 결국 다시 우승하는 과정을 읽으며 “한번쯤 직접 만나봤으면…” 소망했다. 기회는 쉽게 찾아왔다. 2007년 국내에서 열린 ‘뚜르 드 코리아’ 대회를 맞아 암스트롱이 한국을 방문한 것이다. 암스트롱이 쓴 책을 내밀며 “I have a cancer”라고 말했다. 암스트롱은 자신의 사인과 함께 “never give up”이라고 썼다. 이 사인이 바로 ‘뜨루 드 프랑스’ 출발점이었다.

항암치료의 가장 큰 부작용은 골수억제. 특히 백혈구 수치가 많이 떨어져 남들보다 쉽게 감염되고 쉽게 피곤함을 느끼게 된다. 웨이트 트레이닝은 힘을 쓰는 운동이라 너무 힘이 들었다. 그래서 시작한 게 자전거 타기. 자전거를 타면서 다리에 힘이 붙기 시작했다. “랜스 암스트롱처럼 타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항암치료 중에도 체력은 점점 좋아졌다.


랜스 암스트롱의 친필 사인
랜스 암스트롱의 친필 사인


‘뚜르 드 프랑스’를 향하여

혼자 자전거를 타다 우연히 동네에 새로 생긴 자전거샵을 방문하게 됐다. 그곳에서 ‘MAX BIKE’라는 동호회를 만났다. 자전거샵 사장의 소개로 동호회에 가입하게 되면서 자전거 라이딩 실력이 부쩍 늘었다. 지난해 여름 서울~속초 투어를 9시간30분만에 다녀온 후 자신감이 붙었다. 꿈으로만 그리던 ‘뚜르 드 프랑스’ 완주를 현실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암스트롱이 7번이나 우승한 ‘뚜르 드 프랑스’ 코스는 모든 사이클 선수들에게 꿈의 무대다. 한국 선수는 아직 그 대회를 출전한 적은 없다고 한다. 정식 경기는 아니라도 그 코스를 완주해보고 싶었다. 그의 소망을 들은 한 등산전문점 사장이 “도와주겠다”며 힘을 실어 주었다.

“희귀병과 싸우면서 암스트롱으로 인해 희망을 얻어 일어선 것처럼, 전세계 암환자 단 한명이라도 내 모습을 보고 희망을 갖고 꿈을 꿀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도전을 계획하게 됐어요”

‘뚜르 드 프랑스’ 는 매년 코스가 조금씩 달라진다. 그는 암스트롱이 암투병을 마치고 참가해 첫 우승을 차지한 1999년 코스를 목표로 잡았다.


먼저 서울~속초를 달렸다

2008년 7월. 자전거동호회 ‘MAX BIKE’의 회원들의 길 안내를 받으며 일요일 밤 10시에 서울을 출발했다. 전날부터 컨디션을 조절하고, 진통제와 소화제를 챙기는 등 철저히 준비했다. 병원 주치의 선생님이 알았다면 못 가게 말렸을 것이다.

루트는 서울 등촌동을 출발해 여의도~잠실~광진교를 건너 미사리~양평~홍천~인제~속초로 이어지는 길. 밤에 출발해 고생을 많이 했다. 24시간 휴게소마저 문을 닫는 바람에 식량은 바닥나고 자판기에서 산 콜라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홍천까지 나아갔다. 새벽 5시께 겨우 밥을 먹고 다시 날이 밝는 걸 보면서 계속 페달을 밟았다. 중간중간 혹시 모를 통증 때문에 진통제를 주기적으로 복용해야 했다.

강원도까지 가는 길은 대부분 오르막이라 속력이 나지않아 힘 들었다. 모두 5명이 갔는데 한명만 사이클을 탔고 나머지는 MTB를 타고 갔다. MTB는 마찰력이 큰 바퀴여서 힘이 더 들었다. 자전거도로가 별도로 없었다. 2차선 지방도를 주로 이용하다 보니 자전거를 위협하면서 아슬아슬하게 추월해 나가는 차들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는 라이딩을 하는 내내 “내 몸 안에 있는 암세포를 태워 죽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미시령고개를 앞두고 잠시 쉬는데 너무 더워 물을 머리에 부었는데 그게 바지로 스며들었다. 안장에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엉덩이가 짓물렸다. 있는 힘을 다해 미시령고개를 넘었다. 멀리 속초 바다가 보였다. 거의 페달링을 하지 않고 속초까지 갔다. 라이딩 시간만 9시간 30분이 걸렸다. 속초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고속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서울로 돌아왔다.

“내가 해냈다”는 뿌듯함으로 며칠 동안 행복했다. ‘뜨루 드 프랑스’ 도전에 자신감을 심어준 라이딩이었다.



올 8월 또는 9월 레이스 도전

그는 올해 8월 또는 9월에 프랑스로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동안 타던 MTB를 사이클로 바꾸고 요즘은 사이클 적응 훈련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체육교육과 오수학, 박동호 교수가 트레이닝 프로그램 등을 지원하겠다 약속했다. 현지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 도움을 받고 있다. 함께 떠날 인원은 그를 포함해 3~4명 정도. 차량을 운전하고 기록을 체크할 동행자가 필요하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번 투어의 본질.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리고 “암을 극복한다”.


준비하는데 어려움은 없나

3월말 다시 CT를 촬영한다. 별다른 병변이 없으면 3개월에 한번씩 관찰하면 된다. 이 병은 ‘사실상 완치가 없다’고 자료에 나와 있다. 현재가 완치에 가강 가깝게 간 시점이다. 그는 결과를 기다리기보다 확신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꿈과 열정만 있다고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비용이 문제다. 그는 계획서를 만들어 ‘의미있는 일에 동참해줄 투자자’를 찾아가 설명할 예정이다. 아무런 경력도 없는 사람에게 비용을 대줄 투자자가 있을까.

그는 “저의 꿈에 투자하실 분들이 분명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완주 후에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그에게 ‘뚜르 드 프랑스’ 도전은 시작에 불과하다.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프랑스 투어는 큰 의미 없는 ‘그저 건강한 청년의 호기 어린 여행’으로 비칠 수 있다. 그는 항암치료를 받으며 병원에서 심하게 구토를 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 고통을 기억하고 절대 헛되게 쓰지 않으리”

기회가 되면 철인3종 경기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그는 “랜스 암스트롱처럼 많은 암환자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글/워크홀릭 담당기자 최경애 doongj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