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원 사태의 진실!!!
태권도는 대한민국의 자랑이다. 또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 상품이다. 혹자는 "세계가 한국에 준 커다란 선물"이라며 극찬한다. 국내에 있을 때는 잘 모르지만 해외에 나가면 태권도의 위상은 실로 엄청나다. 콧대 높은 외국인들도 태권도 앞에 서면 작아진다. 도장에서 태극기를 걸어놓고 "차렷, 경례" 등 한국 말로 태권도를 수련한다. 또한 올림픽 종목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말로 진행되는 종목이기도 하다. 자부심이 절로 느껴진다.
하지만 2000년대를 기점으로 태권도를 바라보는 국내외 이미지는 크게 달라졌다. 이전까지 태권도는 '존경과 선망, 그리고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후 극심한 파벌 싸움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서로를 헐뜯는 비방전도 난무했다. 특히 각종 비리에다 폭력 사태도 더해져 태권 종주국의 위상은 크게 실추됐다. 최근에는 국기원 사태까지 겹쳐 외국인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재단법인에서 정부의 지원과 감독을 받는 법정법인으로의 전환 작업이 1년 5개월 동안 결론을 내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어서다. 국기원 사태는 태권도가 정체되고 있는 현실을 잘 투영하고 있다.
▶국기원은 어떤 단체?
국기원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선 태권도의 역학구조를 먼저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태권종가' 답게 3개의 태권도 단체가 있다. 국기원, 세계태권도연맹, 대한태권도협회다. 해외에선 태권도의 '빅3'로 불리는데 각각의 단체 성격은 다르다.
국기원은 태권도를 보급하기 위해 1972년에 설립된 단체다. 국기원의 주요 업무는 승단 및 승품 단증 발급업무와 함께 해외에 파견하는 태권도 지도자에 대한 연수다. 세계태권도연맹과 대한태권도협회는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등을 위한 일종의 경기 단체다. 국기원이 두 단체와 다른 것은 무도의 정신적인 부문을 강조하는 교육 기관이라는 점이다. 1년 예산은 80억~90억 원이며 주 수입원은 승단 심사비다.
국기원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19명으로 구성된 이사회다. 국기원 이사는 상근 이사와 비상근 이사로 구분하는데 상근이사는 부원장 2명, 총무이사 1명 등 3명이다. 비상근 이사는 무보수 명예직이지만 상근 이사들은 연봉 1억 원의 대우를 받는다. 이사장은 이사회를 총괄하고, 국기원장은 행정실무를 맡는데 김운용 전 원장 시절부터 겸직했다. 이사들의 임기는 4년이며, 이사회는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으로 모든 사안을 처리한다. 갈등의 중심에 있는 법정법인화 작업도 마찬가지다.
▶국기원 파행의 시작과 진실은?
이번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국기원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승단 심사비만 챙기고 태권도의 발전을 위해 한 일이 없다"는 비판에 시달려왔다. 외국에서는 ‘태권도의 성지'로 여겨졌지만 외형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내적 외적으로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승단과 시합 등을 위해 사용하는 본관 건물 한 동 외에는 내세울 것이 없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새로운 단체가 출현했다. 2005년 설립된 태권도 진흥재단이다. 태권도 진흥재단은 전북 무주에 조성되는 태권도공원의 주관 단체로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공공기관이다. 태권도공원은 6000억 원이 투입되는 국책사업으로 태권도 경기장, 태권도 연구소와 연수원, 명인관 등이 들어서는 태권도 성전이나 다름 없다. 문제는 해외사범 교육과 연수 등 국기원의 영역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위상이 약화되는 시점에서 진흥재단의 출현은 국기원으로선 달가울 리 없었다. 자신들의 입지가 줄어들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발동했다. 자구책이 필요했다. 방법은 진흥재단처럼 정부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먼저 정부에 법정법인화를 요청했다. 국기원 사태를 이해하는데 또 다른 중요 포인트다. 이를 관철하기 위해 국회 앞에서 집회를 가질 정도로 열성이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아이러니했다.
정부도 태권도인들의 요구를 들어줬다. 2008년 6월 '태권도 진흥 및 태권도 공원조성 등에 관한 법률'이 발효되면서 국기원도 법정법인화 작업에 들어갔다. 핵심은 이사회를 통한 정관 개정이었다. 국기원 이사들은 법정법인이 되더라도 자신들의 신분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정부의 생각은 달랐다. '개혁'을 통해 새로운 국기원을 만들고 싶었다. 무엇보다 국기원 이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폭력과 비리, 공금 횡령 전과자들이 9~10명에 달했다. 정부는 새로운 정관에 '결격 사유가 있는 임원은 새 정관 시행과 동시에 퇴임한다'는 조항을 삽입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사들이 반발했다. 수 차례 이사회를 열었지만 찬반으로 나눠 팽팽히 대립하며 헛심 공방을 벌였다. 여기에 법정 싸움까지 더해져 혼탁은 극에 달했다. 또한 정관개정 반대의 중심에 있던 이승완 이사에 대한 경찰 수사까지 겹치면서 반대파의 응집력을 키워줬다. 새로운 정관 통과는 요원했다. 국기원이 표류한 핵심 원인이다.
▶국기원이 바로 서야 태권도가 산다
그 동안 정부는 여러 차례 물밑 협상을 벌였지만 소득은 없었다. 이제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지난달 문화체육관광부 김대기 제2차관은 "정부는 국기원 문제에 대해 끈기 있게 기다리며 개입하지 않으려 했지만 법정법인화를 지연시키고 있는 위법 상태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며 "국기원 정상화를 위해 국회와 함께 태권도진흥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법 개정'이라는 초 강수로 국기원을 바로 세우겠다는 의지였다. 이에 발맞춰 한나라당도 국기원 정상화를 위한 법안을 발의하며 정부의 입장에 힘을 보탰다. 법안의 주요골자는 공무원법에 근거한 임원들의 최소한의 도덕적인 기준이다. 태권도계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면서 칼자루를 쥔 정부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법 개정의 신속함이다. 사실 국기원의 자체 정화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치 현안 등에 밀려 국회에서 개정안 절차가 늦어지면 그간 지속돼 온 갈등의 골은 더 깊게 패일 수 밖에 없다.
1년 5개월간의 지루한 공방으로 정부는 물론 태권도인들 모두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정부가 추진하는 법 개정안 속에는 합리적인 기준이 최우선이지만 아픈 곳을 어루만지면서 태권도인의 명예를 지켜주는 방안도 포함돼야 한다. 그래야 명분과 실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면서 개혁작업에 탄력을 붙일 수 있다.
정부는 지난 7월 국가브랜드위원회 2차 보고대회를 통해 태권도를 국가의 '명품 브랜드'로 만든다고 공언했다. 무엇보다 세계무대에 한민족의 우수성을 알리는 '한류의 첨병'역할로 제격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흐름에 한 축을 담당할 국기원이 바로 서야 태권도가 살고 대한민국도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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