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이

어린이 완구, 너무 비싼 이유는?

태권 한 2010. 3. 19. 11:14

어린이 완구, 너무 비싼 이유는?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백화점이나 할인마트에서 장난감 때문에 곤혹스러웠던 경험들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하나에 10만원을 훌쩍 넘어버리는 장난감 가격 때문이다.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들과 한바탕 싸움을 벌여야 하는 부모들은, 별다른 장치도 없는 작은 조립식 로봇이 몇십 만원씩 하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다.

최첨단 기술이 탑재된 것도 희귀한 소재로 만들어진 것도 아닌 장난감 완구 가격이 이처럼 센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장난감 자체보다 장난감과 연결된 '소프트웨어'에서 찾을 수 있다.

일단 어느 장난감 코너에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반다이(BANDAI)라는 제품을 통해 살펴 보자.

◈ '그냥' 장난감이 아니고 '캐릭터' 장난감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장난감회사인 반다이는 상품 대부분을 캐릭터를 소재로 만들었다. 대표적인 상품캐릭터는 '파워레인저'나 '건담'시리즈로, 이들이 주인공인 만화는 한국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됐다.

각 캐릭터의 특징을 살려 다양한 카테고리 상품으로 폭넓게 전개하는 것이 이 회사의 마케팅 전략인 만큼, 반다이는 만화주인공을 인형, 로봇, 프라모델 등으로 다양하게 만들어 판다. 과거와는 달리 수많은 영화와 만화, 게임 등에 노출된 요즘 아이들은 자신들이 TV 등을 통해 직접 접한 캐릭터에 열광하는데 반다이의 상품 캐릭터들이 바로 그것이다.

제품 당 가격이 최소 5만 원 이상 씩 하지만 반다이의 로봇 장난감은 만화를 시청한 아이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끈다. 반면 부모들은 장난감 자체만 놓고 보며 동네 문구점에서 파는 값싼 로봇과 도대체 뭐가 다른지 알 수 없어 한다. 이런 부모에게 아이들은 말한다.

"우리는 '그냥' 장난감이 아니라 만화 속에서 악당을 물리치고 모험을 즐기는 바로 그 '캐릭터' 장난감을 원한다"고. 아이들은 플라스틱 조립품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조립품에 덧씌워진 이야기에 더 열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변신로봇이 주인공인 영화 트랜스포머는 영화관의 관객 뿐 아니라 트랜스포머 장난감 유저(user)인 아이들을 감동시킨다.

따라서 장난감 가격은, 장난감의 몸체를 이룬 플라스틱 가격이나 그것을 만드는 데 들어간 인건비라기 보다는 캐릭터가 만들어지기까지 투입된 유무형의 자원 가격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 때 유무형의 자원은 이른바 '로열티'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된다.

'로열티'는 장난감을 구입한 아이가 만화와 영화, 게임 속 이야기까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비용인 셈이다. 만화 작가며 연출가, 그리고 이야기가 완성된 상태로 나오기까지 투입된 모든 제반 비용이 '로열티'라는 이름으로 요구된다. 요즘 장난감들은 장난감 자체 뿐 아니라 장난감 주인공이 펼치는 이야기, 즉 하드웨어 뿐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팔고 있는 셈이다.

만약 거의 비슷해 보이는 두 로봇 장난감이 하나는 싸고 하나는 비싸다면, 비싼 모델은 분명 '캐릭터' 완구일 것이다. 아이들을 열광시키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 하나 뿐인 내 아이에게 주는 것은 특별해야 하니까

아이들이 열광하는 제품이 지천에 깔렸을 지라도 실질적인 구매권이 있는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비싼 장난감을 사주길 거부했다면, 지금처럼 고가 장난감이 대세이긴 힘들었을 것이다.

'소프트웨어' 가격, 즉 로열티가 붙은 장난감이 마트 자리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저가 장난감을 시장에서 밀어낸 이유는 부모와 업체의 필요가 서로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업체 입장에서 저가 장난감은 될수록 많이 파는 박리다매 전략, 즉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하는 상품이다. 반면 고가 장난품은 하나를 팔더라도 마진율이 높을 뿐 아니라 장난감을 유통시키는 마트의 이미지를 고급화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업체 입장에서는 '팔리기만 한다면' 절대 판매량이 적더라도 고가 장난품을 파는 것이 유리하다. 그런데 한국 부모들은 주로 수입품인 이들 고가 장난품을 '팔리게' 한다.

최근 저출산 추세 속에 자녀를 하나만 둔 부모들은 소중한 자녀에게 다른 아이들과 구별되는 장난감을 사주고 싶어 한다. 이런 분위기는 일반 마트에서조차 저가 장난감이 설 자리를 잃게 한다. 또 유통업체들로 하여금 고가 장난감 수입에 박차를 가하게 만든다. 저가의 중국 장난감은 매대 한 켠으로 계속 밀려나고 유럽이나 일본에서 건너온 고가 장난감은 자체 부스까지 마련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난 해 어린이날에는 불황에도 불구하고 10만 원대 이상 고가 장난감이 아동용품 매출을 견인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장난감이 비싼 이유는, 하필 한국 시장에서 살아남는 장난감이 고가의 수입 장난감이기 때문이다. 또 고가의 수입 장난감이 팔리는 이유는 이들이 막강한 '소프트웨어'로 아이들을 열광하게 만들고 자녀를 최고로 키우고 싶은 부모에게 어필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