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현지에서 먼저 타본 볼보 최초 소형 SUV XC40

태권 한 2018. 1. 15. 18:05

현지에서 먼저 타본 볼보 최초 소형 SUV XC40

        




90년 역사 동안 단 한 번도 소형 SUV를 만들지 않았던 볼보가 마치 처음이 아닌 것처럼 훌륭한 소형 SUV를 만들었다


“이 차는 크로스오버가 아닙니다. 높은 지상고와 시트 포지션, 네바퀴굴림 시스템 그리고 넓은 시야까지, 우리는 완벽한 SUV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물이 XC40입니다.”

볼보 제품 프로그램 매니저 프랭크 바카는 XC40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크로스오버가 아님을 명확하게 밝히고 제품 브리핑을 시작한 것이다. 볼보는 이 차가 크로스오버로 보일까 봐 우려라도 하는 것일까?

XC40를 사진으로만 봤을 땐 앞뒤가 짤따란 것이 한때 유행했던 크로스오버처럼 보이기는 했다. 왜건 명가 볼보가 크로스오버를 만든다고 해도 전혀 놀랍지 않으니까. 그런데 실물로 보니 생각보다 크다. 차체 높이가 1658밀리미터로 경쟁모델 중 가장 높고 휠베이스(2702밀리미터)도 가장 길다. 차체가 짧아 보였던 건 긴 휠베이스에 비해 오버행이 짧기 때문이었다.

짧은 오버행과 높은 지상고는 오프로드에 중요한 요소다. 접근각과 이탈각을 높일 수 있으니까. 더불어 XC40는 앞뒤 펜더와 차체 밑에 검은색의 플라스틱 패널을 덧붙였다. 오프로드를 다닐 때 차체 손상이 많은 부분이다. 여러 면에서 이 차는 오프로드를 달리기에 좋은 조건을 지녔다. 그런데 바카의 브리핑에선 ‘오프로드’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XC40는 볼보가 제안하는 도시에 최적화된 도심형 SUV입니다. 쉽고 편하고 안락하며 넓은 시야를 제공합니다.”

소형 SUV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 중 하나다.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과 중국 두 거대 시장에서 판매량이 꾸준하게 오르고 있다. 전통적으로 왜건과 해치백을 선호했던 유럽에서도 소형 SUV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90년 역사 동안 단 한 번도 소형 SUV를 만들지 않았던 볼보라도 시장에 뛰어들 충분한 이유가 될 만큼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볼보는 소형 SUV를 만들기 위해 지리 자동차와 함께 CMA(Compact Modular Architecture) 소형 플랫폼을 만들었다. XC90, XC60가 사용하는 SPA 플랫폼과 마찬가지로 휠베이스를 늘리고 줄일 수 있는 모듈러 플랫폼이다. 앞으로 이 플랫폼은 V40, S40 등에도 사용될 예정이고 일부 지리 모델과 지리자동차가 새로 론칭한 링크앤코 01에도 쓰게 된다.

외관은 볼보 SUV의 특징적인 디자인과 결을 같이하면서 XC40만의 독창성도 확보하려 했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노즈부터 보닛과 루프로 이어지는 라인, 헤드램프에서부터 리어램프까지 이어지는 곧은 직선, 앞으로 누인 D 필러 등은 형들과 완벽하게 똑같다. 반면 뒤에서 갑자기 올라가는 숄더라인과 투톤 루프, 차체 아래를 모두 감싸고 있는 검은색 패널은 XC40만의 특징이다. 형들이 우아하고 웅장한 느낌이라면 XC40는 젊고 발랄한 느낌을 줬다. XC40의 주요 고객 연령을 감안한 디자인이다.

실내도 패밀리 디자인이다. 레이아웃이 거의 같고 예의 그 세로 모니터가 센터페시아를 가득 메우고 있다. 달라진 구성은 센터스택에 있는 엔진 시동 다이얼이 운전대 뒤로 가면서 버튼식으로 바뀌었고 드라이브 모드가 롤링 방식에서 버튼으로 바뀐 정도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실내를 덮고 있는 주황색의 부직포(R-디자인). 가죽보다 질감이 좋을 수는 없지만 그냥 플라스틱을 대는 것보다는 따뜻한 느낌이다. 질겨서 흠집도 안 난다. 요즘 핫한 아이템인 스마트폰 무선충전 시스템은 안드로이드 오토, 애플 카플레이와 함께 젊은 소비자들이 반가워할 장비다.

XC60에 비해 좌우 폭이 줄고 뒷자리 무릎공간도 좁다. 시트도 약간 작다. 하지만 헤드룸은 어느 자리에 앉더라도 좁다는 느낌이 없다. 수납공간도 아주 훌륭하게 챙겼다. 시트 밑으로 서랍이 있고 센터스택엔 갑 티슈를 넣을 정도로 넓은 수납공간과 함께 쓰레기통을 마련했다. 실내에 쓰레기통이 있는 건 처음 봤다. 여성 오너가 꽤 좋아할 만한 아이템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도어 포켓도 넓다. 1.8리터 페트병을 대충 던져 넣어도 들어갈 듯하다. 볼보는 도어 포켓을 넓히기 위해 과감하게 스피커를 떼어냈다. 하만카돈과 함께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에어우퍼 시스템 덕분인데 공기 통로를 이용해 소리를 증폭한다. 도어에서 스피커를 떼어냈다고 해도 스피커가 13개나 된다.

최근 볼보가 출시한 차들은 좋은 오디오에 편한 시트, 뛰어난 승차감으로 기분 좋은 경험을 선사했다. XC40 D4와의 첫 대면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XC60(19개)보다 스피커 개수가 적고 출력도 낮지만 XC40도 꽤 괜찮은 소리를 낸다. 오디오 음질은 동급 최고 수준이 분명하다. 시트 포지션은 브리핑대로 약간 높다. 시야도 넓다. A필러가 시야를 많이 가리지 않는다.

두툼하고 가볍게 돌아가는 운전대로 보건대 이 차는 승차감이 굉장히 부드러울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예상대로 뒤쪽이 부드럽게 눌리면서 승차감을 만들었다. 하지만 저속에서 약간씩 통통 튀는 느낌도 있다. 앞쪽 스트럿 방식의 서스펜션이 생각보다 단단하기 때문이다. 앞을 단단히 하면서 도심에서 빠른 스티어링 조작이 가능하게 하면서 뒤쪽에서 충격을 더 많이 흡수해 승차감을 잡아내는 세팅이다.

오버행이 짧은 차체에 가볍고 상쾌하게 움직이는 핸들링을 지녀 도심 주행이 쉽고 편하다. 더욱이 시야도 넓으니 차폭이 좁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시내에서도 별 어려움이 없다. 프랭크 바카가 ‘도심형 SUV’를 강조했던 것이 이런 이유일 것이다. 운전대로 들어오는 노면 피드백이 거의 없는 건 형제 차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에 오르니 차체가 한결 더 평온하다. 앞바퀴가 노면을 잘 물고 뒤쪽은 충격을 잘 잡아낸다. 속도를 높여도 예의 안정감과 승차감이 무너지지 않는다. 19인치나 되는 큰 타이어를 끼웠음에도 훌륭한 승차감이다. 더불어 이 차는 XC60와 XC90에 들어가 있는 준자율주행 기술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일정 시간 동안 차가 차선을 따라 주행한다. 조용한 차체에 뛰어난 음질의 오디오 그리고 훌륭한 승차감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XC40를 타면서 가장 편안하고 즐거웠던 순간이다.

직선주로에서의 완벽함이 주었던 만족감은 램프를 빠져나오면서 어느 정도 상쇄돼 버렸다. 차체 롤이 생각보다 컸다. 고갯길을 달리면서도 뒤쪽이 약간씩 기우뚱거리는 걸 느꼈다. 그 기울어짐이 주체 못 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문제는 앞바퀴 그립도 조금씩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XC40에 들어간 뒤쪽 멀티링크 방식의 서스펜션은 수직 상하 충격을 잘 잡아냈지만 횡으로 들어오는 움직임에선 그 성능이 약간씩 떨어지는 느낌이다. SPA 플랫폼을 사용한 XC90, XC60도 이런 경향이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XC40에선 롤이 조금 더 생긴 것으로 보건대 XC40의 무게중심이 약간 더 높거나, SPA 플랫폼에 사용된 뒤쪽 리프 스프링에 비해 차체를 잡아내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시승 후 볼보 섀시 전문가에게 “왜 뒤쪽에 리프 스프링을 사용하지 않았느냐?”고 질문하니 “가장 큰 이유는 비용이고, 그다음이 차의 성격상 멀티링크가 더 잘 맞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D4에서 T5로 차를 바꿔 타자 롤이 많이 사라졌다. T5는 R디자인으로 서스펜션을 약간 더 단단하게 세팅한다. 또한 앞쪽에서 엔진 무게가 줄면서 밸런스도 좋아졌다. 직선에서의 안정감이 더해졌다. 그렇다고 부드러운 승차감이 크게 달라진 것도 아니다. 취향의 차이겠지만 많은 소비자가 R디자인 서스펜션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가변식 댐퍼가 없는 게 조금 아쉬웠다. 전자식 가변 댐퍼는 2019년형부터 옵션으로 추가된다고 한다.

프랭크 바카의 말대로 이 차는 크로스오버가 아닌 온전한 SUV였다. 길을 잘못 들어 노면 굴곡이 심한 오프로드에 접어들었을 때 바카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됐다. 뒤쪽 서스펜션이 충격을 잘 흡수하면서 노면 그립을 잘 잡아냈고 차체가 털썩이지 않고 아주 부드럽게 나아갔다. 거친 노면에서도 승차감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좋은 섀시와 서스펜션을 지녔다는 뜻이다. 바카가 XC40는 크로스오버가 아님을 강하게 피력한 이유는 무엇일까? CMA 플랫폼으로 소프트로더를 준비하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볼보는 이 플랫폼으로 V40과 V40 크로스컨트리도 생산하게 될 테니까. 어쩌면 이미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볼보가 90년 역사에 처음 출시하는 소형 SUV는 처음이 아닌 것처럼 높은 완성도를 지녔다. 더불어 그 어떤 경쟁자보다 많은 첨단 안전장비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만큼 상품 가치가 높다. 볼보는 2020년까지 연간 80만대 판매를 목표로 한다고 밝힌 바 있다(현재 50만대 정도). XC40를 접하고 나니 패기 가득한 호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XC40는 올해 2분기부터 국내에 판매될 예정이다.

글_이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