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관 박해만 관장
청와대 경호실에서 지도한 박해만 사범
글쓴이 : 최고관리자 2010-04-22 15:08
대한태권도협회에서 제정한 태권도 품새에 깊이 관여하였고 기심회와 국기원 교육분과위원장으로 20여 년간 수행하면서 태권도교육의 한축으로 활약해온 박해만사범을 만나 그의 태권도일생에 대한 진솔한 대화를 지상중계해보기로 한다.
태: 태권도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박: 태권도는 무도이다. 무도인은 정직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수련에 열중하기 보다는 연줄을 찾아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많아 안타까운데 그래도 태권도가 발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도 묵묵히 수련에 열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이다 또 그것이 태권도가 주는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태: 제자인 필립 씨는 만났는지
박: 먼저 관심을 가져주어 고맙다. 필립은 신문에 보도되기 전 4월 3일에 만났다. 3월 28일부터 미국에서 세미나를 가졌는데 소식을 듣고 8시간을 차로 달려온 그를 만났다. 세월이 흘러 못 알아봤는데 지난날 이야기를 하면서 기억이 되살아나 참으로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태: 태권도를 입문하게 된 계기는
박: 처음에는 YMCA 권법부에서 이남석(창무관 2대관장), 박철희(강덕원 창설자), 김순배(창무관 3대관장) 등과 3개월 정도 같이 수련을 했는데 형편이 어려워 계속 수련을 못하고 혼자 수련하다가 52년도에 군에 입대하면서 엄운규 관장(전 국기원장, 현 청도관 3대 관장)을 만나 청도관에서 수련을 하게 되었다.
태: 태권도를 입문하게 된 계기는
박: 처음에는 YMCA 권법부에서 이남석(창무관 2대관장), 박철희(강덕원 창설자), 김순배(창무관 3대관장) 등과 3개월 정도 같이 수련을 했는데 형편이 어려워 계속 수련을 못하고 혼자 수련하다가 52년도에 군에 입대하면서 엄운규 관장(전 국기원장, 현 청도관 3대 관장)을 만나 청도관에서 수련을 하게 되었다.
태: 오랫동안 수련했는데 소개할 만한 일화는
박: 일화라는 것은 별로 없는데 최홍희장군(ITF총재)이 2군 부사령관시절에 태권도 교본을 만들면서 나를 불렀는데 몸통지르기를 시범 보이는데 자꾸 어깨높이로 지르라고 하기에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나중에 미국인을 지도하려면 높이가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느냐고 해서 내가 수련하고 대련은 다르다고 습관대로 몸통을 지르니 말이 안 통한다며 나를 퇴짜 놓았다. 당시 최홍희장군은 태권도의 기본이론도 몰랐을 것이다.
태: 당시에는 각관의 명예를 걸고 대련(겨루기)도 많이 했다는데
박: 많았다. 54년 내가 2단 심사를 보던 때로 기억되는데 심사위원으로 황기선생, 윤병인선생, 노병직선생, 전상섭선생 등 태권도 1세대의 관장들이 심사를 보았는데 그때 4단으로 승단한 사람이 내 기억으로는 현종명, 엄운규, 송도순 등이었고 (나중에 이종우씨가 추천으로 승단했음) 그날 엄운규와 박철희의 대련을 보았고 나중에 엄운규와 이종우의 대련도 지켜 본 것을 필두로 당대의 쟁쟁한 고수들의 대련을 많이 지켜봤다.
태: 태권도 품새 제정 당시의 비화를 소개 한다면
박: 처음에는 8괘 품새를 먼저 만들었는데 이종우씨가 기심회 의장이었고 김순배, 곽근식, 이영섭, 함영태, 나, 이렇게 6명(한명은 기억나지 않음)이 모여서 자신들이 자신 있는 품새를 몇 가지 만들어와서 그중 중복된 것은 빼고 조합해서 만들었다. 그래도 가라데에 없는 발차기라든가 점프동작 등은 엄운규관장이나 이종우관장이 개발해서 집어넣기도 했기 때문에 가라데의 형에서 많이 탈피한 것이라고 본다.
태극품새는 그 이후에 베트남전에서 태권도가 알려지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태권도를 하는 줄 알고 있어 누구나 쉽게 태권도를 접할 수 있게 만들자고 해서 만들었는데 여기에는 중요한 원칙이 있었다. 첫째는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것이 걸음을 걷는 것이라는데 착안하여 1,2,3장에는 앞서기 자세를 넣고 팔괘의 형상에서 괘가 이어진 부분은 2스텝, 떨어진 부분은 4스텝으로 했다. 또 가라데와는 달리 좌우동형의 원칙을 적용하여 태권도에서 가라데의 냄새를 완전히 제거한 것이다.
태: 태권도 명칭제정에 대한 말들이 많은데
박: 태권도의 명칭을 최홍희, 남태희 등이 만든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명칭을 사용하자고 결의한 것은 손덕성관장(청도관 2대관장)이 주재한 청도관 고문회의에서 결의해서 공식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태: 태권도 인생을 관통하는 좌우명이 있다면
박: 청도관에서 수련할 때 이원국선생님의 활인태권도라는 말이 내 평생의 좌우명이다. 남을 해치거나 죽이지 말고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하며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그 말은 현재의 태권도인들이 늘 가슴에 새겨야 할 금언이라 생각된다.
태: 유럽에서 품새를 지도하다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는데
박: 81년도 유럽에서 초청을 받아 가게 되었는데 가서 보니 베트남전에서 배운 태권도라 그런지 모두 ITF형이 많아 자비를 들이거나 초청으로 유럽전역을 다니면서 전부 WTF형으로 바꾸었다. 그러던 중 84~5년경 독일사범 이근태의 초청으로 세미나를 하는데 이모라는 사범이 사진을 찍어서 김운용총재에게 국기원에서 원로가 나와서 직접 지도하니 현지 사범들이 힘들다는 탄원서를 제출해 상벌위에서 기심회 자격을 정지시켜 직책 없이 교육만 하게 되었다.
활인태권도라는 말을 한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아오면서 남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할만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박해만 사범은 제자들에게 항상 사범보다 나은 사람이 되라고 강조한다. 자신보다는 태권도를 먼저 생각하며 살아온 그는 품새 교육의 산 증인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자신의 태권도 인생을 정리하는 회고록을 한권 발간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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