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듀로 투어러 혼다 아프리카 트윈 MT
글 임성진 사진 편집부 입력
대자연이 곧 트랙이고 경험과 끈기가 곧 실력으로 드러나는 모터사이클 랠리. 머신과 라이더, 그리고 팀이 혼연일체 되어야만 완주할 수 있는 험난한 랠리 경주가 전 세계 곳곳에서 주목받고 있다. 어떠한 방해물이 있어도 빠르고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도달해야 하는 신뢰할 수 있는 랠리 머신, 아프리카 트윈은 그런 랠리 머신에 가장 흡사한 영혼을 가지고 있다.
모터사이클은 저마다 여러 가지 존재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매끈한 레이스 트랙을 누가 더 빨리 질주할 수 있는가를 겨루는 경주에서 출발한 레이서 레플리카, 미끈미끈한 진흙과 자갈을 밟고 산속을 헤쳐 나가야 하는 엔듀로, 유유자적 경치를 감상하며 쭉 뻗은 도로를 달리며 바람을 가르는 쾌감을 추구하는 크루저 등 비록 ‘올라운더’라는 평을 받는 모터사이클일지라도 본연의 주목적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아프리카 트윈은 두 바퀴로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관통하며 세계 일주를 즐기는 월드 투어러들의 사랑을 받았던 모터사이클이다. 원류는 파리 다카르 랠리 머신에서 시작됐으나 양산형 아프리카 트윈은 실전에서 투어러들의 호평을 받으며 인기를 이어왔다. 키워드는 다양한 상황에서의 주파력, 그리고 기계적인 신뢰에서 오는 내구력이었다.
아프리카 트윈은 그렇게 오랜 세월 베테랑 투어러들에게 인정받는 명기로 남아있었고, 최근 들어 완전히 새롭게 재단장한 뉴 아프리카 트윈이 등장하면서 젊은 세대에 까지 영향력을 끼치게 됐다. 단지 동경의 대상이었던 아프리카 트윈이 재림하자 자연스레 전 세계적으로 환영받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업데이트를 거친 현 세대의 아프리카 트윈은 초기와 마찬가지로 기계적으로는 매뉴얼 트랜스미션(MT)버전과 듀얼 클러치 트랜스미션(DCT) 버전으로 크게 나뉘며, 여기에 연료탱크를 확장하고 험로 주파성을 높인 어드벤처 스포츠 버전을 추가했다. 시승한 모델은 매뉴얼 모델인 MT 버전으로, 이전에 시승했던 모델과 다르게 곳곳에서 업데이트가 이뤄져 새로운 느낌을 주기 충분했다.
뉴 아프리카 트윈이 등장한 이후에도 새로운 로드 어드벤처 모델들이 속속 등장해 오랜만에 재회한 아프리카 트윈의 모습은 더욱 본격적으로 느껴졌다. 앞 21인치 대형 휠을 탑재한 당당한 모습은 정통 엔듀로 투어러라는 명성에 어울리는 자태였다.
시승 날 라이딩 환경은 녹록치 않았다. 대낮에도 0도 전후를 넘나드는 추운 날씨였고 노면은 얼어붙었으며 와인딩 코스에는 블랙아이스가 깔려있었다. 오프로드 코스 또한 눈이 녹았다 얼어 단단하지만 쉽게 예측하기는 힘들었다. 거기에 종일 강풍이 동반됐다. 가끔 비추던 해는 금방 기울어 체온을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아프리카 트윈의 진가를 확인하기 더 좋았던 것도 사실이다.
도심을 벗어나기 위해 시동을 걸고 1단 기어를 넣고 출발하는 순간, 안도감이 들었다. 혼다 모터사이클을 탈 때마다 느끼는 부분인데, 마치 어제 이 바이크를 타고 퇴근한 것처럼 느껴지는 친근함이었다.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부드러운 차체의 반응을 보며 그간 시승했던 숱한 어드벤처 바이크들과는 또 다른 밀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프리카 트윈은 기본 시트높이가 870mm다. 차량 무게가 230kg에 달하는 것을 생각하면 부담스러운 수치다. 그런데 아프리카 트윈은 차라리 숫자들을 모르고 탑승하는 편이 좋다. 막상 앉으면 부담감이 생각보다 적기 때문이다. 가느다란 시트 폭과 푹 주저않는 서스펜션 덕에 스펙 시트를 보고 얼었던 몸이 풀어지는 느낌이다.
게다가 기본 시트는 별도의 로우 시트없이도 20mm 낮게 조절할 수 있는 장치가 돼 있다. 시승한 당일도 출발하면서 20mm를 낮게 고쳐 세팅하고 출발했다. 그래도 850mm가 되지만 체감은 그보다도 낮았다.
라이딩 포지션은 매우 편안하고, 무엇보다도 어드벤처 기종이 두루 가지고 있는 거대한 연료탱크의 압박감이 매우 적은 것도 장점 중 하나다. 연료탱크 용량은 18.8 리터로 적지 않지만 실제로 느끼는 크기는 매우 아담해서, 시트와 핸들 사이의 거리가 가깝게 느껴지고 라이딩 시 상체나 하체를 적극적으로 움직일 때도 어딘가 모르게 거치적거리는 것 없이 쾌적하게 느껴진다. 어드벤처 바이크는 멋지지만 크고 무거워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접근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아프리카 트윈에 착석을 반드시 권해보고 싶은 이유다.
아무튼 외관의 터프함에서 오는 압박감과는 반대로 막상 타보면 그 친근함이 이루말할 수 없이 반가운 기종이 바로 아프리카 트윈이다. 도심을 벗어나기 위해 시내 도로를 10km/h~40km/h로 달리면서도 무거운 무게가 부담되지 않는 이유는 이런 홀가분함에 있었다.
엔진은 1단부터 톱기어인 6단까지 고르게 써도 언제든지 ‘약속한 만큼’ 힘을 내주는 느낌이다. 흔히 선형 곡선의 토크라는 표현을 쓰는데, 들쑥날쑥한 출력이 아니라 낮은 속도부터 높은 속도에 이르는 과정이 매우 일관된다는 뜻이다. 레드존은 8,000rpm에서 시작되는 만큼 그전에 이미 최대 출력을 다 드러낸다. 수치상 95마력이지만 최대 토크인 10.1kgm의 수치는 6,000rpm에서 이미 쏟아지기 때문에 회전수를 높게 끌어낼 이유가 없다.
어떤 기어에서도(심지어 톱기어에서도) 스로틀만 당기면 병렬 2기통 엔진이 진동하며 차체와 라이더를 함께 가속시키는 느낌이다. 그 느낌이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아서, 쉽게 가속력에 적응이 되고 엔진을 ‘컨트롤’하는 자신감이 붙게 되는 것이다.
라이딩 모드는 투어, 어반, 그래블, 그리고 사용자 설정인 유저 모드가 있다. 기본은 투어모드로 풀 파워이지만 어반, 그래블 모드도 출력 자체에 아주 큰 차이를 느끼기는 어렵다. 모드를 나눠놓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안전 위주의 세팅이 강해서, 심지어 오프로드 모드라고 할 수 있는 그래블 모드도 토크 컨트롤(트랙션 컨트롤)이 기본 6단으로 설정되어 있다. 물론 조정할 수는 있지만 기본 세팅이기에 이그니션을 껐다 키면 다시 기본값으로 돌아간다. 이런 부분에서도 일단은 안전을 추구하는 혼다 사상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긴 작동 폭을 가진 서스펜션은 앞 21인치, 뒤 18인치의 본격적인 험로 주행 세팅의 휠 사이즈와 더불어 단순한 임도 주행에서도 매우 쾌적한 승차감을 발휘했다. 작동 폭은 앞 230mm, 뒤 220mm로 어드벤처 바이크 중에서도 큰 폭을 자랑하고, 최저지상고도 250mm로 높다. 어지간한 지형은 실력만 있다면 믿고 돌진해도 될 만한 제대로 된 오프로더의 수치다.
순정 타이어는 오프로드를 그저 무난히 통과하는 정도의 접지력을 가진 듀얼퍼포즈 투어링 타이어였지만, 기대 이상으로 불안감없이 비포장도로를 질주 할 수 있었는데, 이유는 타이어가 아니라 서스펜션과 휠에서 오는 이점 때문이었다. 거짓말 조금보태서 웬만한 비포장로 정도는 온로드를 달리는 것과 별반 차이를 못 느낄 정도로 매우 부드럽고 ‘능청스럽게’ 달린다. 여기에 패턴이 깊은 오프로드용 타이어를 장착하면 얼마나 페이스가 높아질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이 금방 된다.
굵직한 돌이 많은 험로를 지날 때에는 물론 라이더의 기량이 중요하지만, 하드웨어가 주는 오프로드 친화적인 구성이 주파에 큰 도움이 된다. 일반적인 어드벤처 바이크가 가진 19인치 앞 휠에 비하면 상당히 큰 차이를 느낄만큼 차체의 불안감이 적다. 서스펜션이 큰 단차를 무시하고 섬세하고 깊게 눌리며, 타이어를 꾸준히 바닥에 눌러준다. 밸런스를 잡고 있는 라이더 입장에서도 확실히 쓸데없이 힘들이며 비틀거릴 일도 적다. 거기서 오는 체력소모도 확실히 적다. ‘실력이 안 되면 하드웨어라도 좋아야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심지어 바이크에서 내려 밀고 끌 때도 최소한의 크기를 유지한 연료탱크나 가느다란 차체(타 어드벤처 기종에 비해)가 상당한 심적 여유를 줬다. 무게중심이 낮게 깔려 가다 서다할 때 확실히 컨트롤이 편했으며, 자신감이 붙으니 평소 어렵게 생각하던 코스도 어떻게든 지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비포장로에서의 안정감 높은 주파력이나 주행 품질은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느껴지듯 정통 엔듀로 투어러다운 이미지라서 실상 놀라울 것은 없었지만, 진짜 놀라운 점은 온로드에서도 즐거움이나 쾌적함 면에서 이렇다하게 손해보는 면없이 이런 구성을 지켜냈다는 점이다.
온로드에서 얼마나 괜찮은지 알아보기 위해 고속 코너링 구간이 많은 중미산 코스, 숏 코너가 많은 장흥, 북악 스카이웨이 등을 반복해 달렸다. 결과는 놀라웠다. 물론 일반 도로이기 때문에 랩 타임같은 것은 알 수도 없고 의미도 없지만, ‘쾌적함’과 ‘즐거움’ 측면에서 봤을 때 줄 수 있는 점수는 상당히 높았다.
서스펜션의 움직임은 매우 솔직했으며, 가속과 감속에서 오는 피칭모션이 정확했다. 오프로드에서도 훌륭하게 움직였던 서스펜션은 고속을 달리는 온로드에서도 의외로 단단하게 노면을 잡아준다. 서스펜션 작동 폭이 크다고 무조건 낭창거리는 것은 아니다. 감쇠력 세팅으로 좌우할 수 있는 부분이며, 물론 양 쪽 다 만족하는 세팅 값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양쪽 모두 쾌적한 성능을 내주고 있었다.
크고 무거운 차체를 가졌음에도 운전자와의 일체감이 매우 큰 것이 장점이었다. 과장이라고 느낄지 모르지만 과거 슈퍼모타드가 한참 유행했을 때 즐거웠던 느낌이 떠오를 정도였다. 거동이 묵직한 슈퍼모타드 느낌이라고 하면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경쾌함은 비교조차 하기 힘들겠지만, 분명한 것은 차체와의 일체감이 무척 뛰어나서 컨트롤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탄지 하루도 안 된 바이크와 느끼는 일체감치고는 너무 깊은 것이었다.
제동력도 훌륭했다. 급 제동 시 특히 프론트 서스펜션이 움직이는 정도가 컸지만, 물렁한 느낌이 크지는 않았다. 프론트는 래디얼마운트 닛신 캘리퍼와 웨이브 디스크 로터가 맞물려 있었는데, 손가락 압력에 따라 반응이 즉각적이면서도 서스펜션이 눌리고, 늘어나는 느낌이 생생해서 브레이킹 자체도 재밌다. 브레이크를 걸고 들어가는 경우도 접지력이 또렷하게 전달됐다. 오프로드 비중이 큰 만큼 리어브레이크는 강력했고 풋 스텝과 마찬가지로 순정 상태로도 페달에 이빨이 있어 오프로드 부츠와 일체감이 좋았다.
넓어진 디지털 계기반은 세로로 확장되어 상당히 시원스러운 사이즈다. 라이딩 모드나 토크 컨트롤은 버튼을 통해 간단히 조작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조작하는 범위가 대단히 넓지 않고 단순하다. 주행 중 직관적으로 슬쩍 만지는 것만으로 어디 무슨 버튼이 있는지 알기 쉽고, 로직 자체가 단순하다.
쓸데없이 복잡한 기능이 없고, ABS 해지 버튼은 뒷바퀴에만 적용되며 계기반 옆 버튼을 눌러 작동할 수 있다. 토크 컨트롤이나 ABS 해지를 하면 그 때만 적용이 되고 재시동 시 안전을 위해 다시 작동 상태로 리셋된다. 오프로드에서 가다 쉬다 할 때 조금 귀찮기는 하다.
주유계는 여러 단계이나 고속 주행 시 눈에 띄게 줄다가도 마지막 한 칸이 남으면 꽤 먼 거리를 갈 수 있다고 표시된다. 연비는 혼다 발표 자료에 32km/L로 되어 있는데 실제로 그 정도는 충분히 나올 것 같다. 연료 탱크는 18.8리터로 투어러치고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실속형 토크 위주인 OHC 병렬 2기통 엔진의 높은 연료효율이 커버해 준다. 결과적으로 항속 거리에서 불만을 갖기는 어려웠다.
현재 국내에 판매되는 3가지의 아프리카 트윈 라인업, 어드벤처 스포츠, DCT, MT 중에서 가장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는 제품이 MT다. DCT와 MT를 모두 타보면 각각 특성이 확실하고, 같은 바이크라고 평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션 조작 유무에서 오는 장단점이 확실하다.
무엇보다 MT의 장점은 모든 토크를 순간적으로 원하는 순간 끄집어낼 수 있다는 점, 수동 조작에서 오는 즐거움, 스포츠 라이딩 시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즐거움 등이 있었고, DCT는 결과적으로 투어링 클래스다운 편안함과 쾌적함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껏 모으고 끌어내린 낮은 무게중심과 실제로도 가벼운 무게(어드벤처 스포츠 255kg, DCT버전 240kg, MT 230kg)에서 오는 장점도 무시 못 한다. 아프리카 트윈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오프로드 주파성이 강조된 모델임이 분명하지만 온로드에서의 즐거움과 쾌적함도 양보하지 않았다. 온로드 성능만을 프론트 19인치 모델들과 나란히 놓고 테스트하면 여러 면에서 손해 볼지라도, 오프로드에서 오는 쾌적한 주파력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즉, 적게 잃고 많은 것을 취했다. 그 전략이 상당히 통했고, 고급스럽고 비대한 다른 어드벤처 바이크들과 차별화되는 부분도 확실하다. 더 터프하고, 본격적인 이미지는 단지 이미지 뿐 아니라 실전에서 빛이 났다. 아프리카 트윈은 모든 면에서 완벽한 어드벤처 바이크는 아니다. 하지만 ‘모든 종류의 땅을 쾌적하고 즐겁게 주파한 뒤 안전하게 복귀한다’라는 기본 명제가 확실한 정통파 엔듀로 투어러다.
'bike' 카테고리의 다른 글
MV 아쿠스타, 드랙스터 800RR (0) | 2019.01.12 |
---|---|
EICMA 2018 - 유럽에선 라지 휠 스쿠터가 인기 (0) | 2019.01.11 |
다이나 와이드 글라이드 (0) | 2019.01.04 |
야마하 나이켄, 도로를 달리다 (0) | 2019.01.04 |
부분 변경으로 더 넓은 세계 넘보는 2019 HONDA CB500X (0) | 2018.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