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백선엽 (白善燁)

태권 한 2020. 7. 14. 10:27

우촌, 愚村, 운산, 雲山, 산남, 山南

인사말하는 백선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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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정치인·기업인. 1920년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나 1941년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군 소위로 임관하여, 1943년부터 간도특설대에서 근무하면서 반만항일항쟁에 나섰던 동북항일연군과 팔로군 토벌작전을 수행했다. 1945년 8월 일제가 항복을 선언했을 때는 만주군 헌병 중위였다. 무장해제 후 귀국하여 고당 조만식의 비서로 잠시 일하다가 월남하여 1945년 12월 군사영어학교 1기생으로 입학, 이듬해 2월 임관했다.

임관 후 제5연대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을 거쳐 1947년에는 제3여단 참모장을 지냈고, 1948년 대령으로 승진한 뒤 1949년 제5사단장을 지냈다. 1950년 제1군단장을 지냈고, 휴전회담시 한국측 대표로 나가 휴전문서에 조인하기도 했다. 1952년 제2군단장을 거쳐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이 되었다. 1954년 군사령관, 1957년 다시 육군참모총장이 되었다. 1959년 합동참모의장을 지낸 후 1960년 대장으로 예편했다.

예편과 동시에 주중국 대사로 발령받았다. 1961년 주프랑스 대사 겸 네덜란드·벨기에 대사를 지냈고, 1962년 가봉·토고·세네갈·카메룬·차드·모리타니 주재대사를 겸임했다. 1965년 주캐나다 대사를 마지막으로 외교관직을 떠났으며, 1969~71년 교통부장관에 취임했다. 1971년 충주비료 사장에 취임하면서 재계에 진출했고, 곧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 호남비료 사장을 겸임하다가 한국종합화학의 사장이 되었다.

1979년 정계에서 은퇴했으며 1980년에는 한국종합화학의 사장직에서도 물러났다. 이후 한국후찌쯔 고문, 한국화학연구소 이사장, 국제상공회의소 국제위원장을 역임하고 강연 활동을 다녔다. 1999~2001년에는 노근리사건 대책단 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되었고, 2008년에는 대한민국 건국 6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고문으로 위촉되었다. 2013년 주한미군으로부터 미8군 명예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2020년 7월 10일 지병으로 타계했으며,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으로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