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반이 주민번호 묻자 "모르겠는데요"
글 서현우 기자 입력 2022. 03.
20여 년간 출입통제.. '기도빨' 소문 나 불법산행 여전
식물종 129종 늘었지만.. "생태계 회복 위해 규제 유지"
식물종 129종 늘었지만.. "생태계 회복 위해 규제 유지"
북한산국립공원 직원들이 보현봉 정상 인근에서 바위 틈에 투기한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 대남문 너머 멀리 노적봉과 백운대가 보인다.
“대나무 꼬챙이를 들고 ‘사탄아 물러가라!’며 직원들을 마구잡이로 찔러댔어요. 그럼 저희는 배낭을 들어 막았죠. 흡사 종교전쟁이었습니다. 그게 벌써 20년이 흘렀네요.”
신용석 전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 소장이 아스라이 솟아 있는 북한산 보현봉을 올려다본다. 신 소장은 20여 년 전, 더 이상의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 보현봉 일대가 특별보호구로 지정됐을 때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현봉을 오르려는 자들을 막기 위해 밤낮으로 출동을 거듭했다.
현재, 보현봉은 얼마나 회복됐을까? 또 20년이 흘렀어도 여전히 보현봉을 오르는 사람들이 있을까? 보현봉 비법정탐방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북한산국립공원 직원들과 함께 보현봉 및 형제봉 일원 특별보호구를 찾았다. 신 전 소장과 함께 북한산 자원보전과 길창현 계장, 재난구조대 이동구 반장, 장철호 계장이 동행했다.
평창동에서 바라본 보현봉. 보현봉은 서울시내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북한산의 얼굴이다.
비법정탐방구역인 보현봉은 매우 특이한 곳이다. 이곳을 오르려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등산객이 아니다. 종교인이다. 흔히 ‘기도빨’이 센 곳이라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길창현 계장은 “풍수지리적으로 백두대간의 정기가 보현봉에 몰린 다음 형제봉과 북악산을 거쳐 경복궁으로 내려선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보현봉 기도가 가장 활발했던 20여 년 전에는 3년 동안 1,064건의 불법 탐방을 단속하기도 했다. 신 전 소장은 “밤 12시에도 신고 전화가 와서 새벽 2시에 출근해 단속하기도 했다”며 “이젠 거의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야기를 듣던 길 계장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과거에 비하면 줄었겠지만 지금도 기도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조용히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소리를 지르는 ‘통성기도’라 민원이 많이 들어옵니다. 이제는 단속을 피하는 방법도 진화했어요. 공단 직원 근무시간대를 피해 새벽 5시경에 오른다든지, 산 밑 들머리에 망보는 사람을 심어뒀다가 공단 직원이 기획 단속을 시작하는 낌새를 보면 전화로 철수시키는 식입니다.”
북한산국립공원 길창현 계장이 보현봉 일대 특별보호구 지정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북한산 기네스북 등재는 안타까운 기록”
보현봉 동쪽 골짜기로 이어지는 정규 탐방로 평창공원지킴터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들머리를 살짝 오르자마자 바로 불법산행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보현봉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리는 사자능선으로 연결되는 무수한 샛길들이다. 공단이 대나무를 우물 정井자로 쌓아 출입을 막았으나 이를 밟아 부러뜨린 흔적이 가득하다.
“혹시 멧돼지가 밟고 지나간 것일 수도 있지 않냐?”고 묻자 “절대 그렇지 않다. 멧돼지는 시력이 좋지 않아서 이런 장애물을 발견하면 돌아가지 이렇게 위로 밟고 지나가지 않는다. 이건 100%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다”라는 답이 돌아온다.
사람의 출입을 막기 위해 설치된 대나무를 누군가 짓밟고 지나갔다.
신 전 소장이 덧붙인다.
“샛길이 이용되고 형성되는 건 전부 북한산이 공원의 수용능력(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수용할 수 있는 사람 수. 북한산은 약 100만 명으로 추산)에 비해 약 7배 이상의 탐방객이 매년 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원면적은 전체 산악형 국립공원 면적 중 2%에 불과한데 등산로 길이는 전 공원의 10%에 달하거든요. 그렇다보니 생물종 수도 22개 공원 중 20위고요.
북한산이 공원면적 대비 가장 많은 탐방객이 오는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는데 사실 이건 관리자 입장에서 매우 안타까운 기록이에요. 그만큼 북한산의 생물들이 사람의 발길에 고통 받고 있다는 말이거든요.”
꾸준히 오르막을 치자 오른쪽 계곡에 시야가 열리면서 얼어붙은 폭포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동령폭포다. 추사 김정희가 그의 <완당전집>에서 예찬한 바 있는 폭포다. 동령폭포를 지나 일선사 방면으로 오른다. 오랫동안 보현봉 일원을 단속해 온 이동구 반장이 여기저기에 흩어진 샛길을 가리킨다. 이 중 하나는 약수터 인근에서 출발한다.
장철호 계장이 설명한다.
“동네 주민들이 북한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부터 사용하던 약수터예요. 이런 약수터의 수질검사도 공단이 채취한 뒤 구청에 의뢰해서 진행하죠. 공단이 안 보이는 곳에서 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정규 탐방로 옆에 위치한 동령폭포.
불법산행 현장서 2건 연달아 단속
보현봉 아래 너른 바위에 오른다. 그리고 바로 불법 산행객을 적발한다. 이들은 “늘상 정규탐방로를 이용했는데 오늘 유달리 이쪽 바위가 예뻐 보여서 안전로프 넘어서 왔다”며 “특별보호구인지 몰랐다.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되냐? 죄송하다”고 말했다.
과태료를 부과한 뒤 다시 정상으로 10분쯤 오르자 다시 또 불법 산행객이 나타났다. 이번엔 ‘모르쇠형’이다. “비법정탐방로인지 몰랐다. 내 주민등록번호도 모른다”고 잡아떼며 한참동안 실랑이를 벌인 뒤에야 단속을 마칠 수 있었다.
보현봉 특별보호구의 생물종 현황 및 특성. 자료 국립공원공단.
“끝까지 단속을 거부하면 하산동행해 경찰서에 인계하죠.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에요. 어떨 땐 주저앉아서 안 움직이는 사람도 있고 욕하는 사람도 많아요. 멱살을 잡는 분도 계시고요. 보통 인적이 드문 비법정탐방로에서 술을 먹은 분들이 그러죠. 저는 부모님 욕도 몇 번 들었어요. 참 웃긴 게 단속할 때면, 늘 ‘오늘 처음 왔다’고 말하는데 단속하고 나면 잘 보이지도 않는 길을 귀신같이 찾아서 내려가요.”
보현봉에서 바라본 대남문 일대. 1989년 모습.7년 만에 식물 148종 → 277종
이제 통신탑이 들어선 보현봉 정상에 오른다. 남쪽으로는 평창동 너머로 흘러가는 북악산 능선과 평야를 꽉 채운 서울이 한눈에 들여다보인다. 그러나 진가는 북쪽에 있었다. 문수봉 아래 안겨 있는 문수사와 대남문, 그리고 그 너머 웅장하게 솟은 노적봉과 백운대가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진다.
“1989년 사진을 보면 보현봉에서 대남문까지 이어진 비탈의 생태계가 완전히 절멸 상태였어요. 지금 많이 회복된 편이지만 완전한 복원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죠.”
보현봉 일대는 화강암으로 구성된 급경사 남향으로 토심이 낮고 수분이 부족한 지역으로 토지극상 형태의 식생구조를 이뤄 식생이 훼손되면 자연복원이 매우 어렵다고 한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생태계가 복원되고 있다는 것. 북한산국립공원 측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보현봉 일원의 연도별 식물 출현 종수는 2010년 148종에서 2013년 163종, 2015년 217종, 2017년 277종으로 꾸준히 출현 종수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보현봉에서 바라본 대남문 일대. 2022년. 식생이 확연히 회복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2016년 조류 조사결과에는 총 38종 185개체의 조류가 관찰됐으며, 천연기념물 조류는 붉은배새매와 소쩍새, 멸종위기 Ⅱ급 조류는 새호리기 1종이 있었다고 한다.
민웅기 자원보전과장은 “2002~2003년에 법정탐방로인 평창동 탐방로와 보현봉 특별보호구역 내에 각각 인공새집을 설치해 박새류의 번식을 연구한 적이 있었는데 탐방로보다 보호구역 내에서 더 안정적으로 번식하는 것을 확인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국립공원공단 직원이 취재 현장에서 불법탐방으로 적발된 탐방객에게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신 전 소장은 “아직 더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 답사하면서 불법출입자에 의한 답압으로 토양알갱이들이 흘러내리고 노면이 딱딱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바위식생의 흙더미도 본래 위치에서 이탈되고 있고요. 등산로 주변 샛길 중 상당수가 사라지고 복원된 것은 긍정적이지만, 주요 통로는 여전히 이용되고 있네요.”
일선사 뒤편 마애불. 과거에는 종교 단체에 의해 훼손되곤 했다고 한다.
보현봉 정상은 인위적 훼손으로 처참
매혹적인 정상 조망에 빼앗겼던 시선을 길 계장이 손짓으로 붙들었다. 손끝을 따라가자 바위틈마다 박힌 스티로폼이 눈에 들어온다. 여전히 종교인들이 정상부에서 기도를 드리기 위해 가져다놓은 것들이다. 그 외에 정상부 한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바위에는 수많은 이름들이 한글과 한자로 새겨져 있다. 페인트로 칠한 낙서는 시멘트와 에폭시, 페인트 제거제로 지저분하게 지워져 있다. 처참한 몰골이다.
“그래도 많이 줄어든 겁니다. 예전에는 더 많은 쓰레기들이 버려졌었어요. 단속을 피해 밤에 오르니깐 추운 밤을 이겨내려고 비닐이며 매트리스며 잔뜩 갖다 올려놓는 거죠.”
공단 직원들이 쓰레기를 정리할 동안 정상 근처를 홀로 돌아본다. 통신탑 근처에 수상해 보이는 좁은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자 북쪽 절벽으로 움푹 들어가 바람을 막아주는 공터가 나온다.
보현봉 정상에서 기도하고 있는 탐방객이 CCTV에 포착됐다. 사진 국립공원공단.
뒤따라 들어온 길 계장은 “이곳도 유명한 기도터”라고 설명한다. 벽을 살펴보니 곳곳에 낙서를 지운 듯한 시멘트 자욱이 가득하다. 그리고 사람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높은 벽에는 여전히 빨간색 십자가가 남아 있다. 과거에는 일선사 뒤편 마애불에 십자가를 그려 넣기도 했다고 한다.
이동구 반장이 보현봉에서 평창동으로 흘러내리는 사자능선을 가리킨다. 그는 “종교인들은 지금 보기에 오른쪽, 더 가까이 솟은 봉우리를 능력봉이라고 부르고 왼쪽, 더 멀리 있는 봉우리는 할렐루야봉이라 부른다”며 “저기도 영험하다고 기도하는 분들이 많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종교인들과 탐방객이 방치해 놓은 쓰레기를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이 수거하고 있다. 사진 국립공원공단.
추사 김정희도 반한 사자령
길 계장은 “원래는 봉우리가 아니라 고갯마루가 더 역사적 의의가 높다”고 덧붙인다.
“보현봉 바로 아래 남쪽 고개의 원래 이름이 사자령입니다. 사자항獅子項이라고도 불렀대요. 사자항은 산에 위치한 사찰 입구의 고개를 지칭하는 말로 사찰의 내외 영역을 구분하는 경계입니다. 사자가 사찰을 지키는 수호신이라 명명되는 지명이죠.”
사자령은 과거 북한산과 문수사에 진입하는 관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보현봉에서 바라본 사자능선. 종교인들 사이에선 사진 중앙에 보이는 암봉 두 개 중 왼쪽이 할렐루야봉, 오른쪽이 능력봉으로 불린다고 한다. 사진 서현우 기자.
<북한지>에는 고려시대 낙헌 이장용(1201~1271)이 문수사로 오르는 길에 대해 ‘험준한 바위산 비탈길로 두 손 잡아 오르려 하니, 서서히 비구름 가시고 수목 무성한 산마루 고개 아득히 모습 드러내네. 험한 산마루로 기어오르니…(중략) 들녘에는 그림처럼 또렷한 한강줄기, 물안개 없는 서쪽을 돌아보니 그 바로 선경이로세’라고 험준하고 빼어난 사자령의 경관을 묘사했다고 적혀 있다.
추사 김정희 또한 <사자항에서 석간의 시에 차운함獅子項次石間韻>이란 시에서 ‘이렇듯 가파른 데를 타지 않으면, 영축산을 어떻게 오른단 말인가. 천 봉우리 둘러싸인 꽃비 속에, 걸음걸음 가경으로 접어드누나’라고 상찬했다.
낙서로 가득한 보현봉 정상 바위. 석각은 여전히 남아 있고, 페인트로 칠한 낙서는 시멘트와 에폭시, 페인트 제거제 등으로 지워져 있다.
재개방 시 재파괴 불가피해
여전한 훼손과 그 속에서도 점차 생태계를 회복하고 있는 보현봉. 그렇다면 언제쯤 다시 합법적으로 오를 수 있을까? 보현봉 탐방을 염원하는 탐방객에게는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공단에서 진행한 연구 용역에 따르면 당분간은 개방을 검토하지 않는다고 한다.
기도처에 남아 있는 빨간색 십자가.
민웅기 과장은 “지역 특성상 탐방 활동으로 인한 훼손은 급격히 발생할 수 있지만, 회복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며 “따라서 보현봉과 형제봉 구간의 완전한 복원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므로 특별보호구 지정을 현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그는 “보현봉 인근 탐방로의 경우 다른 지역보다 탐방객 수가 비교적 적어 주변 탐방로 탐방객의 집중을 이유로 개방할 필요도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신 전 소장이 부연한다.
“등산로 재개방 여부를 판단하려면 등산로를 중심으로 광범위한 지역에 대한 생태회복 조사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북한산처럼 엄청난 탐방수요가 있는 경우 재개방에 따른 재파괴가 불가피하죠. 설악산 오색지구 만경대가 개방 일주일 만에 등산로 주변이 완전히 짓밟혀서 탐방예약제로 전환된 사례가 있습니다. 모쪼록 국립공원을 조금 더 아껴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3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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