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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을 깨는 스포츠 투어러, KTM 1290 슈퍼듀크 GT

태권 한 2022. 11. 28. 15:11
김준혁입력 2022. 11. 28.
대부분의 모터사이클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하다. 물론, 이런 예상은 모두 기존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KTM의 스포츠 투어러, 1290 슈퍼듀크 GT도 마찬가지다. 직접 타보기 전까지 단순히 1290 슈퍼듀크 R의 투어 버전일 거라고 생각했다. 매섭다 못해 살벌한 기운까지 느껴지는 슈퍼듀크 R의 특성을 한층 부드럽고 편안하게 가다듬었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당연하다. 일반적으로 고성능 모터사이클을 기반으로 한 투어 버전은 보다 순하거나 부드러우니까. 슈퍼듀크 GT도 기본적으로 그 방식을 따르고 있다. 우선, 엔진 최고출력을 177마력(2세대 슈퍼듀크 기준)에서 175마력으로 조금 낮췄다. 여기에 장거리 투어 시 필요한 요소들을 꼼꼼히 더했다. 그 때문에 슈퍼듀크 GT의 건조중량은 230kg까지 늘어났다. 그렇다면 슈퍼듀크 GT에 대한 예상 가능한 결론이 나온다. 슈퍼듀크 R보다 둔하지만, 다루기 쉽고 부드러우면서 편안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이 예상은 출발과 동시에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괜히 슈퍼듀크라는 이름이 붙은 게 아니었다. 주행 모드가 통상적인 레인, 스트리트, 스포츠를 넘어 퍼포먼스와 트랙 모드까지 준비된 것도 이유가 있었다. 슈퍼듀크 GT에 탑재된 V트윈 1301cc 엔진이 만드는 170마력이 넘는 최고출력과 141Nm에 이르는 최대토크를 온전히 쓰기 위해서는 퍼포먼스 모드 정도는 필요하다. 그래야 스로틀 반응 속도를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고, 9단계로 마련되는 트랙션 컨트롤 개입량을 조절하며 슈퍼듀크 GT의
진가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1290 슈퍼듀크 GT는 매섭다. 자꾸만 속도를 높여달라고 재촉하는 것 같다. 그래서 스로틀을 비틀면, 비트는 만큼 소실점을 향해 무섭게 달려 나간다. 정지 상황이든, 어느 정도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이든 상관없다. 슈퍼듀크 GT는 라이더가 원하면 언제든 속도를 높인다. 그만큼 힘과 순발력이 넘친다. 꾸준히 안정적으로 높은 속도를 아무렇지 않게 유지한다.
코너에서도 감탄은 이어진다. 이렇게 덩치 큰 모터사이클이 경쾌하고 날렵하게 코너를 공략하다니 놀랍다. 물론, 코너 끝이 보이지 않는 헤어핀을 달리다 보면 덩치와 무게가 느껴진다. 몸을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넘겨야만 앞머리를 원하는 방향으로 집어넣으며 달릴 수 있다. 그러나 일상적인 주행 상황에서는 그 정도까지 필요하지 않다. 경쾌하게 움직이는 슈퍼듀크 GT를 가볍게 흔들면 그만이다.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스팔트를 짓이길 것 같은 무지막지한 힘이 뒷바퀴에 전달되는 상황에서도 시종일관 편안함이 유지된다. 여기엔 여러 가지 비결이 있다. 장시간 주행풍을 막기 위해 추가된 9단 조절식 윈드스크린과 넓은 좌우 페어링이 대표적이다. 장거리 주행을 위해 연료 탱크 용량도 23L까지 키웠다. 보다 편안한 라이딩을 위해 핸들바를 높이고 시트 형상도 넓게 바꿨다. 야간 주행 시 시야를 넓혀줄 코너링 램프와 손을 따뜻하게 해 줄 열선 그립도 갖췄다. 무엇보다 별도의 브라켓 추가 없이 서브프레임에 직접 장착할 수 있는 30L 용량의 사이드 케이스를 좌우에 더해 편의성을 챙겼다.
하지만 슈퍼듀크 GT가 어떤 상황에서도 편안할 수 있는 진짜 비결은 따로 있다. KTM의 자회사인 WP가 개발한 세미 액티브 서스펜션 덕분이다. 기본적으로 슈퍼듀크 GT의 서스펜션은 초기 하중값(프리로드)를 4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1인 승차, 2인 승차, 1인 승차 및 짐적재, 2인 승차 및 짐적재 등으로 말이다. 진짜 매력은 댐핑값 변화에 있다. 버튼 하나로 감쇠력을 컴포트, 스트리트, 스포츠로 바꿀 수 있는데, 7인치 TFT 계기판의 그래픽 변화만큼 그 차이가 매우 뚜렷하다. 이뿐 아니라 서스펜션 컨트롤 유닛과 각종 센서가 댐핑값, 하중, 차체 움직임 등을 실시간으로 계산해 최적화된 서스펜션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개인적으로 초기 하중값을 1인 승차 및 짐적재로 맞추고 댐핑을 스트리트 모드로 뒀을 때, 승차감이나 주행 성능면에서 가장 이상적이었다. 컴포트 모드는 승차감이 매우 부드럽지만 속도를 높일수록 거동이 불안정해지는 경향이 심하다. 그래서 과속방지턱이나 요철이 많은 저속 주행 때 적합하다. 스포츠 모드는 말 그대로 극단적인 스포츠 주행을 위한 설정이다. 서스펜션 움직임이 극히 적어 고속 주행이나 굽이진 코너에서 안성맞춤이다.
스트리트 모드의 댐핑 값은 정확히 컴포트와 스포츠 모드 사이에 위치한다. 중립적인 설정 덕분에 세미 액티브 서스펜션의 실시간 대응이 보다 신속하고 확실하게 느껴진다. 예컨대 저속에서는 승차감 위주로 설정이 바뀌고, 속도를 높이거나 움직임이 과격해지면 하체를 조인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편하고 민첩하게 달릴 수 있다.
이런 환상적인 조합 덕분에 슈퍼듀크 GT를 향한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슈퍼듀크 GT는 단순히 슈퍼듀크 R의 하위 버전일 거라는 예상을 뛰어넘어 독립된 영역을 구축한다. 슈퍼듀크 GT는 오히려 편의성을 높여주는 여러 장비의 도움을 받아 슈퍼듀크 시리즈가 지닌 잠재력을 보다 쉽게 끌어낼 수 있도록 해준다. 결과적으로 스포츠 투어러 장르에서 슈퍼듀크 GT만한 스릴과 재미, 만족감을 주는 모델은 찾기 어렵다. 독특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디자인과 3400만 원이라는 가격을 수용할 수 있다면 말이다.

글_김준혁(모빌리티 저널리스트)